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웹진 2008년 9/10월호

전도연(35)은 지난 2년간 잇따른 경사를 맞았다. 지난해 3월엔 천생배필과 백년가약을 맺었고 5월엔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경사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열달 동안 품고 있던 새 생명이 새해 1월말 태어날 예정이다. 20여 편의 영화, 드라마에 출연해왔지만 아기는 그녀가 세상에 내놓는 가장 경이로운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입덧도 없었어요. 먹는 것도 아주 잘 먹고 아직은 실감이 안 나요. 점차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겠죠. 예전부터 엄마는 완전한 존재, 이미 완전하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아기를 키워가면서 엄마가 되어가는 듯해요.”
부쩍 쌀쌀해진 날씨 사이사이 일주일에 한 두번은 여름 더위가 시샘을 내던 가을, 전도연의 배는 살짝 볼록했다. 언제나 그렇듯 싱그러운 미소로 사람을 맞는 전도연은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배우로서의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생이 주는 조화롭고 만족스러운 행복감이 얼굴에 역력했다. 전도연은 벌써 몇 개월에 들어선 임신에도 불구하고, 하정우와 공연한 영화 ‘멋진 하루’의 개봉과 인터뷰, 무대인사 등의 스케줄을 열심히 소화했다. 국내 여배우 중 임신한 채로 언론과 만나고 관객을 만나는 경우는 꽤 드물다. 꺼려지거나 힘들진 않았을까.
“건강이 가장 걱정됐지만 내가 체력이 워낙 좋은 애라 꺼려지는 것은 없었어요. 엊그제 영화 시사회를 하고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에 조금 피곤했던 것만 빼고는 뭐…. 막연하게 이런 생각은 잠깐 했어요. 여배우로서는 꼭 배가 나온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을까. 팬들의 상상에 맡겨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90년대 초 비슷하게 출발한 수많은 청춘스타들이 있었고, 그 수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과 부침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중 가장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가는 배우 중 하나가 전도연이다. 대중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배우로서의 책무와 여성으로서의 당당함은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에 더해져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하는 미덕이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 영화도 내놓으면서 떨리고 무서워요. 더군다나 칸에서 상을 받은 뒤로 전도연이 너무 과대포장되서 (팬들의) 기대감이 큰 것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죠. 다행히 ‘멋진 하루’가 재미있게 나와서 안심했어요. 제게 가장 두려운 것은 칸에서 상을 받은 ‘밀양’을 제 연기인생의 정점으로 보는 시선이에요. 그렇게 되어선 안 되겠죠. 안주해서는.”

늦었지만 생애 첫 칸영화제의 경험은 어땠을까.
“10년 넘게 연기하고 이만하면 나도 ‘꽉 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몰라보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TV에서나 보던 세계적인 배우들을 보니까 자극도 되고 자존심도 상하고 앞으로 해야 될 거 많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씨는 외국팬들이 길거리에서도 알아보더라구요. 놀랐죠.”
칸에서의 수상 이후 CNN 같은 세계적인 매체와 인터뷰도 하고 외국에서 시나리오도 적잖게 받았다. 해외진출에 대해선 아직은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
‘밀양’의 차기작이었던 ‘멋진 하루’는 연애시절 서로 꿔주고 꿔간 돈 350만원 때문에 헤어진 연인이 1년 만에 재회해 엉뚱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독특한 로맨스 영화다. 전도연은 헤어진 남자를 찾아가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는 ‘까칠한’ 노처녀 역할을 맡았다.
“‘밀양’ 끝나고 지치고 힘들었어요. 무작정 쉬고 싶었죠. 그래서 편하게 찍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어요. 극단적인 이야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요.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편하게 찍을 수 있는 영화란 없더군요. ”
전도연은 ‘나는 대외적으로는 애교도 많고 사랑스럽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하지만 굉장히 까칠한 면도 있어서 남편이 영화 예고편을 보고 까칠한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같이 연기했던 ‘밀양’의 송강호에 대해서는 ‘야수나 맹수같은 배우‘라고 말한 반면, 하정우에 대해서는 ‘용왕의 간을 빼먹을 듯 여우같은 배우’라고 말했다.
전도연은 이제 내년 출산까지는 공식활동을 모두 중단할 예정이다. 복귀 시기는 언제라고 딱 못박지는 않았다.
“시나리오가 안 들어와서 결정을 못할 수도 있겠죠. 여배우는 복귀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선택 폭이 좁고 답답하고. 제가 아기를 낳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으로선 상상이 가지 않아요. ‘접속’은 제게 영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게 해 준 데뷔작, ‘해피엔드’는 제가 이런 배우구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게 해 준 영화, 그리고 ‘밀양’이 제게 가장 중요했던 작품이에요. ‘밀양’이 제 인생의 정점이라는 시선을 깰 수 있도록 안주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