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후한시대는 조정의 오리(汚吏)들이 판을 치고 정치와 관료가 문란 부패했던 시대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에도 고결한 관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후한 제6대 임금 안제 때 양진이라는 사람이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양진은 관서 출신으로 일찍이 학문에 전념하여 박학다식하고 인격이 아울러 출중한데다가 청렴결백하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관서의 공자’라는 칭송을 받고 있었다.

  양진이 동래태수가 되어 부임할 적에 임지로 가던 도중 창읍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현령인 왕밀이라는 사람이 밤늦게 혼자 찾아왔다. 사연인즉 지난날 양진이 형주자사로 재임할 때 왕밀이 재주가 있고 총명하며 인품이 무던하다고 보아 수재로 천거하여 도움을 준 일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옛날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정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느닷없이 왕밀이 품속에서 황금 열 냥을 꺼내더니 공손히 양진 앞으로 내밀며 말하는 것이었다.

  “마땅히 드릴만한 물건도 없고 해서 이걸 가지고 왔습니다. 약소하나마 제 성의로 아시고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자 양진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러나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미 옛날부터 자네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네의 학식과 인물에 대해서도 확실히 기억을 하고 있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잊었단 말인가?”

  “아, 아니올시다, 태수어른! 단지 옛날에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소인의 작은 정성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런 밤중에 이 방안에는 태수님과 저, 단 두 사람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