저성장 시대의 은퇴준비
이상건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경제 문제의 본질은 결국 ‘성장’에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과 일자리가 늘고 결과적으로 세수도 늘어나 정부 재정도 좋아진다. 하지만 어떤 나라든지 30년 이상 고성장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7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고성장을 구가 하다 최근 들어 완연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과연 이런 저성장이 우리의 삶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레버리지, 즉 부채의 의미가 바뀐다.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자산시장은 큰 폭의 상 승세를 기록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사 놓으면 가격이 올랐다. 가격이 하락할 때는 저가 매수의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 과거와 같은 큰 폭의 가격 상승세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투자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레버리지를 이용해 무리 하게 투자하면 자칫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빚 없는 삶’의 가치가 중요하게 등장하 는 것이다. 특히 고령화 국면과 맞물리면 부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정년 퇴직 이후에 부 채가 있으면 가계 경제의 현금 흐름이 더욱 악화된다. 부채 없는 삶은 노후 준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재무 목표에서 우선순위를 올바로 정립해야 한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이벤트가 존재하고, 그에 걸맞은 돈이 필요하다. 자녀 교육비, 결혼비용, 주택 마련 자금, 노후 자금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현재의 문제, 즉 자녀 교육과 주택 마련에 우선순위를 둔다. 노후는 나중의 문제이고, 자녀교육과 주택은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성장 시대에는 이런 식의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늘어날 가능성 이 높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일자리와 소득이 늘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근시안적 편견에 따른 의사결정이 노후 생활의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저성장 시대에 맞게 재무 목표의 우선순위를 노후에 두고 적극적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셋째, 자영업은 탈출구가 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창업율이 높아지고 있다. 양적인 숫자는 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질(質)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특히 베이비 붐 세대의 첫 세대인 50대 중후분생들이 정년퇴직이나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창업 시장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기업가 정신을 갖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창업을 하 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떠밀려 나와 어쩔 수 없이 창업을 하는 이들이다. 당연히 경험도 없다. 실패율이 높아지는 이유다. 게다가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 그 중에서도 음식점 시장은 세 계 최고의 경쟁 시장이다. 엄청난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와 노력이 필 요하다. 자영업을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직장 정년을 늘리거나 재취업을 하거나 계약직이라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넷째, 자산운용의 관점을 현금 흐름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투자 기회 가 많을 때는 가격이 오르는 데 초점을 맞춰 투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다. 적절한 부채 이용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서 고령화가 진척되면, 매월 꾸준한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내는 자산이 가격이 오르는 자산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금융 상품 중에서는 연금형태로 매월 생활비를 제공하는 상품이, 부동산에서도 안정적인 월세를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이 앞으로 더 각광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