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우수상)국민연금 생활수기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3283
내용
저는 석간인 지방매일신문 독자입니다. 하루는 신문을 보고 있노라니 신문 하단에 국민연금 생활수기를 공모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 내가 현재 보람 있게 느끼고 있는 이 국민연금이’ 하면서 보는 순간 자신 있게도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글쓰기에 경험도 능력도 없습니다만 물론 제가 일등 이등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너무 요긴하고 고마운 연금이기에…….
저는 식당을 약 30년 전에 일가친척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렵고 힘들게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식당에 찾아오시는 분이 제일 최고로 생각하고 친절하게 모시면서 삼남매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나갔습니다. 식당을 하여 아이들 교육을 시키고 삼남매 다 출가시키고 나니 마음이 편해서인지 아니면 그동안 삶이 힘들었었는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플 때마다 동네약국, 병원 및 한약방 등을 찾아다니며 견디었습니다. 젊은 날엔 하루저녁 자고나면 아픈 곳도 잘 나았었는데 나이드니 약 봉투만 늘어 가더군요. 나이를 숫자로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죠.
하루는 은행손님 두 분이 첫손님으로 오셨기에 반가운 마음에 급히 식사준비를 하다가 넘어져서 손님과 주방아주머니 등 이웃의 도움으로 가까운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뼈는 안 다쳤지만 심한 충격으로 좀 심각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여 큰 병원에 가서 촬영을 하더니 입원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쉬면서 운동이나 수영으로 몸을 잘 다스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에게 그리고 아무런 노후대책도 없고 현재 가진 것도 없는데 장사를 하지 말고 운동이나 수영을 하라니……. 우선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응급조치만 받고 그날로 또 장사를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정리해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단골손님들이 계셔서 문만 열어 놓으면 식당은 그런대로 되기에 손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계속 장사를 하다가 기어이 몸이 악화되어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이제 그만 식당을 그만두고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달라고 해야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얼굴을 보면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내일은 꼭 말해야지 내일은 꼭 하다가 퇴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말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부모 잘 만나서 잘 먹고 잘 쓰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자식들도 많은데 내가 무엇을 잘해주었다고 생활비를 달라고…….”
퇴원하고 계속 장사를 하던 어느 날 각 TV?신문에 국민연금에 대한 뉴스가 귀와 눈에 띄었습니다. 나도 저 연금에 자격이 될까? 누구나 가입시키겠어! 라며 고민하다가 식당에 오시는 손님들께 연금에 대해서 조언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저희 식당에 오시는 분들의 직업은 대학교수님, 시청, 도청, 경찰직에 계시는 공무원으로 수준이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오셨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께 국민연금을 노후대책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손님들께서는 하나같이 “우리도 지금 연금이 불안해서 퇴직금을 일시불로 타야하나 아니면 이것도 못타는 게 아닌가 걱정인데 무엇하러 지금 시작을 하려고 하냐! 이식당 사장님 꽤나 똑똑한 줄로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실망하였소. 라며, 여자들이 무엇을 알겠어. 지금 나라에 돈이 없어도 이만 저만 없는 게 아니라며 조언을 듣기는커녕 싫은 소리만 실컷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국민연금에 마음이 가서 1999년 4월에 가입을 하였습니다. 옛 속담에 간이 큰 사람이 널 장사를 한다고 큰 액수는 못 넣어도 작은 액수라도 넣고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넣고 나니 1년에 조금씩 연금액이 오르더군요. 연금을 넣기 1년쯤에 급기야 몸이 더 아파져서 약 30년간 저희 온가족의 생활의 터전이던 식당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고생스러웠지만 보람도 있었던 식당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릴 때에 얼마나 아쉽고 섭섭한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나는군요.
그 당시에 저는 보험회사에 아는 분이 있어서 암보험과 생명보험 등 여러 가지 보험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수입도 없고 특별한 재산도 없다는 생각에 모든 보험을 해약하였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국민연금만 계속 불입하였습니다. 그것도 자동이체를 하여 놓았기에 그나마 해약을 안 하고 남겨졌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연금공단에서 통지가 왔습니다. 2004년 4월 30일부터 저의 생일 61세 다음 달에 연금이 지급되니까 주민등록증과 통장 도장을 가지고 와서 신청을 하라는 통지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내가 연금을 탈 수 있을까 하며 반신반의 하면서 시간이 흘러갔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가 연금 수급자가 된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자유업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월급을 타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자식들이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몇 번의 월급봉투만 만져보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저희끼리 살게 하느라고 상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연금이 통장으로 들어온 날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보고 또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하고 앞으로도 또 계속 나올 것인가? 하면서 지내다 보면 달이 작으면 29일 앞당겨 나오고 달이 크면 30일 날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니 저는 정말 국민연금이야말로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어서 월백만원 보다 더욱 값진 것입니다. 이렇게 꼭 탈 수 있다는 확신만 있었으면 더 많이 넣었을 것을 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괜히 의심만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알아보느라고 날짜만 끈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나 공무원들은 연금이 나와서 걱정이 없지만 자유업을 하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을 여유 있게 넣어두면 한평생 사는 날까지 불안하지도 않고 걱정이 없다는 것을 요즈음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살면서 인생은 칠십부터니 팔십부터니 하는 달콤한 표현들 속에 노년을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첫째도 건강 두 번째도 건강이 제일이고 이것의 기본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며, 또한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는 반면 그만큼 재해나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도 많이 발생하므로, 국민연금 가입당시 장애가 발생된다면 장애연금도 나오니 막막하지 않고 평생을 안심하고 살 수 있으니 이 연금보다 좋고 믿음이 가는 연금이 있겠습니까? 부모님들의 마음은 자식들에게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돌보았지만 자식들은 부모님들이 아프고 힘들다고 하면 몇 년간 좋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저도 물론 자식들에게 생활보조금으로 얼마를 받고 있지만 그것도 어쩌다 만나면 용돈하시라고 주고 바쁘고 못 오면 몇 달이 그냥 지나가지만 그렇다고 너희 왜 생활비 안주냐고 말도 못합니다. 그리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할라치면 미안한 생각만 들더군요. 하지만 국민연금은 무조건 한 달에 한 번씩은 날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주위 분들에게 국민연금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고요.
제가 52,800원씩 불입한 총액이 4~500만원인데 지금 11월말까지 21회가 나와서 260만 원 정도가 나왔고 앞으로도 저는 삼천만원도 타고 사천만원도 탈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저에게는 어느 효자 부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자식들에게는 연금 나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알면 부모에게 소홀히 할 수 있으니까요. 저의 노파심이겠지만 아무래도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는 줄 알면 아직 용돈을 안 드려도 되겠지 좀 늦어도 되겠지 하고 신경을 덜 쓸 것 같거든요. 저는 요즘은 불안하지가 않습니다. 2005년 4월부터는 연금이 또 인상되어 나오고 있으니까 물가가 오르더라고 연금 또한 인상되어 나오니까 기분이 좋고 좋아 지금까지 저처럼 못미더워서 가입하지 않으신 분들은 안심하시고 조금이라도 노후를 즐겁고 여유 있게 보내기를 바라며 두서없는 글을 써 보았습니다. 작으나마 기다리는 즐거움을 주시는 국민연금에 감사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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