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웹진 201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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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땅콩주택

새로운 삶은 새로운 거주 형태를 요구한다

이중한 / 자유기고가

개념의 변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집은 재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느 광고에서 이야기했듯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사는 곳’이어야 올바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간의 개념 접근에 문제가 있던 것이다. 물론 투자 목적으로 집을 바라보던 과거의 시각도 이해는 된다. 한때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은 아시아였고, 그 중 최빈국이 바로 우리나라였다.
‘어떻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부모님 세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거쳐 상황은 바뀌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새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의·식·주 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닥쳤다.

의·식·주의 변화
1970년대에는 청바지와 미니스커트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문화 아이콘은 패션 열풍이라기보다 서구화의 단면으로 해석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추위를 막고 몸을 가리기 위한 의상에서 패션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건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힙합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고, 이제는 특정 아웃도어 브 랜드의 겨울 패딩이 초중고생의‘교복’처럼 자리 잡으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부상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음으로 음식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었다. 2000년대 웰빙 바람, 슬로푸드의 인기, 와인 열풍 등은 식생활에 대한 접근방식이 달라진 증거다. 마지막 영역으로 남은 거주 문제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장기임대도 변화의 한 방향이겠지만, 보다 흥미로운 거주 형태는 ‘땅콩주택’이다.

땅콩주택이 뭐지?
땅의 수량을 세는 단위는 ‘필지’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개인주택’은 한 필지에 들어선 한 채의 집을 의미한다.
개인주택은 장점만큼이나 많은 단점을 지니고 있다. 비효율적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다가구, 다세대, 연립 주택이다. 이런 거주 형태는 하나 또는 두세 필지에 올린 건물을 여러 세대가 층 단위로 나누어 소유한다.
주차공간과 도로를 효율적으로 나누는 건 장점이다. 하지만 이렇듯 건물을 종적·횡적으로 나누어봤자 아파트와 다를 바가 없다. 텃밭을 가꾼다거나 큰 음량으로 음악생활을 영위한다 는 식의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기에는 불편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게 ‘땅콩주택’이다.
한 필지에 두 개의 똑같은 건물을 올린 거주 형태의 진짜 이름은 ‘듀플렉스’다. 하나의 필지 가 땅콩껍질, 두 채의 비슷한 건물이 땅콩 과실과 비슷하다고 해서 땅콩주택이란 애칭으로 부 르기도 한다. 일본에선 벽을 마주한 데칼코마니와 비슷하다고 해서 ‘맞벽주택’이라고 한다.

따로또같이
땅콩주택의 장점은 완공 전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완공 이전, 건축 단계에서는 비용 절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똑같은 건물을 두 개 올리기 때문에 설계비용이 반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건축 자재를 구입할 때도 ‘물량의 경제학’에 따라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땅콩주택을 함께 기획하고, 장기간 얼굴을 마주대하고 살 대상은 당연히 모르는 사람일리 없다. 친구나 가까운 친척에서 찾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단 두 가구의 니즈에 맞춰 건축하는 땅콩주택은 거주자들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기 가장 적합한 형태로 설계된다. 연못을 공동소유하거나, 텃밭을 일구는 등 필요에 맞게 집을 지을 수 있다. 집에 삶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삶에 맞춘 집을 짓는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꿈도 꾸기 힘들었지만 상황 이 바뀐 것이다. 거주 단계에서의 또 다른 장점은 인간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땅콩주택은 ‘따로 또 같이’ ‘함께 하지만 각자’ 살아가는 거주 형태다. 시부모와 아들며느리처럼 가까우면 가까운 데로 부담스럽고, 멀면 먼 데로 부담스러운 관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해답이될수있다.

완벽한 건 없다
땅콩주택에도 단점은 많다. 늘 상대방과 마주치기 때문에 친한 친구라도 뜻하지 않게 서로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 한 필지를 두 가구가 공동 소유하는 땅콩주택의 특성 때문에 매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재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인 우리나라 의 특성 때문에 문제가 상당히 커질 수도 있다.
땅콩주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배경에는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도 한몫하고 있다. 집을 더 이상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힘든 것은, 절대불패의 부동산 신화에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 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망이 어떻게 변화하건, 양적인 성공에만 집착하던 과거로의 회귀는 이어지지않았으면한다.
위기가 오히려 질적 성장의 토대가 되고, 삶의 가치를 다시 고민하는 기회로활용되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