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웹진 201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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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공곶이’비밀의 화원에서

봄을 만나다

유은영 / 여행작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먼 남쪽 바다 작은 섬에서 시작된다. 노란 수선화가 바다를 향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붉은 동백꽃과 하얀 조팝나무 꽃이 꽃 대궐을 이룬다. 거제는 바다와 꽃이 어우러진 봄 여행 일 번지다.

수선화 곱게 핀 바닷가 정원

경남 거제시 예구마을 뒤의 작은 언덕 공곶이는 ‘거제8경’으로 지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숨겨진 명소이다. 누군가가 일부러 꼭꼭 숨겨둔 듯한 비밀의 화원. 작은 산이 제법 가팔라 예구마을에서 2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접근이 쉬웠으면 공곶이가 세상에 빛을 보기도 전에 망가졌으리라는 생각에 발품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공곶이는 강명식(79), 지상악(75) 부부가 40년이 넘는 세월 피와 땀으로 가꾼 농원이다.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총 4만 5,000평이며, 수선화밭만도 2,000여 평에 달한다.
예구마을 포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흙길을 오른다. 가파르긴 해도 길옆에 동백꽃들이 말을 걸어 숨찰 만큼 빨리 내 걸을 수 없다. 중턱에서 숨 한 자락 내려놓고 잠시 뒤돌아보면 예구포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언덕 정상에는 소나무 숲이 반기고 공곶이의 아름다움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먼저 끝이 보이지 않는 동백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공곶이가 유명해 진 첫 번째 이유가 수선화이지만 이 동백터널도 빼놓을 수 없는 공로자다. 꽃송이가 만개한 동백나무터널은 손을 꼭 잡은 연인이 걸어 내려가기 좋을 만큼의 폭으로 이어진다. 머리 위에 붉은 꽃이 만발하고, 그 꽃잎들이 떨어진 계단을 내려가노라면 겨드랑이 어디메쯤 날개가 돋아나 천사가 될 것만 같다.
동백터널이 끝나 수선화 밭으로 향하는 양지바른 곳에는 설유화, 개나리가 자리 잡고 있다. 천리향, 수선화 화분을 파는 작은 무인판매대 뒤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풍경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꽃 대궐에서 남해의 봄 향기를 만끽한다.
무인판매대를 지나 골목을 돌아서자 드디어 수선화밭이다.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수선화가 수줍게 피어 있다. 나르시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수선화이다. 그래서 수선화의 꽃말은 ‘자아도취’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런 수선화가 무리지어 바다를 향해 몸짓하고 있다. 봄을 부르는 그 몸짓이 동백이나 매화보다 더 강렬하다. 그 샛노란 꽃들이 봄기운을 가득 머금었다.
수선화 오솔길 끝에는 쪽빛바다가 이어진다. 바닷가는 둥글둥글한 돌로 된 몽돌해변이다. 바로 앞의 내도는 손에 잡힐 듯하고, 저 멀리 해금강이 펼쳐져 있다. 돌들과 파도가 들려주는 소리와 봄바람의 화음에 겨울의 얼어붙었던 몸과 맘이 녹는다.
공곶이는 관광농원으로 조성된 외도와는 달리 노부부의 삶의 터전이다. 입장료도 없이 자신들 평생의 업을 다 내어주고도, 사람들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점점 입소문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곶이에 따사로운 봄기운이 훼손되질 않고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머무는 그곳

크게 베푼다, 크게 구한다는 뜻을 지닌 거제(居濟)는 10개의 유인도와 6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 공화국의 명성답게 거제 8경은 지심도, 해금강, 외도, 내도 등 섬으로 이루어진 명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매끈매끈한 검은 몽돌이 깔린 학동몽돌해변은 아름답기로 이름난 해변이다. 학동몽돌해변에서는 봄 햇살과 함께 앉아 잠시 MP3를 끄자. 몽돌들이 파도에 휩쓸린 때마다 들려오는 자르륵자르륵 소리에 풀썩이던 마음의 먼지들이 사라진다.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올라 있는 소리이다. 학동이라는 이름은 학이 날아올라 유래되었다 한다.
해안을 따라 3km에 걸쳐 천연기념물인 동백 숲이 있다. 2월부터 4월까지는 동백꽃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팔색조 번식지로도 유명하다.
도장포선착장을 지나 바람의 언덕에 올라보자. 바람의 언덕은 거제8경중 하나. 잔디로 이루어진 민둥산에 바람만 가득하다. 바람 따라 누운 풀밭 넘어 잔잔하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자락에는 벤치가 놓여 있고, 언덕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풍차가 있다. 바람만 가득한 언덕에 외로이 서 있는 풍차가 인상적이다. 풍차를 지나 전망대로 오르면 작은 동백 숲도 바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