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장려상)버리데기 국민연금 숨살이 꽃 되다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456

내용

꼬마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유치원 강당 가득 울리고 있다. 저녁 6시 퇴근 무렵!
플레이타임에서 놀며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는 5-6명의 종일반 아이들의 얼굴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 그 아이들 중엔 나의 여섯 살 난 막내아들도 끼어있다. 큰 키에 하얀 피부, 장난기 가득한 얼굴. 아이는 아빠를 그대로 닮아 있다.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지금의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종일반 선생님을 새로이 시작한지 6개월째! 막내아들은 그저 엄마와 함께 유치원에 다니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한없이 기뻐하기만 한다. 하지만 내가 직장생활을 새로이 시작하게 된 것은 2004년 6월 26일.

그날 새벽!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급성심근경색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명으로 남편은 그렇게 두 딸아이와 4살 난 아들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사라졌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곳으로 그렇게 유언 한 마디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의 모든 짐을 나에게 지워놓고 가버렸다. 앞이 캄캄했다. 슬픔보단 배신감이 더 앞섰고 더 컸다.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감히 나에게 아무런 언지도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그렇게 갈수 있단 말인가.

[행복했던 나의 15년!]
나는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의 교사로 생활하고 있었다. 유치원의 천진난만한 아이들과의 생활은 밝음과 맑음 그리고 웃음으로 가득했고 나의 20대는 너무도 행복했다. 이 행복과 함께 동료 교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내 나이 27살.
회사를 그만두고 그와 함께 시작한 결혼생활은 참으로 행복했다. 2년 뒤 첫 아이를 낳았고 다시 3년 뒤 둘째 아이를 낳았다. 여자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아이를 워낙 좋아했던 나는 시어머니의 소망과 남편의 응원으로 5년 뒤 밀레니엄 베이비인 막내아들을 뒤늦게 낳았다. 시부모님의 기쁨 가득했던 얼굴, 말없이 내 손을 잡고 한껏 힘을 주며 “고생했어. 라며 그 과묵했던 입을 열었던 남편의 붉게 상기되었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보며 어렵지만 셋째아이를 낳은 것이 참 잘했구나 생각하며 행복해했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갔다. 인자하신 시어머님과 감기한번 심하게 앓지 않았던 남편, 그리고 예쁘게 자라주는 아이들, 그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다. 남편은 건설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고, 그의 봉급을 받으며 알뜰살뜰 살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모든 것은 그렇게 평화로우며 안정된 생활이었다. 나에게 가끔씩 전해져 오는 친구들의 불행한 사고나 사망소식들은 정말 강 건너 불구경으로만 생각하여, 참 안됐구나 하며 건네는 인사치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믿을 수 없는 남편의 죽음]
하지만 정말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일이 2004년 6월 26일!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이야!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날의 새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위한 아침식탁을 차려놓고 남편을 깨우려 침대에 갔다. 일어나라 흔드는데 뭔가 느낌이 달랐다. 다시 한 번 흔들어 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흔들었는데도 끝내 남편은 나에 얼굴한 번 쳐다보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우리 4식구만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세상은 나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지껏 세상이 나에게 보여준 행복함으로의 충만함은 이렇게 암울한 불행의 구렁텅이로 넣으려는 세상의 계략이었으며 속임수임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15년의 행복감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에게 세상은 이제 더 이상의 행복을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나에겐 세명의 아이들이 있기에…….]
남편의 장례를 마치고 난 슬퍼야할 겨를도 없었다. 3아이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현실로 다가 왔기에, 울며불며 세상을 원망할 겨를도,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그리움을 달랠 여유도 없었다. 당장 현실이 되어버린 세 아이의 교육과 생활!
남편의 회사로부터는 산재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싸늘한 답변만을 들었다. 주위에서는 산재소송을 해서라도 끝가지 해보자고 하였지만 난 그럴 힘이 없었다. 확률 없는 싸움에 내 정신을 쏟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남편의 급여명세서에서 보았던 국민연금을 생각했다. 남편의 수입에 비하면 작지 많은 않은 금액이 다달이 공제되고 있었기에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문의하였다. 국민연금직원의 유족연금에 해당된다며 구비서류를 안내해 주었다. 나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막내의 손을 잡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방문하였다. 남편이 사망한지 채 20여일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먹하고 어색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찾은 것이다.

[유족연금 30만원, 어떻게 이돈으로 세아이와 생활할 수 있단 말인가?]
상담결과 한 달에 30만원.
허탈해 졌다. 씁쓸한 미소만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잡으려 했던 나의 기대감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30여만 원을 갖고 4식구가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175개월을 매달 성실히 납부해 왔는데 이 정도 밖에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파트 관리비에, 초등학생 2명, 그리고 유치원1명, 의료보험료는 어떻게 하며, 각종 공과금은 또 어떻게. 그 동안 생활해 왔던 우리가족 한 달 생활비를 생각한다면 정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청구를 끝내고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문을 나서는 나는 여전히 암울한 현실에 씁쓸했고 슬퍼졌다.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짐을 느꼈다.

