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최우수상)月 94,820원의 큰 희망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3781

내용

돈이란, 일억 있어도 한 달에 모자라는 사람도 있고, 단돈 십만 원 갖고도 유효적절하게 쓰는 사람이 있다.
내 통장에도 국민연금이 월마다 94,820원이 입금되는데 풍족하지는 않지만 내 희망의 효자라고 쓰다듬는다.
자식들이 가끔 용돈을 준다. 정말 효자 돈이지만 그 돈을 받을 때면, 왜 그렇게 손이 떨리고 쑥스러운지 고개를 못 드는데, 월말이 되고 입금된 국민연금을 보면 첫사랑 여인을 만난 듯 화사한 웃음이 절로 나오고 어느새 연금 통장은 내 가슴에 꼭 보듬어 안긴다.
어느 사람처럼 어렵게 대학교도 나왔다. 취직 하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으면 깜깜 무소식이다. 4. 19도 했고 군대도 갔다 왔는데 이유를 몰라 찾아가보면 기다려보라는 것이다. 기다리기를 1년, 하루는 경찰서 외사계 순경이 신원조사를 왔다. 일본 계신 큰 형님이 조총련계 간부고, 조카 놈은 북송선을 타고 김일성대학 의과 대학생이라는 말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대학교 졸업장을 받을 때의 꿈은 조각구름처럼 산산이 찢어지고 그때야 연좌제 중에서도 최1급 연좌제에 해당 되는 것을 알았고 취직을 포기했다.
좋은 직장가려고 꼭 대학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인생 목표가 뒤바뀌는 순간이다.
그날로 인생 저변을 헤매며 사료(使料)장사를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잘되었다. 목장 땅 12만평도 사고 살만해져 가는데 내 나이 39세 때 마누라가(37세) 갑자기 쓰러졌다. 시골 병원에서는 빈혈증이라고만 했다. 그 후 쓰러지는 횟수가 잦아 서울 가톨릭의대(성모병원)에 입원시켰다.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그때 한국에는 뇌 병명을 찾아낼 정도였고 치료 의술은 발달되지 않았다. 병명을 찾고도 못 고치고 의료보험 제도도 없었고 목장 땅을 팔아 병원비를 정리하고 나니 사람 잃고 돈 잃고 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때 의료보험제도가 있었다면 목장 땅을 팔지 않았을 텐데,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을 실시하는 선진국 복지정책을 그때부터 늘 부러워해 왔다.
아내를 땅에 묻고 홀애비가 되어 왼손에 둘, 오른손에 둘, 열 살 미만의 사남매를 손잡고 산을 내려올 때, 눈은 왜 그렇게 오던지, 집에 와서 보니 장독대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3살배기가 “엄마 눈 왔어” 하며 잡았던 내 손을 확 뿌리치고 엄마 방문을 연다. 엄마를 금방 땅에 묻고 왔는데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식들과 살아가려니 너무 서글퍼 그저 밤하늘을 가만히 쳐다보면, 유난히도 큰 별이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깜빡거린다. 그 별은 대낮에도 나만이 보이는 별이다.
나는 그날부터 부엌에 들어가 밥을 지었다. 다행히도 장사가 잘될 때 사두었던 과수원을 팔아 몇 년간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세월이 갈수록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지출이 수입을 앞서갔다.
어떤 때는 공과금도 없어 친구에게 빌리러 가면 돈 없다고 외면도 당해봤다.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소문에 단돈 백 원 보태주려는 사람 없었다. 가진 게 없다보니 세상인심 너무 무서웠다. 그럴 때는 삶이 너무 괴로워 자살까지 생각해 보았으나 지옥에 먼저 간 마누라를 만나면,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 왔느냐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하는 생각이 항상 인생 사표를 반려해 주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가 소 사육 붐이 일 때다. 3개월짜리 송아지가 이백만 원, 임신우가 4～5백만 원 할 때다. 재산가 친구를 보증세우고 농협에서 어렵게 이천만원 대출받아 암송아지 열 마리를 샀다. 3년만 키우면 임신우가 되고 송아지 10마리씩 낳으면 1년에 이천만원씩 꼬박꼬박 들어 올 것을 생각하니 금방 부자가 된 듯하였다. 열심히 키웠다. 무럭무럭 자란 소는 3년 후 임신우가 되었다. 안 되는 놈은 엎어져도 코 깨진다고 일 년만 늦게 수입되어도 농협 빚을 갚을 수 있었는데 그 해부터 미국 소 생우가 수입되니 4～5백만 원씩 하던 암소가 단돈 70만원해도 사갈 사람이 없었다. 친구 재산이 압류당할 처지에 이르렀다. 되는대로 처분하여 이자만 청산하고 친구의 재산 차압만 면케 해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지금은 아들에게 주어버린 내 집이지만 등기부등본을 보면 차압, 경매, 말소로 얼룩져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케 해준다.
하루는 읍 직원이 가난한 나에게 찾아와 특례 노령 국민연금에 가입을 권유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살다보니 우리나라도 올 것이 왔구나! 말로만 들었던 선진국 복지정책이 현실화 되었다고 하지만 당장 반찬거리도 살 수 없는 나에게 정부에서 실시하는 노후 대책인 국민연금도 가입할 수 없는 형편이 비참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 생각해보겠다며 읍 직원을 돌려보냈다.

