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60이 훌쩍 지난 나이가 되어 있는 내가 테이블에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 창밖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펜을 집어 든다. 창밖의 빗물을 보며 지난날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문득 생각나는 오후다. 어렸을 때 꽤나 흥행했던‘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에서 절대반지의 존재가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고, 탐욕에 눈이 멀게 했다. 그러나 과연 절대반지를 악의 상징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진다. 절대반지도 소유자가 바르게 사용했더라면 반대의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내게 국민연금이란 먼 훗날의 일인 양 느껴졌다. 그로부터 40년 후면 연금이 바닥나고, 오히려 빚이 늘어난다는 예측에 국민연금을 반대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때만 해도 국민연금의 혜택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70을 바라보는 지금, 국민연금이 내 손에 끼워진 절대반지가 된 것은 아이러니이다. 처음 보험료를 내기 시작했을 때에는 국민연금이 삶을 보장해 줄 힘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지?” 하는 인사에 슬픈 미소를 지으며 “사실… 작년에 남편이 하늘로 가버렸어.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라던 친구. 그러나 남편이 그동안 냈던 보험료 덕에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을 잃은 친구가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한가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것도 국민연금이라는 절대반지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에 참으로 고맙다. 처음으로 돈을 벌었던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 과외를 했을 때였지만 실제로 보험료를 내기 시작한 것은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 취직한 후였다. 매달 20만원씩 보험료를 납부했다. 그 시절만 해도 국민연금을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이 우세했고 나 또한 솔직히 보험료를 내는 것이 도움이 될지 확신이 안 섰지만, 지금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연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에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 한 명의 젊은이라도 나의 글을 보고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어 자신의 미래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 본다.
일단 국민연금제도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제도란 소득활동을 할 때, 조금씩 보험료를 납부하여 그것을 모아두었다가 나이가 들거나 갑작스런 사고·질병으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어 소득활동이 중단된 경우에 본인이나 유족에게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소득보장제도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국민연금은 국가에서 공익을 위하여 실시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보험회사와는 달리 국민이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민간 보험회사는 가입조건과 보험금 지급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며 가입자들에게 그것을 충족시키기를 요구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보험료를 탈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제로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다.
혹자는 국민연금보다 일반 보험이 더 이득이 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득만 보고 그것을 쫓다가 결국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에는 유족연금, 장애연금 등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잘못되어 연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남아 있는 가족이 수령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 보험 같은 경우에는 조건이 까다로워 보험료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가가 오르는 것을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이 있는데, 국민연금은 해마다 물가 상승률을 따져 화폐가치의 변동이 적용되기에 걱정이 없다. 또, 국민연금은 안전하다. 국민연금은 국가에서 보장하는 제도이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존속하는 이상 국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고마운 이유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지금, 수명은 늘지만 정년은 점점 당겨지고, 안정적인 소득기반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받으면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 노후준비는 되리라 확신한다.
사람들은 보험료를 강제징수한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을 세금으로 여겨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연금은 세금과는 분명히 다르다. 보험료를 강제로 징수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봤을 때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활동을 하는 동안 성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노후대책을 마련해 놓은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람의 몫까지 부담하게 된다. 이러한 부담을 사회 전체적으로 골고루 분담하도록 하기 위해서 강제징수는 불가피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는 국가를 위한 의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고, 노후에 대한 스스로의 약속이나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은 나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국민연금은 빈부격차를 어느 정도 완화하고 소득의 재분배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 소득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경제 자원의 순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을 간접적으로 돕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이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안정적인 사회구조를 형성할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국민연금에 대하여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일에 좋은 면 혹은 나쁜 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제도에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앞날을 위한다면 자신의 사정이 조금 어렵더라도 조금의 성의는 보여야 옳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의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마땅히 그것을 수정·보완하여 나가야 하고, 국민들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 의견만을 타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노력에 관심을 갖고 이에 참여하는 것이 궁극적인 우리 모두의 발전을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손에서 빛나고 있는 나만의 절대반지가 보이지 않는가? 미래의 길을 밝혀주며 내가 있노라고 말하는 이 반지를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