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 낸
기적의 결실, 김밥
기적의 결실, 김밥
김밥은 여러모로 기적 같은 음식이다.
김을 먹게 된 과정이나 김밥 종류 하나하나의 내력을 봐도 그렇다.
김을 먹게 된 과정이나 김밥 종류 하나하나의 내력을 봐도 그렇다.
김밥의 화려한 변신
누드김밥은 원조가 캘리포니아 롤인데, 누가 그리고 왜 김밥을 밥알이 보이도록 거꾸로 말 생각을 했을까? 누드김밥은 1970년대 초, 미국 LA에서 처음 생겼다. 당시 미국인들은 김밥을 싫어했다. 태운 종이처럼 생긴 이상한 식재료에 밥을 담아 먹는다는 편견에 더해 동양인한테는 고소한 김 맛이 이들한테는 김 비린내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 레스토랑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고명으로 미국인이 좋아하는 아보카도, 오이를 넣고 김이 보이지 않도록 거꾸로 만 후 캐비아처럼 날치알, 연어알로 보기 좋게 장식했다. 이름도 아예 아시아 느낌이 나지 않게 캘리포니아 롤로 바꿨다. 그리고 80년대 미국에 초밥인 스시가 유행하면서 누드 김밥인 캘리포니아 롤 역시 덩달아 대박이 났다.
김밥 따로 무김치 따로 먹는 충무김밥도 유래가 특별하다. 지금은 사라진 부산·충무·여수를 잇는 한려수도 여객선 뱃길의 중심지 충무에서 생겨난 이 김밥이 처음부터 김밥 따로, 반찬 따로였던 것은 아니다.
여객선이 들어오면 노점상 함지박에 보통 김밥을 담아 팔았는데 여름철에는 재료 때문에 쉽게 쉬어 남은 김밥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누군가 밥과 반찬을 분리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 충무 바닷가에서 가장 값싼 오징어와 주꾸미에 깍두기를 버무려 반찬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충무김밥이 1970년대 중반 서울에 알려지면서 유행을 탔고 지금 여객선이 다니는 한려수도 뱃길은 사라졌지만 충무김밥은 별미로 전국에 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 군것질로 한 장씩 집어먹다 엄마한테 야단맞던 김이 이제는 태국을 비롯해 외국 여러나라에서는 아예 군것질 전용 스낵, 인기 간식으로 변했다. 생각해 보면 김과 김밥의 변신 중에는 이런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김밥이 기적의 식품이다. 한때 태운 종이로 만든 이상한 식품에서 이제는 슈퍼 블랙푸드, 나아가 황금알을 낳는 검은 반도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김과 김밥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됐다.
고명으로 미국인이 좋아하는 아보카도, 오이를 넣고 김이 보이지 않도록 거꾸로 만 후 캐비아처럼 날치알, 연어알로 보기 좋게 장식했다. 이름도 아예 아시아 느낌이 나지 않게 캘리포니아 롤로 바꿨다. 그리고 80년대 미국에 초밥인 스시가 유행하면서 누드 김밥인 캘리포니아 롤 역시 덩달아 대박이 났다.
김밥 따로 무김치 따로 먹는 충무김밥도 유래가 특별하다. 지금은 사라진 부산·충무·여수를 잇는 한려수도 여객선 뱃길의 중심지 충무에서 생겨난 이 김밥이 처음부터 김밥 따로, 반찬 따로였던 것은 아니다.
여객선이 들어오면 노점상 함지박에 보통 김밥을 담아 팔았는데 여름철에는 재료 때문에 쉽게 쉬어 남은 김밥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누군가 밥과 반찬을 분리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 충무 바닷가에서 가장 값싼 오징어와 주꾸미에 깍두기를 버무려 반찬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충무김밥이 1970년대 중반 서울에 알려지면서 유행을 탔고 지금 여객선이 다니는 한려수도 뱃길은 사라졌지만 충무김밥은 별미로 전국에 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 군것질로 한 장씩 집어먹다 엄마한테 야단맞던 김이 이제는 태국을 비롯해 외국 여러나라에서는 아예 군것질 전용 스낵, 인기 간식으로 변했다. 생각해 보면 김과 김밥의 변신 중에는 이런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김밥이 기적의 식품이다. 한때 태운 종이로 만든 이상한 식품에서 이제는 슈퍼 블랙푸드, 나아가 황금알을 낳는 검은 반도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김과 김밥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됐다.
