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5회 장려상)앞날을 위한 유비무환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3/08/20

조회수

2437

내용

제5회 장려상
앞날을 위한 유비무환 (有備無患)

김우석/부산시 동래구 사직1동


병원에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물먹은 솜처럼 축 널부러진 몸을 침대에 누이고 있지만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아지고 있다. 만성신부전증 환자로 이틀에 한번씩 혈액투석을 하여야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병마로 인하여 시작된 힘들고 고통스러운 투병생활도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1993년 12월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던 중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건강에는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월1∼2회의 등산을 계속하여 근교의 웬만한 산은 다 올라보았고, 축구를 즐겨했고, 특히 20년 이상 계속한 배드민턴은 나로 하여금 건강에 대해서만은 남다른 자신감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조금 있으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증세는 점점 악화되었고 더불어 고통은 가중되어 졌습니다. 맥박은 더 빨라졌고 호흡은 거칠어져 갔습니다. 마치 100m를 전력을 다하여 달린 것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게 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택시를 이용하여 명륜동에 있는 대동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할 무렵 호흡곤란과 심한 고통으로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아내가 울먹이며 부르는 소리도 아득히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갈 수는 없다."라며 멀어져 가는 의식을 잡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의식을 되찾고 여러가지 검사 결과 '만성신부전'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3주가 지나서 퇴원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힘들고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의 배려로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제한된 활동은 많은 어려움을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매달 40만원이 넘는 약값과 병원비는 가계의 경제사정을 황폐화 시켰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받은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죽는 날까지 투석을 계속하여야 된다는 사실은 나를 극도의 절망감속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도 여러 번 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마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배려는 나로 하여금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직장 동료로부터 국민연금에서 장애연금을 지급한다는 데 해당되는지 한번 문의해 보라는 권유로 물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95년 12월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찾았습니다. 나의 사정과 병명에 대한 설명을 들은 직원 나와 같은 경우는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면서 구비하여야할 서류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장애연금 3급으로 결정되어 96년부터 분기별 80여만 원을 지급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순간 너무도 기뻤습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감추려고 한참을 고개를 위로 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살수 있다. 살아야 한다."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88년도에 처음 국민연금이 시행된다고 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도대체 그것이 노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거라고" 정말 쥐꼬리 같은 봉급으로 한푼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봉급생활자에게 국민연금이 20년, 30년 후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라고 하면서 직장동료들과 함께 잔뜩 불만의 푸념을 늘어놓으며 소주잔을 기우리곤 하였습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등으로 나라의 재정이 어려워지니까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 봉급생활자를 쥐어짜려고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국의 어느 선진국에서는 봉급의 10%∼20%를 내고 있다는 총무부서의 직원의 설명은 있었지만 당시 적은 봉급에서 3%를 적립하여 노후에 연금을 지급한다 할지라도 가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직장생활 13년째로 87년도에 은행융자로 겨우 내 집을 마련한 직후인 연유로 적은 봉급에서 융자금상환, 부모님 용돈, 생활비 및 자녀교육비를 충당하면 남는 돈이 없는 매우 어려운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던 때인지라 월급에서 국민연금이 떼어지는 것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몇 십년 이후에 주어지는 연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이고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한다는 사실과 봉급에서 먼저 떼어 감으로 어쩔 수 없이 수긍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깊은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는 나에게 이렇게도 큰 도움과 용기를 주게 될지 어찌 상상이라도 하였겠습니까?

1996년도부터 장애연금 3급으로 월 30만원을 받아오다 장애등급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여 1999년 9월부터는 장애2급으로 상향조정되었습니다. 더불어 연금액도 상향되어 현재 월 4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1998년에 IMF로 실직하게 된 이후에 아내가 운영하는 조그만 분식가게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현실에서 매월 40만원의 연금은 우리가족의 생계와 저의 치료비 충당에 너무도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연금을 받지 못하였다면 지금까지의 투병생활과 가족의 생계를 제대로 유지해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족에게는 국민연금이 구세주입니다.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어려움을 알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앞날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가진다면 우리모두의 내일은 밝고 행복한 날들이 될 것입니다. 언제 닥치게 될지 모르는 내일의 불행과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국민연금은 가장 손쉽고 유용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국민연금은 적은 부담으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