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주>

나라의 모든 물건은 백성의 힘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박한주는 밀양 사람으로 자는 천지(天支), 호는 우졸재(迂拙齋)이다.

6, 7세에 이미 글을 쓰고 시도 지어,‘ 대인(大人)이 우뚝서니 천지에 높다’는 글귀가 남아 있다.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학문과 식견이 높고 문장력이 뛰어났다.

성종 14년(1483)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별시(文科別試)에 급제하였다.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 조선시대 나라의 제사에 쓸 짐승을 기르는 일을 맡아본 관청의 종7품 벼슬)에 제수된 뒤 한성부참군(정7품)·사헌부감찰·사간원정언·성균관전적 등을 지내고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자진해서 창녕현감으로 나와 어진 다스림을 펼쳤다.

임기를 마치고 다시 내직으로 들어가 종부시(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을 편집 기록하고 종실(宗室)의 잘못을 조사 규탄하는 임무를 맡아보던 관청)
주부(종7품)를 거쳐, 연산군 3년(1497)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게 하는 일을 맡아 보는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실덕(失德)을 직간(直諫)하였고, 또 노사신(盧思愼), 임사홍(任士洪) 등의 간악함을탄핵하는상소를올렸다. 연산군의 횡포가 점차심해지자 외직을 청하여 평해군수, 예천군수 등을 지냈다.

임금의 호통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밝히다
이처럼 항상 도(道)를 따르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박한주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연산군이 그를 불러 간관(諫官)으로 임명하였을 때의 일이다.

박한주가 임금 앞에 나가서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종묘사직과 능침(陵寢, 임금과 왕후의 무덤)에 가서 한 번도 친히 제사를 지내지 않고 놀고 잔치하기만을 밤낮으로 계속하십니까? 백성들이 임금이 효도를 다하지 않는다고 할까 두렵습니다.”
“눈에 병이 있어 행하지 못했노라.”
임금이 핑계를 대자 박한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후원에서 말을 달리고 공을 치시며 용과 봉황 무늬의 화려한 장막을 치고 잔치하고 노는 일이 허다한데, 왕께서는 어찌 눈병 때문이라 하교(下校)하시나이까?”
그러자 연산군이 발끈하고 낯빛이 변하면서 엉뚱한 호통을 쳤다.
“용봉의 장막이 네 물건이냐?”
그러나 박한주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밝혔다.
“그것은 물론 제 물건이 아니오나, 모두 백성들의 힘을 거쳐서 나온 것이오니 백성의 장막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옵니다. 어찌 임금님스스로의 사사로운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에게도 서슴없이 간언을 하였던 박한주는 결국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 문하의 사람으로 붕당을 지어 국정을 비방한다는 죄명으로 곤장(杖) 80대에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고, 연산군10년(1504)에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문제로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결국엔 능지처참되었다.

그렇지만 박한주의 학문과 성품은 널리 인정되어 중종 1년(1506) 중종반정으로 다시 명예가 회복되었고, 1517년 김정(金淨), 조광조(趙光祖) 등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사후(死後)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으로 벼슬의 품계가 높여졌다. 밀양 예림서원(禮林書院), 함안 덕암서원(德
巖書院), 대구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되었다. 남긴 저서로는『우졸재집(迂拙齋集)』이 있는데, 부록의『무오화록』·『유자광전』·『갑자사화록』등은 무오사화 및 갑자사화의 원인과 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