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국>

공무를 처리함에 있어 끝까지 책임을 다하다

조선 후기의 무신인 이주국의 자는 군언(君彦), 호는 오백(梧栢)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적(滴)이며, 어머니는 증찬성 구상정(具尙禎)의 딸이다.

영조 16(1740)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에 임명된 뒤 훈련원 주부·판관(종5품) 등을 지냈다. 1754년 충청도병마절도사, 1755년 경상
우도수군절도사, 1759년 함경도병마절도사, 1762년 장헌세자(莊獻世子)장례 때 여사대장(輿士大將, 국왕이나 왕비를 장사지낼 때 상여를 매는 군인들의 책임자)을 역임하고, 1763년 평안도·황해도 병마절도사, 1766년 삼도
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냈다.

1773년 황해도·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이때 남당(南塘)에 성을 쌓는데 모두가 흙으로 쌓자고 하였으나 남당은 땅이 습지보다 낮으므로 돌로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76년 총융사에 임명되었으며, 이 해에 영조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다시 여사대장이 되었다.
1796년 훈련대장을 사직하면서 군제삼사(軍制三事)를 올렸는데, 그내용은 첫째 지방의 군사를 뽑아서 차례로 서울의 군영으로 보내던 번상(番上)으로 인한 경비의 낭비와 폐단을 고려하여 어영청·금위영의 군자(軍資)로써 한양의 장정을 모병하여 충원할 것, 둘째 궁궐순찰을 위하여 50칸에 1군포(軍鋪), 1군포에 군 4인을 두어 수직(守直)할 것,
셋째 수군·육군의 지역배치를 고려할 것 등이었다.

용모가 건장하고 뛰어났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 있고 부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아서 명망이 있었으나 반목할 때가 많았고, 여러 번 문신들로부터 횡포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홍국영(洪國榮)이 실세한 뒤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성도·궁성 호위의 임무가 주어졌다. 춘당대(春塘臺)에서 활쏘기를 할때의 모습이 추운 겨울철에도 잎이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 같다고 하여 정조가 오백이라는 당호를 하사하였다.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문무에 능하여 임금의 총애를 받다
정조가 이주국을 아낀 것은 다음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정조가 수원 현륭원에 행차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노량에 이르러 용주로 나루를 건너 강 머리에 머물렀다. 마침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남풍이 솔솔 불어 삼막사의 종경(鐘磬) 소리가 들려왔다.

정조가 우연히 시 한 구를 얻어,
“구름이 옛 절은 숨겨도 경쇠소리는 숨기지 못하네.”
하고 읊고 나서, 대구(對句)를 생각했으나 얻지 못했다.

이때 시종신(侍從臣조선시대에 국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국사를 처리하던 신하의
총칭)에게 물었으나 대답하지 못하더니, 한 재신(宰臣)이 아뢰기를,
“대장(大將) 이주국이 본래 시에 능통합니다.”
하자 임금이 급히 표신(標信궁중이나 군영에 급변(急變)을 전할 때나 왕의 긴급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궁궐을 드나들 때 사용되던 출입증)을 내려 앞으로 나오게 하자
주국이 즉시 응대하기를,
“비가 강 마을을 적셔도 연기는 적시지 못하네.”라 하니 임금이 크게 아름답게 여겨 감탄하고 상을 주었다.
문무에 능한 그의 재주는 이렇듯 뛰어났으며, 그의 대인다운 성품은 다음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죽은 병사의 식솔을 거둬 보살피다
이주국이 장군으로서 한강 사장(沙場)에서 병사들을 데리고 진법(陣法)을 익히고 있었다. 옛날 군법에는 군오(軍伍군대의 대오)에 늦게 오는 자는 간략히 곤장을 때리는 법이 있었다. 그런데 늦게 온 한 사람이 몸이 약해서 법에 의해 곤장을 때렸더니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주국이 진법 익히던 것을 마치고 돌아오다 보니 그 병사의 처자가 시체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나이가 십여 세로 보이는 병사의 아이가 이주국을 돌아보는데, 아이의 얼굴에 살기가 가득하여 바로 쳐다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주국이 두려운 생각이 나서 그 처자를 불러 오게 하였다.
“내가 일부러 네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라 군율을 행하다가 죽음에 이른 것이니 너희 모자는 나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죄 없이 죽은 것은 참혹하다.”
이주국이 장사지낼 비용을후하게 주니그아내는 감사함을 금치못하나, 그 아들은 원망과 독한 마음을 품어 눈을 흘기고 이를 갈아 살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주국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앞으로 너희들이 생계가 몹시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네 자식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도 없을 것이니, 내가 너희들을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줄테니 나를 따라오너라.”
“제 남편이 죽은 것은 군법을 어긴 까닭입니다. 그런데도 저희를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주국은 죽은 병사의 아내와 아들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와서 사랑하고 돌보기를 친자식과 같이 하여 먹고 입히는 것을 후하게 하고 아이가 자란 후에는 아내를 얻어주어 항상 곁에 머물게 하고 보살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깊은 후에 병사의 아들이 이주국의 방 밖에서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이주국은 급히 옷을 입고 일어나 죽부인을 이불 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방구석으로 피하여 동정을 보고 있었다. 조금 후에 그가 단도를 가지고 들어와서 이불속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소인이 비록 각하의 후한 은혜를 입었으나 어찌 사람의 자식이 되어 아비 죽인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각하는 소인의 배은망덕을 괴상히 여기지 마시옵소서.”

이 때 이주국이 뒤에서 그의 허리를 껴안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이미 내가 이불 속에 들어 있는 줄 알고 칼로 찔러 아비의 원수를 갚았으니 이제 반드시 나를 죽일 필요가 있겠느냐. 나는 앞으로도 너를 효자로 여겨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니 너 또한 마음을 돌리고 내 집에 머물며 한결같은 마음 변치 말라.”하였다.

그 아들은 몹시 놀라 어리둥절한 가운데에도 자신을 생각하는 이주국의 마음에 크게 감동하여 그에게 큰 절을 올렸다.

“각하께서 비록 넓은 덕을 베푸시나 소인이 이미 만 번 죽을죄를 범했습니다.  이렇게 큰잘못을 하고도 어찌 다시 문하(門下)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그대로 표연히 사라졌는데, 사람을 시켜 그 집을 찾아보니 그 어미와 아내도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스스로의 실수나 판단 착오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법도에 맞게 따랐음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주국의 경우에도 군법에 따라 시행한 일이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과와 잘못은 언제든 생길 수 있으며, 문제는 잘못을 하고 난 뒤 이에 대처하고 처리하는 방식일 것이다.

법을 따르다가 발생한 일이었지만 담당자로서 잘못된 결과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인지상정에 따라 그들의 가족을 보살피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 그 아들을 용서하였으니 그 아들도 원망의 마음을 버리고 이주국의 곁을 떠날 수 있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그것이 위중할수록 자신의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공무에서 책임을 서로 미루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주국은 가르쳐 주고 있다.

출처:국민권익위원회 홍보담당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