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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와 아빠는 연금 들었어요?"
학교에서 국민연금에 대해 배운 나는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당근이지. 국민연금은 엄마와 아빠가 늙어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어머니께서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우리들처럼 장난스런 말투로 대답하셨다.
"왜? 국민연금 안 넣어서 늙으면 너한테 기댈까 겁나니?"
어머니께서 다시 장난스럽게
물으셨다. 잠시 얼떨떨해서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장남이고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지는 않다. 아버지께서 막내이시고, 또 두 분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어쩌면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것이 자립의지에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힘으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다고
하니까 말이다. 또 그런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국민연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늙어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만 해도 처음에도 아버지를 말렸다고 한다.
누구나 다 가입을 해야 하는
제도지만 어머니는 못 마땅해 하셨다는 것이다.
"급할 때 찾아 쓸 수도 없는 돈 아니에요?
사람이 살다가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때 돈이 없어도 나라에서 불끈 쥐고 안주면 어떻게 한대요?"
"살다가 못 먹고 살만큼 되면
주는 것이 연금인데 뭘 그래?"
"그까짓 거, 늙어서 꼬부라진 뒤에 돈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젊어서 잘 살면
그만이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설득에도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빗나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우리 전통
생활문화였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어머니도 나나 동생 호준이를 의지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아, 요즘 누가 자식이 주는 몇 푼 용돈으로 사나? 우리도 살아보면 그렇지만 저희들 먹고살기도 빠듯할
텐데 "
아버지의 오랜 설득 끝에 부모님께서는 지역연금 가입자가 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회사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입을
해야 한다. 가입금액도 아버지의 수입 정도에 따라서 넣어야 한다.
아버지도 처음부터 많은 금액을 넣진 않으셨다. 아버지는 주택
리모델링 일을 하시는데 일이 많을 때도 있지만 일이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고정수입을 계산할 수가 없어서 이다. 벌써 5년째 넣고 계시는데
지금은 처음 넣을 때보다 불입액이 늘었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수입이 적을 때는 그 금액도 부담이라는 말씀 끝에, '그렇지만 늙어서
언제 용돈을 주려나, 하면서 호찬이, 호준이 눈치 보는데 비하면 이 정도 부담은 즐겁지, 뭐.' 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미리 우리랑 떨어져 살 생각을 하시는 듯한
말씀에 왠지 내가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이 든든한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정말 내가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해 부모님
용돈을 제대로 드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도 매달 일정금액을 받으실 국민연금은 얼마나 고마울까, 생각만 해도 아버지가
믿음직스럽다.
"아빠 생각이 맞는단다. 미래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좀 편하게 살다가는 정말 초라한 노후를 맞을 거야.
또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건축 일을 하기 때문에 다칠 것도 항상 생각해야지. 국민연금에서는 장애연금도 주거든."
"그럼
장애인이 되어서 연금을 받으신다고요?"
장애인이라는 말에 걱정이 된 내가 묻자 아버지께서는 껄껄 웃으셨다.
"장애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거지. 멀쩡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도 혼자 넘어져 그런 장애를 당할 수 있어.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장애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거지. 그럴 때 돈까지 없어 봐라. 어떻겠니?"
아버지는 나를 이해시켰지만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도 앞날의 부모님이 처할 입장까지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철저히 설계하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라면 한번 일을
맡긴 분들은 집의 리모델링을 계속 부탁할 것 같다.
그 동안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국민연금이란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떤 제도인지 귀담아 듣지 않았던 터였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저 '국민은행에서 저축광고를 하는 것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위험한 무관심을 아버지의 대답은 안전한 관심으로 바꾸어 주셨다.
우리 집은 큰 부자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도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난 우리 집이 좋다. 시간이 많아서 책도 읽을 수 있고 공도 찰 수 있어서 이다. 이런 나의
여유는 학원비가 워낙 비싸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들이는 아버지의 생활철학 덕분이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큰 부자다.
앞날이 보장된 집인 까닭이다. 적어도 우리는 나중에 돈이 없어서 연세 드신 아버지가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부자다.
국민연금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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