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웹진 2008년 9/10월호

이 시대 최고의 흥행스타, 최고의 연기파 배우 송강호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지난 8월 중순 전국 650만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 됐다. ‘좋은 놈’ 정우성, ‘나쁜 놈’ 이병헌의 매력과 연기도 좋았고, 그들이 분한 캐릭터의 힘도 컸지만 ‘이상한 놈’ 송강호(41)야말로 영화 흥행에 절대적인 요소였다. 송강호는 이번 작품으로 전국 관객 500만명을 넘긴 영화를 자신의 출연작 중 5편 이나 갖게 됐다.
‘쉬리’(620만명)를 시작으로 그의 흥행행진은 ‘공동경비구역 JSA’(580만명), ‘살인의 추억’(525만명), ‘괴물’(1,300만명)을 거쳐 이번 작품까지 이르렀다. 당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들과 함께 작업을 해온 경력도 송강호가 아닌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한 호사다. 그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조용한 가족’, ‘반칙왕’에 이어 김지운 감독과 3번째 호흡을 맞췄고, 역시 박찬욱 감독과도 ‘JSA’와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차기작인 ‘박쥐’로 3편을 같이 하게 됐다.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그를 영화계로 발탁한 이창동 감독과는 ‘초록물고기’에 이어서 지난해 ‘밀양’으로 다시 만났다.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로 대박을 터뜨렸다. 예술성이면 예술성, 흥행성이면 흥행성에서 당대 최고로 일컬어지는 기라성같은 감독들이 좋아하는 배우, 송강호는 흥행배우일 뿐 아니라 ‘명품배우’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올해말, 내년초 개봉 예정인 ’박쥐’의 촬영 중 틈을 내 만난 송강호는 사람 좋은 웃음이 여전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행운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지난 10년간 최고의 대우도 받고 최고의 사랑을 받았죠. 그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에요. 중2때부터 연기를 꿈꿨지만 한번도 영화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영화라는 매체가 우연히 내게 온거죠.” 근 10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강호지만 처음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 번의 낙방 끝에 간신히 입학한 대학마저도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하고 군입대부터 해야 했고 제대 이후 대학 동아리 풍물패 소속 여대생과 만나 6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신혼여행 같은 호사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1991년 연극무대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6~7년간 ‘대학로밥’을 먹던 시절은 “영화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고 먹고사는 것이 급해서 살아가는 것 외에 어떤 꿈도 꾸기 어려운 때”였다.
연극 ‘비언소’를 본 이창동 감독의 눈에 띈 후 ‘초록물고기’까지는 낮에는 영화 현장, 밤에는 연극무대를 오갔다. 대사 없는 단역을 거쳐 ‘조용한 가족’(1998) ‘쉬리’(1998) ‘공동경비구역JSA’(1999)로 인기를 얻은 송강호는 ‘반칙왕’으로 마침내 단독주연의 자리를 꿰찼지만 스크린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연기는 전투같았다.
단역에서 조연을 거쳐 주연에 오르고 최고의 흥행배우가 된 10여년간 많은 일이 있었고, 기라성 같은 감독은 그의 연기 세계와 만나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감독들은 송강호를 어떻게 볼까. ‘박쥐’를 함께 찍고 있는 박찬욱 감독은 “세상은 송강호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야말로 냉정하며 지적이며 세련된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은 “어떤 역할, 상황이라도 살아있는 연기를 한다. 순간적인 몰입과 집중력이 영화를 펄떡펄떡 살아있게 한다.”라고 극찬했다. 감독들의 입이 아니더라도 한국영화의 관객은 모두 송강호를 좋아한다. 그의 연기는 언제나 삶에 내재한 본질적인 희극성과 비극성, 그 둘이 빚어내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멋진 외모의 배우는 많지만, 송강호처럼 모든 장르에서, 모든 장면에서 삶과 현실을 환기하는 매혹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드물다. 카메라에 반응하는 그의 본능이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 한, 송강호의 '전성시대'는 끝이 없어 보인다. 21세기의 한국영화사는 송강호라는 목차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