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이 착하고, 물같이 순한 시인 김용택
글 조미정 / 사진 안지섭
시인 김용택의 글을 읽다보면 자연이 그립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화려하게 치장한 언어가 아닌,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 한 폭을 닮은 그의 시. 섬진강변에 뿌리 내린 그의 제2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누구나 들러도 좋은, 김용택의 집
전북 전주시 진메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김용택의 작은 학교’라고 쓰인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그 길 그대로 섬진강변을 따라 커다란 느티나무와 정자가 자리잡고 있는 곳, 시인 김용택의 집이다. 10여년의 전주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4월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왔다.
“아직 한 달도 안 되었기 때문에 적응 기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시골의 삶이란게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독립된 삶이 보장되던 아파트에 비해 조금은 수선스럽고 뒤숭숭한 며칠이 이어지더군요. 그렇다고 삶을 방해한다는 건 아니고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사람 뿐 아니라 나무, 풀, 새들과의 교감이 이뤄지고, 무엇보다 정면이 다양해서 좋아요. 나무처럼 말이죠.”
사면이 벽으로 이뤄진 아파트에선 등 뒤에 벽이 있고 앞이 뚫려있어서 정면이 한정적이다. 하지만 자연 속 나무는 딱히 앞뒤가 없다.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나무 뒷모습, 저쪽에서 보면 거기가 나무의 얼굴이다. 김용택 시인은 이러한 모습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보통 새벽 4~5시쯤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전날 일기를 정리하고, 그 외에 써야할 글이 있으면 아침에 쓰는 편이에요. 그러곤 섬진강변을 따라 한시간 남짓 산책을 다녀오는데, 그 시간이 가장 재미있어요. 길을 걷다보면 새들이 어찌나 지저귀는지, 구간마다 시간대마다 나타나는 새들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옛날엔 시골에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인데 정말 새롭고 재미있어요. 새들의 지저귐도 어떤 새는 ‘어쩔라고~ 어쩔라고~’ 하고 울고, 어떤 새는 ‘김치찌개~ 김치찌개~’하고 울어요(웃음).”
시인은 휴대폰에 직접 녹음한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시인의 표현을 듣고 들어서인지 정말로 새들은 말을 하듯, 일정한 단어를 반복하고 있는 듯했다. 흔한 새 울음도 시인의 입을 거치면 하나의 운율이 되는 것 같았다.
김용택 시인은 시골의 삶을 ‘단순하고 사실적’이라고 말한다. 시골의 정직함에 영향을 받은 듯 문학 역시 단순함을 지향하게 된다고 한다. 워낙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작품 세계를 담은 그였기에 자연을 닮은 단순함이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시골은 땅을 파면 땅이 그대로 파여지고, 돌 하나를 집어 얹으면 돌이 옮겨지는 지극히 단순하고 정직한 삶의 연속입니다. 간혹 인간 내면의 깊은 세계를 함축해서 표현해야만 ‘문학’이라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이제 그런 시각에 동의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말을 멀리 돌려서 복잡하게 트는 것이 오히려 재미없게 느껴져요. 새가 날아가면서 우는 것, 일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내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정리했을 때 문학이 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쓰는 언어에 화장을 시키고, 삶을 포장해야만 문학으로 여기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새가 날아가면서 우는 것, 일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내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정리했을 때 문학이 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쓰는 언어에 화장을 시키고, 삶을 포장해야만 문학으로 여기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하고 정직한 시골의 삶
농부들의 경험에 의하면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 새싹이 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에 토란이 난다’고 한다. 비교적 싹이 늦게 나는 토란이 도리깨 내리치는 소리에 자다가 깜짝 놀라서 싹을 틔운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문장이야 말로, 은유와 함축, 경험이 축적된 시 그 자체인 것이다.
올해 상반기 쯤 또 하나의 시집을 출간할 예정인 시인은 요즘 시골로 오기 전 쓴 시를 정리하고 있다. 그중 ‘산같이 착하고, 물같이 순한’이라는 글귀가 그의 눈길을 끈다.
“‘산같이 착하고, 물같이 순한’ 글을 쓰고 싶고,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또한 요즘 들어 돌아가신 아버지가 많이 생각나는데, 툇마루에 앉아 아버지랑 이야기 나누던 장면이 기억나요. 그때 내가 산을 가리키며 무슨 이야기를 했더니 빙긋이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한 장면이 그림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그 모습과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시인의 글은 다채로운 연둣빛을 지나 초록의 산천이 되고, 계절의 변화를 물빛으로 담아내는 섬진강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