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경제와 농업인의 노후 준비
살아온 지역을 떠나지 않고 여생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정책적 지원과 함께 노후대책에 대한 농업인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write 백승우(전북대학교 교수)
노인 문제는 우리 사회 공동의 문제이자 나 자신의 문제
모내기 등 농사일로 바쁜 요즘, 농촌에서는 ‘환갑노인은 막걸리 심부름하고, 80세는 되어야 비로소 잔소리를 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노인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촌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오늘날 노인 문제는 농촌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반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의 문제이자 앞으로 나자신에게 다가올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이러한 문제인식 속에서 최근 우리나라 농촌경제의 현상과 노후준비 실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농산물 가격 하락과 농업소득 감소
우리나라 농업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농산물에 부과되던 관세가 폐지되어 값싼 농산물이 수입되면서부터다. 그 이후 나라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크게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와 제주도의 감귤이 싸우는 전쟁터가 됐다. 농산물 시장 개방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업은 그 어느 때 보다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통계청은 2016년 80kg 기준 쌀 한 가마의 가격을 12만9000원이라고 발표했다. 17년 전인 2000년 20만2000원과 비교해 보면 64%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평균 2.4%의 물가인상률을 감안한다면 사태의 심각성은 훨씬 크다. 농산물 가격 하락은 곧바로 농업소득 감소로 이어지게 되는데, 농업소득은 농업 총수입에서 경영비를 빼면 된다. 2002년도 농업소득 비중은 56.5%였으나, 2016년에는 30%대로 추락했다. 그만큼 농산물가격은 내리고 농업경영비는 올랐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농업소득 감소로 농가의 소득과 도시가계 소득의 격차는 사상 최대치로 벌어지고 있으며 농촌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라는 빈곤의 악순환 구조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생명 산업이자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농업, 포기할 수 있나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고 농업소득은 감소해서 경쟁력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지만, 농업의 역할과 기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시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농업은 국민의 먹거리를 담보하고 있는 생명 산업이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오던 농과대학이라는 명칭을 쓰는 학교는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다.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그 명칭이 대부분 변경 되었다. 농업은 곧 ‘생명’이라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농업은 생명 산업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식량안보를 책임지고 있다. 그 외에도 농업인이 땀 흘려 일구는 많은 농경지는 담수 기능을 통해 홍수를 조절하고 토양 침식을 막아 국토를 보전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생명 산업으로서의 이러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은 더욱 확대되어가고 있다. 생명과 연결된 소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업인이 개방의 파고와 함께 악순환의 구조에서 힘들어하고 있지만 농업은 결코 포기될 수 없는 산업이며, 생명 산업의 주요한 공간이고, 주역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농업노동력의 노령화와 미약한 노후 준비
앞서 70대 이상의 고령농업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의 풍경을 이야기하였듯이 농업노동력은 급속하게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 유엔의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2017년도에 이미 고령사회가 되었고, 농촌 지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농촌 지역 의 노령화 비율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지만 농업인 대부분의 노후대책은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를 보면, 농업인 57%는 노후대책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인들이 노후를 준비하는 방법으로는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이 32.2%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저축 14.5%, 공적연금 12.2% 순으로 나타났으며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4.1%로 나타나고 있다. 연금의 필요성은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연금의 효과성은 생활 수준이나 소득계층별로 다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업인에게 연금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농업인 정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농업소득은 떨어지는데, 값싼 수입농산물은 종류나 물량이 점점 더 확대 되면서 농산물 가격은 어디까지 떨어질지 불확실하고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농업소득 또한 기대하기 힘들다. 농촌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노령화와 부녀화로 노동의 질적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흔히들 농업에는 정년이 없다고 한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요즘 같이 조기 퇴직하는 시대에 농촌에서의 환갑은 청춘에 불과하니 분명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농업에 정년이 없다고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것인가? 최근 농업인의 정년 기준이 65세로 법제화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보험사의 보험금 산정기준일 뿐이다. 농업인도 이제는 농사 규모를 줄이거나, 그만둘 시기에 대한 고민과 함께 노후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노후대책에 대한 해답은 공적연금
평생 농사일을 해온 농촌노령자의 경우 대다수가 공적연금의 수혜를 받지 못해 노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금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확보와 살아온 지역을 떠나지 않고 여생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정책적 지원과 함께 노후대책에 대한 농업인 스스로의 노력도 매우 필요하다. 농업인 정년 65세를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은퇴 후 적게는 20년, 많게는 40년을 살아야 하는 100세 시대 가 다가오고 있다. 잔병에는 효자가 없다고 한다. 훗날 나이 들어 돈 없고 힘 없을 때가 되면 이미 늦다. 불확실성의 현대사회, 그리고 농촌의 미래속에서 확실한 노후대책은 무엇일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우리의 생명 산업을 지키고 있는 자랑스러운 농업인! 이제 노후대책의 해답을 공적연금에서 찾아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