산과 들이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는 봄날이었다. 자동차도 못 다니는 고랭지 채소밭을 물어물어 두 번째 찾아 온 읍 직원, 최저금 3,600원씩 내면 월 7만원씩 받을 수 있다며 가입서를 내민다. 그때 솔직히 공과금도 제때 못 낼 때라 매월 3,600원씩 낼 수 없다고 차마 말할 수는 없고, 한다는 소리가 60세 이후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 그냥 그 돈으로 먹고 살다가 죽겠다고 무식하게 말하였다.
그날따라 이산 저산에서 뻐꾹새, 노고지리 즐겁게 울고 벚꽃이 화사하게 온 세상이 봄을 찬미하는데 아지랑이 속에 묻혀 산길을 힘없이 내려가는 읍 직원의 축 처진 어깨모습, 그렇게 돌려보낸 내 가슴이 아팠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으면 생소한 국민연금 말들이다. “읍 직원 말을 어떻게 믿어. 차라리 농협에 안전하게 적금이나 들지. 심지어는 정부가 권장하는 사업은 믿지 못한다며 불신임까지 한다.
나는 읍 직원을 믿었다. 그날 후로 결심을 했다. ‘담배를 끊자’ 하루 3갑씩 피우던 담배 값을 한 달 모으니 3,600원 국민연금을 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담배 끊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국민연금 아니었으면 내 건강은 전부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 나이가 70인데도 건강은 50대로 변화시켰다. 이런 기분이면 120세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살다보니 즐거운 날도 있었다. 월 3,600원씩 낸 국민연금이 23배가 되어 내 통장에 처음 입금되는 2000.10.31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80.780원이 틀림없었다. 그날부터 공과금은 걱정 없었다.
그 국민연금 통장을 보는 순간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 그런 저런 사정도 모르고 양(兩)부모 있는 애들과 비교하며, “아버지! 우리도 쌀밥해서 먹자”고 해도 모른척하고 보리밥만 해주던 일이 뭉클 떠오른다.
저녁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보자 쌀밥이다 하며 먹는 하얀 쌀밥. 나는 그게 쌀밥으로 보이지 않고 그 쌀밥 한 알 한 알이 크게 반짝반짝 빛나며 담배 끊고 연금 내려고 하루하루 모은 백 원짜리로 클로즈업되었다.
아버지 비통한 심정을 몰라주는 자식들이 그때는 그렇게도 미웠다.
그 길고 긴 고달픈 나날들을 어떻게 보내었는지 어느새 그 어린것들이 자라 큰 딸은 결혼하고 서울에서 LG대리점을 경영하고 큰아들도 대학 나와 직장인이 되고 작은 딸도 사범대학 나와 중등교사이고, 며느리도 중등교사다.
외손자 5명, 친손자 2명이 있는데 세뱃돈도 꼭꼭 주고 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국민연금을 모았다가 주는 돈인데 너희들도 자라서 직장인이 되거든 국민연금 잘 내라고 강조하며 준다.
나는 오늘 정확하게 국민연금 5,411,680원(2005.10월 현재)을 받아 사용하여 왔는데 몇 년 후에 연금이 바닥난다는 설에 불입 중단한다는 말도 들었다. 수명이 늘면서 고령화 사회가 되고 저 출산은 세계 제 1위라고 하는데 내는 사람보다 혜택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어렵게 도입된 복지정책도 사라지게 되고 내가 받던 연금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때면 나는 아들, 딸들에게 말한다. 연금 때문에 쌀밥 먹었던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며 어려워도 연금을 잘 내라고 당부한다. 그 연금은 아버지가 받고 아버지는 그 연금 돈으로 손자 과자며 장난감도 사주고 세뱃돈도 준다고 교훈적으로 말을 한다.
빚더미 속에서도 희망을 주던 국민연금 94,820원, 소값 대출받았던 농협 빚도 그럭저럭 다 갚았고, 담배, 술도 안 먹으니 별로 돈 쓸 일도 없다.
내가 받는 연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면 일 년에 1,034,600원이 된다. 이 돈이면 소년, 소녀 가장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돈이다. 장학금 명칭도 ‘국민연금장학금’이라 칭하고 어느 노인이 국민연금을 쓰지 않고 모았다가 주는 돈이니 명심하여 부지런히 공부하고 직장인이 되거든 국민연금 잘 내라고 신신당부하며 주겠다.
만약 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자라서 직장인이 되고 재벌이 되어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모른 체하고 국민연금 내는 것을 실천 아니 하면, 내가 한일만 희생되는 것이지만, 그 학생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 실천을 못하여도 어느 노인이 국민연금 모아준 장학금으로 공부한 전설을 들려주며 주위 동료들에게 국민연금을 잘 내라고 독려만 해주어도 내가 바라는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고 너도 나도 국민연금에 애정을 갖는 국민들이 많아 질 때 복지국가 태동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내가 어려울 때 받아 쓴 국민연금! 지금도 어렵지만 미래 국민연금을 낼 꿈나무를 키우는데 쓸 것을 오늘 수기를 쓰면서 희망차게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