구황식품에서 별미로 등극한 김
김밥이 이렇게 나라 안팎에서 알게 모르게 인기가 높아진 까닭이 무엇일까? 먹어보니 맛있고 알고 보니 건강하고 먹다 보니 편하고 등등,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김이 만들어 내는 확장성, 그리고 그에 따른 발상의 전환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밥의 역사, 그리고 김의 역사 그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 낸 기적의 연속이다.
일단 김 자체가 기적 같은 식품이다. 옛날부터 김을 먹었던 나라는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 일부 정도다. 김은 바다의 암초에 이끼처럼 붙어서 자란다. 그런데 언제부터 김으로 먹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 김 식용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본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신라에서는 바닷가 사람들이 새끼줄을 허리에 묶고 물속에 들어가 해초를 땄다니까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 이끼인 김도 그 무렵에 채취했을 것이다.
애초에 바다 이끼를 따다 식용으로 삼은 이유는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 먹을 것이 널려 있는데 굳이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바위에 붙은 이끼를 뜯어 먹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최초의 김은 바다 마을 주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구황식품, 구원의 음식이었다.
일단 김 자체가 기적 같은 식품이다. 옛날부터 김을 먹었던 나라는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 일부 정도다. 김은 바다의 암초에 이끼처럼 붙어서 자란다. 그런데 언제부터 김으로 먹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 김 식용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본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신라에서는 바닷가 사람들이 새끼줄을 허리에 묶고 물속에 들어가 해초를 땄다니까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 이끼인 김도 그 무렵에 채취했을 것이다.
애초에 바다 이끼를 따다 식용으로 삼은 이유는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 먹을 것이 널려 있는데 굳이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바위에 붙은 이끼를 뜯어 먹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최초의 김은 바다 마을 주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구황식품, 구원의 음식이었다.
이런 김이 어느 순간 기적처럼 별미로 변신한다. 고려시대이래로 김은 상류층의 밥반찬이 됐다. 우리 김의 위상변화를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김은 한자로 바다 해(海), 이끼 태(苔)자를 써서 해태, 혹은 바다에서 자라는 갈색 풀이어서 자채(紫菜)라고 했다. 김을 잘 먹지 않는 중국에서는 지금도 자기네 발음으로 ‘즈차이’라고 부른다. 일본말로는 김이 ‘노리(のり)’다. 미끈미끈하다는 뜻의 ‘누라누라(ぬらぬら)’에서 비롯됐다니 바다이끼의 미끈거리는 촉감이 어원이다. 어쨌거나 김을 보는 인식이 바다 이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말 김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옛날에는 김을 한자로 ‘짐(朕)’이라고 음역해 적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짐은 옛날 임금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썼던 글자이니 김의 위상을 이만저만 높였던 게 아니다. 또 다른 한자로는 바다 옷인 ‘해의(海衣)’, 바다에 떠있는 깃털인 ‘해우(海羽)’라고 불렀다. 어딘지 모르게 고상하고 우아하다. 말장난 같지만 이름만 봐도 밥상에서 차지하는 우리 김의 위상이 중국, 일본과 달랐다. 그런 만큼 고려시대 이래로 김은 귀족의 밥상, 임금의 수랏상에 올랐다. 고려 말의 목은 이색은 강릉에서 김(海衣)을 보내 준 절도사에게 감사의 시를 쓰면서 ‘하얀 밥그릇에 푸른 김이 놓였으니 밥상에 꽃이 핀 듯하고 입안에 향기가 감돈다’고 노래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효종과 정조 때 김을 왕실에 공물로 바쳤다고 나온다. 바다 마을 주민이 배고픔을 면하려고 허리에 새끼줄 메고 따왔던 바다 이끼가 재상의 밥상과 임금 수라상에 올랐으니 엄청 출세한 셈이다.
김과 함께한 김밥의 역사
김밥의 역사는 또 다르다. 김을 김밥으로 먹으려면 일단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을 종이처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종이는 2세기에 중국 한나라의 채륜이 발명했다. 그러면 종이 김 역시 먼 옛날부터 있었을까? 그건 아닌 듯싶다. 바다이끼로 종이를 만들려면 혁명적인 사고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종이 김을 만들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에 김을 섞어서 만든 종이가 있기는 있었다. 태지(苔紙)라는 한지인데 질기고 글씨가 잘 써지기에 최고급 종이로 꼽혔다. 문헌에는 16세기 초, 중종 무렵에 보이니 제조기술은 그보다 이전에 개발됐을 것이고 태지보다 만들기가 더욱 단순한 식용 종이 김은 훨씬 일찍 만들었을 것 같은데 다만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식용 종이 김은 18세기 초 『성호사설』에 보인다. ‘속칭 김이라는 것이 있는데 김은 바다의 바위에서 나는 이끼로, 이것을 따서 마치 종이처럼 조각으로 만든다(作片如紙)’고 기록되어있다. 종이 김으로 확실하게 김밥을 싸서 먹게 된 것은 17~18세기 초부터다. 이후 영조와 정조를 거쳐 순조까지 조선 후기에는 김에다 밥을 싸서 먹었다는 기록이 여럿 보이는데 그런 만큼 김밥 종류도 다양했다.
