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골 노부부의 호의
글 유재범 독자님
재작년 이맘때쯤 친구와 함께 둘이서 오대산 등정을 한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올라서 해지기 전에 내려오자는 계획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한참을 헤매고 날이 어둑해졌는데도 하산 길을 찾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야간 산행은 계획하지 않았기에, 비상용 랜턴을 이리 저리 비추며 어떻게든 내려갈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몰아치는 눈보라에 전진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하산은 포기하고 근처에 산장이나 대피소가 있으면 하루를 묵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기에 산장이나 대피소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 어두운 밤 산속을 헤매던 우리는 천만다행으로 한 민가의 불빛을 발견했다. 외딴 산속에 노부부 두 분이 사는 집이었다. 낯선 사내 둘의 출현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이내 식사도 대접해주고, 잠 잘 곳도 마련해주었다. 가끔 우리 같은 조난 등 산객들이 찾는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에 사례를 조금 드리려고 했지만 이내 사양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계속 권하고 어르신은 사양하길 옥신각신하던 끝에 “정 그러면 내일 아침에 장작이나 패. 그걸로 사례 한 셈 치지.” 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산골 노부부 어르신들의 호의 덕분에 추운 겨울 산속에서의 비박을 면할 수 있었다. 구수한 장작 냄새코 끝에 전해오는 따끈한 아랫목에서 하루 종일 산속에서 헤매느라 녹초가 된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 참으로 달콤한 잠을 즐길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약속대로 우리는 도끼로 장작을 패 올겨울 내내 쓰시고도 남을 만큼 쌓아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을 하였다. 눈 쌓인 겨울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2년 전 산골 노부부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비가 내리는 날엔
글 홍경석 독자님
신문에서 비와 연관된 수필을 본적이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쓴 글인데 제목은 ‘비(雨)를 향한 한국인과 영국인의 은밀한 사랑’이었다.
필자는 영국인들은 비를 사랑하여 아예 우산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고 했다. 반면 한국인들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산을 빌리려 난리라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에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야구 경기와 야외콘서트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친구와의 약속까지 취소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급작스레 비가 쏟아지는 경우 우산을 준비 못 한 이들은 우산을 빌리고자 동분서주한다.
반면 나는 비를 사랑한다. 그것도 철저하게.
소년가장 시절 우산 장사를 했다. 당시 비닐우산은 50원이었는데 하나를 팔면 20원이나 남는 꽤 짭짤한 벌이였다. 때문에 날이 좋은 날 손님들의 구두를 닦으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당시 구두닦이는 구두를 닦아준 뒤 받는 돈을 그 업계의 무시무시한 형과 반타작을 하는 구조였다. 반면 우산장사는 수익 모두가 온전히 내 몫이었기에 그처럼 비가 내리길 학수고대했던 것이었다.
우산을 많이 파는 날은 마치 전장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도 힘이 붙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주에 더하여 돼지고기도한 근 푸줏간에서 썰어갈 수 있어 더욱 신이 났다.
그처럼 비가 참으로 고마웠기에 나는 여전히 비를 사랑한다.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가 오기를 빌어본다.
*「내마음의 풍경」은 독자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원고로 꾸며집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npszine@n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