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장미꽃 한 다발이 뒷좌석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다. 장미꽃 선물이라니! 평소에 과한 애정표현을 잘 못하는 나에겐 꽤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혼 5년차 우리 부부에겐 아이가 없다. 지방에서 선생님을 하는 나와, 서울에서 보험회사에 다니는 아내는 주말에만 만난다. 다른 부부들처럼 매일 보진 못하지만, 그래서 좋은 면도 많다. 토요일 저녁이면 첫 데이트처럼 설레인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작은 갈등이 생겼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아기를 갖자고 했는데, 아내가 자궁내막으로 임신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의사는 시험관 아기도 가능하니 너무 절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언제 손주 보여줄 거냐며 닦달하시던 어머니가 떠올랐지만, 나는 괜찮다며 아내를 위로했다.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기가 없다고 해서
부부생활에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좀 더 여유 있게 우리의 노후만 대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정 아기가 갖고 싶다면, 입양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작은 사건이 터졌다. 주말이면 우리는 먹을걸 잔뜩 사와서 요리를
한다. 그걸 먹으며 비디오를 보거나 TV를 시청한다. 우리 부부에겐 무엇보다 큰 낙이
었다. 대구살로 만든 탕수육과 베트남 쌀국수를 배터지게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왜 이렇게 달아? 설탕 세 개나 넣은 거야? 커피 마시다가 당뇨병에 걸려 죽자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 커피는 각자 타서 마시자니까. 왜 번번이 똑같은 커피 맛에 시비야?”
“오늘 내가 요리했는데, 커피 하나 타는 것 가지고 생색낼 거야?”

“우리 매주 싸웠던 거 알아?”
“무슨 소리야, 매주라니?”
“저번 주엔 세제를 다른 것 썼다고 짜증을 냈고, 저 저번 주엔 위층 아이들이 시끄럽게 군다고 올라가서 아파트 떠나가라 싸움까지 했잖아.”
“그거야 아이들이 시끄럽게 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