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당신은 살림꾼
제12회 국민연금 수급자 생활수기 공모전 - 우수상 고명희
“안녕하세요?
”“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네..... 장애연금 신청하러 왔습니다.”
2000년 8월 21일.‘뇌졸중’이라는 무서운 병이 남편을 덮쳐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반쪽 육신만을 남겨줬다. 남편의 머리는 기억도 추억도 끄집어낼 수 없이 큰 흉터들로 가득하다. 짜릿하고 달콤했던 연애이야기, 신혼이야기로 가슴 두근거릴 수도 없다. 자기를 꼭 닮아 좋아하던 사랑하는 아들에게 세상 살아내는 지혜를 들려줄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닫히고 묻혔다. 가슴 미어지는 일이다. 무지(無知)로 예고를 알아채지 못한 어리석음은 평생의 한으로 남는다.
공단 문을 두드리기까지 주춤주춤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상이 뒤범벅 허둥지둥 긴 숨 내몰아 쉴 틈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빴다. 아내로, 엄마로 15년을 살아온 내가 가정을 송두리째 책임져야 하는 일은 두려움으로 밀려왔고, 세상에 부딪쳐야 하는 많은 일들은 서툴기만 했다. 검사실, 수술실, 입원실, 중환자실 오가며 가슴 조이던 많은 시간들. 기억 한 조각, 발걸음 한 걸음이라도 붙잡기 위해 매달리던 재활치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뇌병변장애 2급이라는 평생에 없어도 될 이름을 얻었다. 위험한 고비와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진료기록부와 의사소견서, 장애증명서를 공단에 제출하기 위해 챙기다 보니 제법 두툼한 뭉치가 마음을 또 한 번 아프게 했다.
장애연금 신청 기간 만료를 코앞에 두고 공단을 찾은 그 날, 상황을 안쓰러워하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담당 직원 덕분에 떨리는 가슴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공단 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착하기 그지없는 내 신랑이 왜! 든든했던 아이들의 아빠가 왜 왜.......왜!
남겨준 육신, 행여 그마저 멈추게 될까 두려워 신발 신겨 끈 옭아매 나서보기도 하고, 굽어진 손가락에 연필 쥐여주고 한 줄 긋는 선에 웃음 짓고 두 줄 긋는 선에 손뼉 치고, 색바랜 사진 꺼내놓고 기억 살리기에 애쓰다 보면 작은 희망의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며 나를 흥분시켜 기적을 꿈꾸게 하기도 한다. 내일 아침 눈 떴을 때 “여보, 아이들 어디 갔어?” 제발 그래주길…….
16년이라는 긴 세월은 내게 슬픔과 고통만을 주지는 않았다. 나를 사람으로 키워 나갔다. 사랑을 가르쳤고 겸손을 가르쳤고 용기와 지혜도 주었다. 당시 초6, 중3이었던 두 아들도 아빠의 착한 성품을 닮아 반듯하고 씩씩하게 자랐고, 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거뜬히 하고 있다. 감사함이 넘쳐난다. “여보! 미안해 당신이 많이 잃고서야 우리는 배웠고 알 수 있었어. 정말 미안해.”
2006년 3월 20일, 공단으로부터 ‘장애 2급 지급 결정’ 통지서가 날아왔다. 2002년 9월부터 소급 적용돼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이 지급되고 매월 27만2990원이 지급된다는 내용이었다. 고마워 읽고 또 읽으며 몰아치던 숨이 편안해졌다. 세월 흘러 지급액도 인상돼 현재는 34만3390원을 받고 있다. 내게는 유일한 고정수입이며 우리 집 살림의 일부를 해결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총 불입액 100여 만원으로 이런 혜택을 받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여보, 당신 살림꾼이에요. 오늘도 당신 돈으로 전기세, 수도세 내고 당신 우유 샀어요. 고마워요.”
여름날 찜통더위 기억이 아직 뚜렷한데 단풍 소식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첫눈 소식이 들려온다. 반칙 없는 자연의 순리, 자연을 닮고 싶다. 강렬한 햇볕이 있어 오곡이 무르익듯이 내 앞에 펼쳐지는 일들 다 이유가 있고 뜻이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변화에 순응하며 주변에 널린 내 행복들 꿰차고 따뜻한 차 두 잔을 준비해 신랑 곁으로 간다. “여보, 차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