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아름다운 구속

글 김한나

새벽 시간대에 출근해 요양원의 할머니들을 보살펴드리는 새벽지기가 된 지 어느덧 8년째다. 식사를 도와 드리며, 청소해 드리며 치르는 아침의 작은 전쟁은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한다. 고단함 속에서도 웃음 짓는 나를 보며 한 뼘 정도 성숙한 스스로의 모습에 거듭 놀란다. 그렇게 친할머니께 못다 했던 내 몫의 손녀 노릇을그들에게 대신하며 마음속 죄책감을 덜어 본다. 나와 같은 장기근속 근무자가 많지 않기에 할머니들은 가족에게 받았던 소외감을 나에게서 채우셨고, 이제는 서로에게 살가운 마음붙이가 되었다.
그런데 달포 전 5~6일 정도 휴가를 내어 어디를 좀다녀왔던 것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올해 근무 조건이 개선되어 쉬는 날이 늘어나 여름에나 보냈던 휴가를 겨울에 다녀오니 할머니들이 그만 오해를 하시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들을 남겨두고 내가 일을 그만 둔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만 것. 8년 동안 늘그래왔기에 당연히 당신들 곁을 기꺼이 지켜줄 거라는 믿음을 내가 저버렸다고 생각하시며 많이도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휴가를 채우고 다시 출근 하던 날 "할머니 좋은 아침이죠? 며칠 만에 뵈니 반가워요" 하며 인사를 드리니 왠지 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할머니들은 거리감 느껴지는 빤한 시선으로 미동을 멈추시고 나를쳐다보셨다. 그 시간대에 함께 일하는 선생님의 여행 어디로 다녀왔냐는 물음에 한적한 데서 좀 쉬다왔다고 답하니, 그제야 할머니들이 예전으로 되돌아왔다. 먼저 말씀을 드리지 못했으니 오해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나직이 되내여 보았다.
"이 또한 할머니들에게서 오롯이 느끼는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나는 그 구속마저도 달갑게 여긴다. 아무쪼록 당신들 삶의 뒤안길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벗이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이 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할머니들 방 안에 가득하기를.



아름다운 구속

글 송준용

<가요무대>를 즐겨 시청한다. 흘러간 옛 노래로 진행되는 그 프로를 보고 있으면 이 민족이 겪어왔던 수난사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하여 해방의 기쁨,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전쟁 속에서 고향을 등져야 했던 피난살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혈육을 그리는 마음. 그 모든 사연들이 노래 속에 녹아 있으니 어찌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이따금 <가요무대>에 가요계의 원로들이 출연하여 젊은 날의 신명을 한껏 재현하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분들의 식지 않은 열정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나이라는 족쇄를 벗어버리고 훨훨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 한 번 뿐인 인생을 즐기다 갈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도 그들처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한국문인협회에서 개설한 문예창작 교실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며 잊고 있었지만 고교시절에 품었던 문학의 불씨를 되살려보고 싶어서였다.
결론적으로 대박이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자비출판이긴 하지만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에세이집을 펴냈고 많은 독자들로 부터 분에 넘치는 호의와 찬사를 받았으니 말이다. 나는 전과는 달리 무료할 시간이 없었다. 무료하기는 커녕 오히려 시간을 쪼개 써야할 형편이었다. 강좌를 같이 수료한 분들이 너덧 되는데 매월 한번 씩 제출한 작품을 윤독하면서 작품 평을 하였다. 그 다음은 술 한 잔씩을 곁들이면서 인생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한다. 느지막한 나이에 만난 사이지만 '문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십년지기처럼 가까워졌다.
매주 <가요무대>를 이끌어 주시는 김동건 님, 그리고 원로 가수분들. 당신들은 현역입니다. 나이라는 족쇄에 묶여 시들어버리지 말고 언제까지나 젊음의 상징으로 남아주십시오. 시청자들의 가슴을 다독이는 동반자가 되어 주십시오. 나는 당신들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행복합니다. 나도 현역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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