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멕시코 주립대 연구진이 대학생 2백 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남성상을 조사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자아도취, 냉정함, 사기성 등이 농후한 사람일수록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다. 여자에게 인기 있는 남자는 착한 남자일 거라는 상식적 공식이 깨진 것이다. 이상적인 남성의 외모도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온몸을 문신으로 도배한 축구선수 베컴이 최고의 미남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거칠고 삐뚤어진 조니 뎁이 새로운 여성의 아이콘으로 할리우드 남자배우의 최고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겠지만 나쁜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 나쁘다는 건 사전 그대로 ‘나쁨’을 의미한다.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사회적으로 약속한 가치관을 송두리째 전복시키자는 요즘 트렌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어릴 적 꿈꾸는 백마 탄 왕자님은 다들 착했다. 잘 생기고, 부드러웠으며, 헌신적이었다. 유리구두를 들고 신데렐라를 찾아 나선 왕자나 백설공주 목에 걸린 사과를 빼내준 왕자도 따뜻하고 자상했다. 심지어 일곱 난쟁이까지 백설공주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 그런데 요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나 아이돌 스타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최고의 아이돌 가수 빅뱅의 ‘나만 바라봐’란 노래를 들어보자. ‘내가 바람 피워도 넌 절대 피지 마’ 이런 식의 어이없는 가사가 줄기차게 흘러나온다. 남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여자는 한 남자만 바라보라는 황당한 가사가 아무 저항 없이 젊은 여성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빅뱅을 좋아하는 대다수가 여성 팬이므로, 그들은 심증적으로 이런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벌 2세는 안하무인에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고, 만나는 여자마다 순간의 쾌락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남의 말은 귀 기울이지 않고 세상엔 불만투성이다. 데이트를 할 때면 여자의 취향 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고, 전화도 제때 받지 않으며, 때로는 바람피우는 것도 서슴지 않고 과시한다. 상대하지 말아야할 사람, 어른들이라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은 남자에 여자들이 열광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참하게 넥타이 매고, 부모 공경 잘할 것 같은 남자는 더 이상 여자들의 로망이 아닌 걸까?

기본적으로 나쁜 남자의 매력은 아슬아슬함이다. 영원히 자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남자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긴장감. 이기심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에서 느껴지는 상대적인 해방감. 언제나 떠날 수 있는 무책임함에서 느껴지는 애틋함. 이런 요소들이 조금씩 섞여서 결국 나쁜 남자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연애에서조차 무모하고 일탈적인 모험을 즐겨야한다는 건, 때론 피곤해 보인다. 안락함과 상호 존중에서 주는 인본적 매력을 모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자들의 사회적 위치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겠다. 남자의 대접과 보호가 아쉽지 않은 여자, 얼마든지 남자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으며, 남자의 따뜻한 보호막을 부담스러워하는 여자가 오늘날의 여성상이다. 이기적이고 막되어 먹은 남자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귀여운 동생의 재롱처럼 남자의 악동기질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랄까? 이왕이면 스키장에서 가장 어려운 활강코스를 고르는 것처럼 질주하는 연애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못된 남자가 자신에게 매달려 사랑의 노예가 되었을 때를 여자들은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