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5회 장려상)든든한 아들이 되어준 국민연금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3/08/20

조회수

2059

내용

제5회 장려상
든든한 아들이 되어준 국민연금

이경미/대전시 동구 판암동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시즌이 돌아왔습니다.
문득 제가 대입시험을 치던 6년 전 일이 생각납니다.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었습니다.

집이 시골이었던 저는 첫차를 타야만 했기에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만 했습니다.
아직 여명이 밝지 않은 새벽하늘엔 그 빛을 그대로 토해내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싸주시는 도시락을 가방에 챙겨 넣고 시험 잘 보라는 당부의 말씀을 새기며 막 대문을 나서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제 등뒤에서 헛기침을 하며 따라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평상시에도 혈액순환이 되질 않아 손발이 자주 절이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진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더욱 힘들어 하셨습니다. 전날 밤도 몸이 불편하셨던지 늦도록 잠을 청하지 못하시는 듯 보였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동행을 하시겠다는 겁니다.

괜찮으니 들어가시라고 해도 아버진 버스 정류장까지 말없이 따라와 주었습니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길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버스가 도착하자 아버진 주머니에서 종이 봉지 하나를 꺼내어 내 손에 쥐어 주며 '점심밥 꼭 챙겨 묵거라"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진 제게 시험 잘 보란 말씀도 아니고 힘내란 말씀도 아닌 점심밥을 챙기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순박한 저의 아버지의 자녀사랑 법이었습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펼쳐본 그 종이 봉지 안엔 하얀 알밤 한 움큼이 들어있었습니다 .

아버진 시험 날 긴장으로 아침을 거를 딸이 걱정되었던 겁니다. 어젯밤 늦도록 잠을 청하지 못하신 이유가 '이것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제가 생 알밤을 무척이나 좋아했거든요.
평소에도 그렇게 좋아하던 알밤이면 입맛이 없더라도 몇 알 정도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라도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준비하신 아버지의 특별한 배려였던 것입니다.

부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다고들 말을 합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줄 것 없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란 뜻이겠죠. 아버지도 그런 분이셨습니다. 딸만 둘을 두신 아버지로선 이 다음 더 늙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아들이 없어 섭섭한 마음도 있었을 텐데 한번도 언니와 저에게 그런 내색 없이 저희들을 아끼고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동네 분들에게 법 없어도 살 사람이란 말을 들으시는 아버지. 소중한 생명은 작은 벌레라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자연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댐 하구에 위치한 마을이라 매년 장마철마다 가슴 졸이며 사시면서도 흙냄새가 좋다며 평생 농사를 지며 고향을 지키고 계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한 것은 97년 늦은 겨울이었습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신 아버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손발 절임을 호소해 오셨기에 그리 심각한 병은 아닐 거란 생각으로 찾은 병원에선 뜻밖에도 뇌경색(중풍)이란 진단이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저흰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종합병원에서 치료도 받아 보았으나 아버진 왼쪽 상, 하반신의 마비가 오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병이 온 것이냐고 묻는 저희들에게 병원에서는 건강하시던 분들도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쓰러지시는 분들이 있다는 말뿐이었고 한의원에서는 뇌로 통하는 혈관의 혈액순환이 되질 않아 생긴 병일 거라 했습니다.

하늘이 내려앉는다는 옛 이야기가 이런 것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가난한 시절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큰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려서부터 남은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 한평생 흙을 파고 딸자식 공부시킨다고 마을의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던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이렇게 쉬운 일곱의 나이에 뇌경색이란 병으로 나타났습니다.

서로의 집안살림을 내 살림처럼 훤히 아는 동네 분들은 아버지의 병세보다도 한 달에 들어가는 만만치 않은 치료비를 더 걱정하셨지만 우리들은 아버질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방치료와 양악치료를 병행하며 치료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치료비로 들어가는 월40여만원 되는 돈은 가난한 농사꾼의 집에선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씩 빚이 싸여가고 있을 즈음입니다.

TV에서는 연일 전국민연금시대란 슬로건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제작된 홍보물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방에 누워 TV만 응시하고 계시던 아버진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라고 한 듯이 조금은 흥분에 찬 음성으로 연금불입증서를 꺼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진 그 불입증서에서 국민연금은 사망뿐만 아니라 장애시에도 연금이 지급된다라는 내용을 보게 된 것이었고, 이튿날 아버지의 경우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본 결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진 2급 장애란 판정을 받았고 그 이듬해인 98년 12월 29일부터 매달 연금을 지급 받고 계십니다. 처음 연금을 받던 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연금은 매달 연금을 불입하신 아버지께서 받아야 하는 당연한 대가가 아니고, 남에게 나쁜 짓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버지께 내리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사람들은 흔히들 불의의 사고에 대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들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의의 사고가 나만은 비켜 갈 거란 어리석은 생각들을 갖고 있지요. 전 이 글을 읽으실 모든 분들이 ,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분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는 언제, 어느 순간에 나 자신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일임을 깨닫고 그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 또한 젊은 나이기에 연금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매달 조금씩 불입하는 국민연금이지만 어느 순간엔 큰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아버지의 사고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딸만 둘을 두신 부모님 걱정에 언니가 결혼한 후로는 남자친구를 제대로 사귀어 보질 못했는데 이제는 남자친구 하나 없던 내게도 멋진 남자친구가 생길 것만 같습니다. 매달 지급되는 국민연금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으신 아버지께 '든든한 아들 하나 생겼으니 이제 저도 마음놓고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되지요?'란 농담 섞인 진담에 부모님은 활짝 웃어 보이십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국민연금관리공단과 국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