예컨대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요즘의 고급 주먹밥 같은 음식 만드는 법이 보인다. ‘흰쌀밥에 다양한 재료를 넣으면 맛이 특별해진다’며 채소를 빻아 넣어 둥글게 뭉친 채소 주먹밥, 새우 알이나 홍합을 넣은 경단 밥이 있고, 또 ‘소금 기름에 재서 구운 김 가루로 밥을 둥글게 뭉치는 법(油鹽炙海衣屑作團)’도 있다.
제사상에도 기름소금에 구운 김을 올린다고 했으니 이 무렵 사람들이 구운 김을 널리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름소금에 재서 구운 종이 김이 있었으니 김에다 밥을 놓고 쌈을 싸는 것 또한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후기 우리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 ‘정월 대보름이면 채소나 김으로 밥을 싸 먹는데 이를 복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다만 김밥 중에서 지금 같은 원통 모양, 단무지가 들어간 김밥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보인다. 그래서 마치 김밥의 원조를 일본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획기적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진화해 온 우리 김밥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다.
정리하자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김은 바닷가 주민의 구황식품에서 고려 귀족의 밥상, 조선 임금의 수랏상에 오를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그리고 18세기에는 종이 김이 보편화되면서 김밥도 퍼졌고 19세기에는 명절음식, 20세기에는 소풍음식, 21세기에는 글로벌 건강식품으로 발전했다. 심지어 지금은 김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이라고 해서 검은 반도체 소리를 들을 만큼 가치가 높아졌다. 소풍날 먹던 김밥, 간단하게 먹는 간편 음식일 뿐이었던 김밥의 변신이 화려하다. 김과 김밥의 역사로 본 끝없는 발상의 전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식용 종이 김은 18세기 초 『성호사설』에 보인다. ‘속칭 김이라는 것이 있는데 김은 바다의 바위에서 나는 이끼로, 이것을 따서 마치 종이처럼 조각으로 만든다(作片如紙)’고 기록되어있다. 종이 김으로 확실하게 김밥을 싸서 먹게 된 것은 17~18세기 초부터다. 이후 영조와 정조를 거쳐 순조까지 조선 후기에는 김에다 밥을 싸서 먹었다는 기록이 여럿 보이는데 그런 만큼 김밥 종류도 다양했다.
예컨대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요즘의 고급 주먹밥 같은 음식 만드는 법이 보인다. ‘흰쌀밥에 다양한 재료를 넣으면 맛이 특별해진다’며 채소를 빻아 넣어 둥글게 뭉친 채소 주먹밥, 새우 알이나 홍합을 넣은 경단 밥이 있고, 또 ‘소금 기름에 재서 구운 김 가루로 밥을 둥글게 뭉치는 법(油鹽炙海衣屑作團)’도 있다.
제사상에도 기름소금에 구운 김을 올린다고 했으니 이 무렵 사람들이 구운 김을 널리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름소금에 재서 구운 종이 김이 있었으니 김에다 밥을 놓고 쌈을 싸는 것 또한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후기 우리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 ‘정월 대보름이면 채소나 김으로 밥을 싸 먹는데 이를 복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다만 김밥 중에서 지금 같은 원통 모양, 단무지가 들어간 김밥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보인다. 그래서 마치 김밥의 원조를 일본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획기적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진화해 온 우리 김밥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다.
정리하자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김은 바닷가 주민의 구황식품에서 고려 귀족의 밥상, 조선 임금의 수랏상에 오를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그리고 18세기에는 종이 김이 보편화되면서 김밥도 퍼졌고 19세기에는 명절음식, 20세기에는 소풍음식, 21세기에는 글로벌 건강식품으로 발전했다. 심지어 지금은 김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이라고 해서 검은 반도체 소리를 들을 만큼 가치가 높아졌다. 소풍날 먹던 김밥, 간단하게 먹는 간편 음식일 뿐이었던 김밥의 변신이 화려하다. 김과 김밥의 역사로 본 끝없는 발상의 전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글_ 윤덕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