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웹진 201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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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세레나데
홍지화 / 소설가

봄Ⅰ

바야흐로 봄이다. 여느 겨울보다 더 길고 춥게만 느껴졌던 지난 겨울 지독한 혹한을 건너온 봄이기에 봄을 마중하는 기분이 그 여느 때보다 설렌다. 혹한을 견디며 죽은 듯 고요하게 잠들었던 대지에 새 잎과 꽃망울이 맺히고 새들이 정겹게 지저귀는 것만으로도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대자연은 우리에게 순리대로 아름다운 봄을 다시 허락하였다. 이 봄을 맘껏 즐겨보라고 다정히 속삭이며 하나씩 봄의 선물 상자를 꺼내 보인다.

계절은 이미 봄이건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 봄을 마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요즘 다들 살기가 팍팍하다고 한다. 몇 년째 이어지는 경기 불황과 높은 실업률 등 여러 가지로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코스에서 어찌 평평한 길만 있을까마는 그래도 삶이 고단하면 우리의 어깨는 자연히 안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장애물을 만나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저마다 아픔도 있고 실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삶을 영원히 지배하거나 가두지는 못한다. 희망은 절망의 언 땅을 뚫고 자라나는 새싹이다. 봄의 여왕으로 꼽히는 나비는 겨우내 징그러운 애벌레의 모양으로 고치 안에서 몸을 바짝 웅크리고 묵묵히 나비로서 찬란히 날아오를 부활의 시간을 기다린다.

지혜로움을 칭송받던 솔로몬왕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에 영원 불멸한 것은 없다. 따스한 봄바람으로 인해 혹독한 추위가 지나가듯 지금 우리의 고단한 삶도 곧 지나갈 것이며 긴 겨울 끝에 온 봄도 머지않아 지나갈 것이다. 봄이 지나가기 전, 봄을 만끽하는 잠깐의 여유로움도 일상의 활력소가 되리라.


봄Ⅱ

볕이 잘 들지 않는 집에 살고 있는 필자는 따사로운 볕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많다. 일조권 침해를 심각하게 받고 있는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화초들은 사다놓기 무섭게 시름시름 죽어가고, 전기세도 남들보다 더 많이 낸다. 가끔 화가 나서 다른 데로 이사를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간절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서울 시내에서 햇볕 잘 드는 집을 고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조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기 전에는 햇볕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이전의 집들은 볕이 넘치도록 풍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년기를 보냈던 옛 집은 단독주택이어서 마당도 넓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도 있었고 감이 주렁주렁 달리던 감나무도 있었다. 물론 정 남향집이어서 볕은 더할 나위 없이 풍족했다.

봄이 오면 옛집에는 목련꽃이 하얗게 꽃망울을 터뜨리곤 했다.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린 북쪽의 바다지기를 잊지 못해서 바다에 빠져 죽은 공주가 꽃으로 환생했다는 전설이 깃든 목련꽃. 그래서 언제나 목련의 꽃봉오리는 바다지기가 있는 북쪽 하늘을 향한다나. 비록 지금은 햇볕이 별로 안 드는 집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파트 정원에 활짝 핀 목련꽃을 바라보며 햇볕 바라기를 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다. 대지가 온통 생기와 활력으로 충만한 이 봄날, 따사로운 볕을 벗삼아 하늘나라 어느 공주님의 못다한 사랑이야기를 듣는 것도 꽤 낭만적일 것 같다.

비록 우리가 처한 현실은 조금 고단할지라도, 창가를 비추는 나른한 봄날의 햇살을 받으며 춘곤증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꽃을 탐스럽게 피운 난초의 고고한 자태에 흠뻑 취해보기도 하며 새콤쌉싸래한 봄나물을 맛있게 한 입 가득 물고 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는 일상의 기쁨, 그런 일상의 소박하지만 귀한 행복을 잊지 않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