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으로 행복한 100세 시대를
글 유희원 부연구위원_국민연금연구원
100세 시대의 도래 축복인가, 새로운 고난의 시작인가?
20세기 들어 영양 및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장수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인간의 평균 수명은 극적으로 증가해왔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61.9세에 불과했던 기대수명이 2014년 기준 82.4세로 급증하여, 40여 년 만에 20년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100세 시대*’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 100세 시대: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연령(최빈사망연령)이 90대가 되는 시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 산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어 온 일이었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목전에 둔 오늘날 장수는 복(福)으로서의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음은 물론, 인간의 삶에 있어 심각한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노령은 장애, 질병, 산재, 사망 등과 함께 대표적인 사회적 위험(social risk)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노령을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년기에는 생산능력이 떨어져 소득의 중단 또는 상실을 경험하고, 빈곤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근로능력이 쇠퇴한 노인도 농사일에 참여하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산업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노인이 지닌 노동력의 가치는 심각하게 저하되었고, 결국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소득 상실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우리나라의 평균 퇴직연령은 2014년 기준 약 52.5세로, 100세 시대를 가정한다면 약 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위 또는 불안정한 일자리 상태*에 있어야 한다.
* 많은 사람들이 50대 초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한 이후 생계유지를 위해 임시·일용직이나 시간제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재진입하게 됨.
이에 더해 핵가족화나 노인 단독가구의 증가 등과 같은 최근의 가족구조 변화 역시 노인의 소득 상실 및 빈곤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과거 대가족 구조 하에서 생산능력이 떨어진 노인들은 자녀의 부양을 통해 최소한의 삶의 욕구는 충족시키며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대가족 체계가 붕괴되고 자녀의 부모 부양 의식 역시 퇴색됨에 따라, 소득활동 및 자립 능력이 결여된 상당수의 노인들이 불안정한 노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생산능력이 떨어져 은퇴를 하게 되며, 시장이나 가족으로부터 적절한 노후소득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빈곤상태에 빠질 수 있다. 물론 근로활동 시기에 일정 규모의 자산을 축적한다면 상대적으로 안락한 노후를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내재된 근시안성(myopia)을 고려했을 때, 근로 및 소득활동 시기에 향후 30~40년 뒤의 일을 대비하여 자산을 축적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노령문제에 대한 대비를 개인에게 맡겨 온 한국 사회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49.6%에 달한다는 점은 장기 시계(視界)에 걸친 노후대비능력이 결여된 인간의 특성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과 시장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축소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988년부터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하여 시행 중에 있다. 공적연금제도를 100년 이상 운영해 온 선진국에 비해 일천한 역사를 지녔지만, 그간 소규모 사업장 종사자, 도시 · 농어촌의 지역가입자 등을 제도 내로 포섭하며 비교적 단기간에 명실상부한 ‘전 국민의 연금제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노령문제의 해법, 국민연금
그렇다면 노령이라는 사회적 위험과 그에 따른 암울한 미래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개인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여 복지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시장(시장에서의 경제활동)’, ‘가족(가족 내 혹은 가족 간 부양)’, ‘국가(국가의 공적자원)’등이 언급되곤 한다. 노인 역시 노후의 소득중단이라는 위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 수단을 활용할 수 있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심화된 상황에서는 시장과 가족이라는 두 가지 주요 수단을 활용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 국가라는 수단은 활용할 여지가 상당 부분 남아있고, 이는 노령문제에 대응함에 있어 시장이나 가족보다 우월한 대응기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와 핵가족화를 경험한 서구 선진국의 경우, 길게는 약 130여 년 전부터 국가가 시장이나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노령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성공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과 시장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축소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988년부터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하여 시행 중에 있다. 공적연금제도를 100년 이상 운영해 온 선진국에 비해 일천한 역사를 지녔지만, 그간 소규모 사업장 종사자, 도시·농어촌의 지역가입자 등을 제도 내로 포섭하며 비교적 단기간에 명실상부한 ‘전 국민의 연금제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민연금제도가 노령문제의 해결을 위한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노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소득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인연금이나 저축 상품 등과 같은 자발적인 노후준비 필요성을 역설하며 국민연금제도를 부정하기도 하지만 국민연금보다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노후소득원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간투자기관을 통해 자산을 운용할 경우에는 물가상승이나 경제성장률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실질적인 노후소득보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 반면, 공적연금제도는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기대수명 등의 변화로 인해 초래되는 위험들을 사회전체 구성원에게 분산시키고 공동책임을 지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제도는 연금급여를 물가에 연동하여 그 실질가치를 보전해 주고 있다.
이러한 장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국민들이 국민연금제도를 노후소득원으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의무적용 방식의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12월 현재 18-59세 총인구 중 47.7%(경제활동인구 기준 25.4%)가 국민연금제도에서 제외되어 있고, 상당수가 국민연금 당연적용대상임에도 납부예외나 장기체납 등의 사유로 연금수급권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제도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사람들이 보이는 이러한 행태가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시기에 겪는 어려움은 소득활동능력이 결여된 노년기에 겪게 될 어려움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보험원리를 내재한 국민연금제도의 특성상 젊은 시기의 부실한 기여이력(contribution history)은 부적절한 연금급여로 이어져 노년기의 빈곤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 다행히도 현행 국민연금제도에서는 각종 크레딧(출산, 군복무, 실업) 제도,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사업, 농어업인 보험료 지원사업 등과 같은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여 연금취약계층의 제도 진입을 유인해오고 있다. 최소한의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잘 활용하여 근로활동시기에 충실히 보험료를 납부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위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공단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