[동분서주 제2의 삶을 시작하다]
그리고 다시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내 전공인 유아교육학과를 살리고 경험을 살려야 했기에 지인들을 총 동원하였고 몇몇 내 사정을 알게 된 원감님의 소개로 집근처의 유치원에서 정식교사가 아닌 유아들의 보모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의 내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나갔고 올해 6월에는 정식교사로 아이들의 종일반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느껴지는 국민연금의 위력!]
그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국민연금이 내 삶의 작은 불씨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통장에 매달 말일이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30만원. 그것은 어느새 1억 원 이상의 든든한 생활자금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백만 원 조금 넘는 월급에 보태어지는 30만원이라는 돈은 처음 유족연금을 신청하며 받았던 허탈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비중으로 우리4식구의 가계에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는 깊은 숲속의 옹달샘처럼,
퍼내어도, 퍼내어도 계속 나오는 요술항아리처럼…….
국민연금은 우리가족에겐 마르지 않는 옹달샘으로, 착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선물인 요술항아리로 그렇게 기쁨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가버렸다고 원망하기만 했던 남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남편의 온기를 가족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막내 아이의 교육준비도 하고, 관리비도 내고, 어머니 용돈도 때론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엔 쓸모없을 줄 알았던 작은 유족연금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든든해지기 시작했고, 국민연금 직원으로부터 막내아이가 18살이 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지급되며, 막내아이가 18살이 되면 내 나이가 쉰 살이 훌쩍 넘기 때문에 평생 유족연금이 지급될 것이라던 말이 큰 소리가 되살아났다.

[버리데기 국민연금 숨살이꽃이 되다]
이제야 깨닫는다. 버리데기라고 생각했던 국민연금이 이렇게 내가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 갈수 있는 원천적인 힘을 주는 피살이 꽃이자, 살살이 꽃이며, 숨살이 꽃일 될 수 있음을…….
버리데기는 지금은 여섯 살이 된 막내아들에게 읽어주었던 전래동화책의 제목이다. 버리데기는 어느 부잣집 대감의 일곱 번째 딸아이로 태어난다. 첫째도 딸, 둘째도 딸, 셋째도 딸,,,그렇게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에잇 딸이라면 꼴도 보기 싫다”라며 대나무 밭에 버려진 아이다. 그래서 이름도 버리데기이다. 그 아이가 나이 들어 몹쓸 병에 걸리게 된 아버지를 살리려고 온갖 험한 일들을 겪으며 시약산에가서 얻어온, 죽은 사람 몸에 살살 문지르면 살이 돋는 살살이꽃, 죽은사람 몸에 살살 문지르면 피가 도는 피살이꽃, 죽은사람몸에 살살 문지르면 숨을 쉬는 숨살이꽃을 꺾어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살렸다는 이야기이다.

[국민연금으로 커갈 나의 막내아들]
지금 유치원 강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씩씩하게 놀고 있는 여섯 살 난 아들의 얼굴을 본다. 나는 국민연금의 일부를 막내아이의 교육 준비자금으로 매월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 아빠의 기억이 희미할 막내에겐 아빠의 선물이란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국민연금과 함께 커나갈 것이다. 국민연금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왜 우리가 기성세대의 국민연금을 책임져야하는가?’, ‘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어른들 국민연금을 부담해야 하는가?’ ‘왜 기성세대의 노후를 우리가 책임져야하고, 왜 그들의 채무를 젊은이들에게 짐지우려 하는지 반성하라’고 소리침을 인터넷과 각종 언론에서 보게 된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 마다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렇게 나의 아들처럼 국민연금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이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국민연금마저 없었다면 나의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할 수 있겠는가?

국민연금의 수급자로서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어른들에 향한 [공경]과 [효]라는 커다란 틀로 국민연금을 바라 볼 수는 있었으면 좋겠다. 국민연금을 희망을 잃어버린 불행한 일을 겪는 이들에게 [숨살이꽃], [피살이꽃],[살살이꽃]이 될 수 있음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연금과 함께 꿈과 희망을 키우며 자라고 있을 많은 어린 아이들을 생각해 하고 ,그렇게 자라고 있을 아이들이 언젠가는 그대 젊은이들의 노후를 책임지며, 불행을 책임지는 세대 간의 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것을 믿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나는 유치원교사로서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거쳐 가는 어린이들이 그렇게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어른들을 공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로 자라도록 힘껏 도와줄 것이다.

국민연금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