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이 오면
권영수 / 경남 창원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남쪽에서 봄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불러보았던 노래일 것이다. 고향은 마음이 포근해지고 세상 모든 것을 다 감싸주는 어머님의 품 안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사실 고향은 내게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있는 곳은 아니다. 때론 슬픔과 아픔, 그리고 가난과 이별도 있었던 곳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손을 놓고 일찍 도시로 나와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 청소년으로 성장하면서 떠돌이 나그네 인생으로 살아왔기에 고향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한이 없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지만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 겨울이 오면 이른 아침에 눈이라도 살짝 내리고 그 자그마한 처가 지붕 위 굴뚝에서 연기라도 뭉게 뭉게 솟아오르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한 폭의 동양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산골 아무집이나 찾아들면 삶이 너무 버거워 등이 새우처럼 휘어 버린, 자신들의 인생 역정만큼이나 일그러진 얼굴의 어머님이 맨발로 뛰어나와 양손을 잡으면서 반겨줄 것만 같다.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솟구치곤 한다. 지금은 저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그래도 가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환상 속에 빠져 들 때가 있다.
3년간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계실 때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따뜻한 손을 잡아 주셨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눈물만 흘리시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전에 지은 죄, 불초한 이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오늘밤도 고향에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운 마음을 이 글에 담아 저 멀리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 띄어 보낸다.
인생의 가장 큰 선물
황성자 / 경기도 안양시
수년 전에 이런저런 이유들로 힘들어 하던 내게 어느 지인께서 힘들 땐 걷는 게 최고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걷다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오다 어느 순간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져들면서 마음이 비워질거라고...
혼자서 걷는 게 익숙하지 않아 처음엔 걷는 그 자체가 낯설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 즐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걷던 발걸음은 불현듯 산으로 향하게 되었고 진땀을 흘리고 난 뒤 찾아오는 희열과 영혼까지 정화되는 듯 표현키 힘든 개운함은 산에 대한 홀릭 상태로 몰고 갔다. 산에 오르는 초반의 30여분은 심장에 극심한 통증과 더불어 구토 증상으로 수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이후에 찾아오는 건강한 에너지가 전신을 휘감는 묘한 마력은 그마져도 즐기게 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이 제아무리 좋다한들 이런 호사가 있을까. 관악산을 쥐방구리 드나들듯 오르내리다가 친구의 소개로 정맥산행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백두대간이 우리나라의 등뼈에 해당 된다면 정맥은 갈비뼈라 일컫는다.
처음에 정맥산행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나섰다가 키 높이만큼 자란 잡목들을 헤치며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고 옷이 찢어지는 상상키 힘든 고통에 “내가 미쳤구나. 좋은 길 다 놔두고 그렇다고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고행길에 합류했을까”라는 후회가 걷는 내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땀을 비 오듯 쏟아내고 콧잔등엔 허연 소금가루가 생길정도로 노폐물을 죄다 쏟아낼 쯤 끝난 산행. 그런데 육신의 고통스러움과 마음의 갈등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영혼마저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즐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여전히 정맥산행은 힘들고 버겁지만 그 너머의 세상이 주는 감미로움은 고통을 능가한다. 자신이 좋아서 즐겨하는 일! 그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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