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병실친구
글 권성경
얼마 전 엄마는 암수술을 받으셨다. 수술을 앞두고
여러 가지 검사들이 많았기에 일찌감치 입원을 했다.
엄마가 입원한 병동 4인실에 계신 분들은 수술날짜
를 기다리거나 항암치료 중인 분들이었다. 모두들
초췌한 모습이었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침대에 누워 계신 엄마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환하게 웃으며 병실에 들어섰다. 처음엔 병문안을 온 환자의 지인인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분은 비어있는 침대 쪽으로 가더니 짐을 내려놓고 활기차게
인사를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검사를 받으러 오
신 분인 줄만 알았다.
엄마는 병원에서 제공되는 식사가 입에 맞지 않는다며 많이 드시지 못했다. 그런데 맞은편 병상의 그 분은 너무나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워내셨다. 엄마는 그모습을 보시다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병원 밥이 그렇게 맛있어요?”
“맛있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먹어야죠. 힘이 있어야 병도 이기죠.”
너무나 밝은 목소리에 다른 두 분도 덩달아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서 병실 환자 네 분은
본격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분은 몇 년 전 췌장암 수술을 받으셨고 이미 열 번이
넘는 항암치료를 받아왔다고 했다. 이번에도 며칠간
항암치료를 받으러 입원하셨다고. 항암치료 횟수에도 놀랐지만 병명에 더욱 놀랬다.
“나도 처음엔 놀랐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어차피
받을 수술, 즐거운 마음으로 받자 싶었어요.”
그 분은 남편도 없이 평생 딸 하나 바라보고 억척스럽게 키워오셨는데, 이제 막 시집가서 애 낳고 사는 그 딸을 두고 먼저 갈 수 없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했다.
“걱정 마세요. 생존율이 그렇게 낮다는 췌장암도 이렇게 수술 잘 받고도 회복하고 사는데, 수술 잘 받았을 수 있어요. 수술만 끝나면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실제로 그 분은 항암치료 중에도 누구보다 잘 드시고 잠도 쿨쿨 주무셨다. 콧노래로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것도,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으며 깔깔 웃는 일도 그 분 몫이었다.
그 분과 함께한 며칠이 엄마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왜 내 인생에 암이 찾아왔는지 억울함과 불안감을
놓지 못했던 엄마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되었다. 힘들고 지칠 때 ‘나도 그랬어. 그래도 잘 되더라.
힘을 내봐. 곧 괜찮아져’라는 든든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따뜻한 위안이 되는지, 특별한 병실 친구였던 그 분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붕어빵
글 박정도
30여 년 전 군대를 전역하고 붕어빵 장사를 한 적이 있다. 집 앞 초등학교 정문에서 코흘리개들을 상대로 붕어빵을 팔았다. 연탄으로 불을 피워 반죽한 밀가루와 팥소를 빵틀에 넣어 구우면 붕어빵 냄새를 맡고 하굣길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내게로 왔다.
온종일 서있다 보니 다리와 허리가 아프고 연탄가스를 마시니 두통이 생겼다. 돈 버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절감했다. 그래도 내가 구운 붕어빵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고 행복했었다. 퇴근 길 아버지가 가족 간식으로 한 봉지씩 사갈 적엔 보람을 느낄 수도 있었다. 장사를 끝내고 집에 와 하루벌이를 결산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밀가루 반죽의 양이나 팥소, 굽는 시간에 따라 모양이나 맛, 색상이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찍어낸듯 일정하고 약간은 어수룩해 보이는 붕어빵 모양이 우리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버스정류소나 재래시장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엔 어김없이 붕어빵 장수가 붕어빵을 구우며 길손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달
콤한 붕어빵에서 포근함과 친근감을 느낀다.
붕어빵은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맛볼 수 있는 길거리
주전부리다. 천 원어치면 심심한 입을 달랠 수 있고
가족이 먹더라도 3~4천 원어치면 충분하다. 끼니 사이에 먹기 제격이다. 호주머니가 얄팍해도 사 먹기에
부담이 덜하다. 붕어빵 한 봉지 사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소곤거리며 소박한 행복을 누려 보자.
지금도 붕어빵 포장마차를 보면 젊은 시절의 그때가
생각나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붕어빵 포장마차에 들러 한 봉지 사서 가족들과 오붓한 분위기를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