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의 문호 연암 박지원은 특이한 인물을 다룬 소설을 많이 썼다. 말 거간꾼, 똥 치우는 사람, 늙은 이야 기꾼, 남산골의 숨은 선비 등등. 18세기 한양의 명물 거지 광문을 다룬 <광문자전(廣文者傳)>도 그런 소설 가운데 하나다.

<광문자전>은 몇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첫째 에피소드. 광문은 종로 거지들에 의해 추대되어 거지 왕초가 된다. 왜 그랬는지 연암은 아무 해명도 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사건이 생긴다. 병이 들어 구걸을 못 나간 거지 아이를 위해 대신 밥을 빌러 간 사이 아이가 죽자 구걸하고 돌아온 다른 거지들이 광문을 의심하여 두들겨 패서 내쫓는다.
엉금엉금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가, 설상가상(雪上加霜), 도둑으로 오인되어 묶인다. 그러나 집주인은 광문의 순박한 말에 새벽녘 풀어준다. 그리고는 떨어진 거적을 달라는 광문이 이상하여 뒤를 좇는다. 그랬더니 광문은 거지들이 수표교 아래 버린 시체를 거적으로 싸 짊어지고는 서쪽 교외의 공동묘지에 묻고 통곡하는 것이었 다. 집주인이 붙잡고 사정을 물었더니 그제야 사연을 털어 놓았다. 광문은 거지였지만 범상한 거지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전화위복(轉禍爲福), 광문을 의롭게 여긴 집주인이 부유한 약국 주인에게 광문을 추천하여 고용인이 된다. 노숙자가 취업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약국의 돈이 없어지자 주인은 광문을 의심한다. 증거도 없는데다 추천한 사람 체면도 생각한 탓인지 추궁은 못했지만 안색이 달라진다. 그러다가 돌연 진상이 드러난다. 부자의 처조카가 말없이 돈을 빌려갔다가 돈을 갚으러 와서 진실을 밝힌 것. 부자는 의심한 걸 사과한 뒤 그 날부터 다른 장사치들, 종실의 문객들, 정승 판서의 측근 등,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광문 이야기를 한다. 덕분에 광문은, 그가 빚보증을 설 경우 담보도 없이 큰돈을 빌릴 수 있을 정도로 신용 있는 인물이 된다. 광문이 온 장안에 유명해진 내력이다.
그 뿐이 아니다. 광문은 춤꾼이기도 했고, 춤을 알아보는‘선수’이기도 했다. 한번은 어깨 에 힘 좀 주는 사내들이 운심이라는 소문난 기생을 찾은 일이 있었다. 술판을 벌이고 가야 금을 타면서 운심에게 춤을 권했지만 운심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헤진 옷을 입 고 헝클어진 머리에 눈곱까지 낀 불청객 광문이 끼어들자 일행들은 질색을 하면서 내쫓으려고 했다. 그럴 즈음 광문이 무릎을 치며 콧노래를 부르자 콧대 높던 운심이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는 광문을 위해 칼춤을 추었다. 덕분에 사내들은 광문과 하나가 되어 춤을 즐겼 고 마침내는 광문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연암은 광문이 외모는 추악했지만 만석희(曼碩戱)를 잘하고 철괴무(鐵拐舞)를 잘 추었다고 했는데 만석희는 인형극인 만석중놀이고, 철괴무는 탈춤의 하나다. 광문은 거지 노릇을 했지만 실은 대단한 예인(藝人)이었던 셈이다. 나아가 연암은 그의 남다름을 이렇게 묘사 하고 있다.

나는 부모도 형제도 처자도 없는데, 집을 마련해서 무얼 하겠소? 더구나 나는 아침이면 소리 높여 장타령을 부르며 저자에 들어갔다가, 저물면 부귀한 집 문간에서 자는데, 한양 안에 가구가 자그마치 팔만 호라오. 그러니 내가 날마다 처소를 바꾼다 해도 내 평생에는 다 못 자게 된다오.

결혼도 안 하고 집도 없이 사는 그에게 남들이 집을 마련하라고 권하면 사양하면서 했다는 대답이다. 광문은 거지는 거지지만 깨달은 거지, 무한히 자유로운 거지였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왜 연암은 광문 이야기를 했을까? 연암이 이 소설을 쓴 때는 <서광문전후(書廣文傳後)>에 밝힌 대로 열여덟 무렵이었다. 주지하듯이 연암은 이 무렵 신 경쇠약과 우울증 기미가 있어 공부에 힘쓰기 힘들었다. 그래서 <민옹전(閔翁傳)>의 민 노인 같은 이야기꾼을 불러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광문에 관한 에피소드들도 그때 들은 것이 다. 연암은 그렇게 들은 일화들을 엮어 <광문자전>이라는 한 편의 소설을 썼던 것인데 왜 하필 거지 광문이었던가? 연암은 광문을 통해 우울증을 벗어날 재미를 추구했던 것일까? 열여덟이면 아직 사고가 깊어지기 전이다. 그러니 <광문자전>에서 연암 특유의 사상과 글쓰기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역설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려는 인식의 지도 한 컷이 숨어 있으니 이 지도를 통해 세 편의 에피소드는 연결된다. 거지 무리, 집 주인, 약국 주인, 기방의 사내들, 이들은 모두 광문의 겉을 보고 속까지 심판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판결이 틀렸다는 것이 바로 밝혀진다. 광문은 외형은 거지지만 내면은 거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통념의 전복 안에 허(虛)와 실(實)의 관계가 드러난다. 광문을 거지로만 보는 것은 그의 허상을 보는 것이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실상이다! 실질을 중시하 는 그의 학문적 태도가 이미 스물 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연암의 손끝을 통해 살아난 광문은 조선 후기 사회의 소수자였다. 자신의 말대로 아침이면 ‘얼씨구씨구 들어간다’로 시작하는 장타령을 부르며 저자에서 구걸을 하는 처지였다. 알아주는 춤꾼이었다고 해도 다를 것이 없다. 거지 신세와 다를 바 없는 것이 광대였으니까. 그런데 이런 소수자들은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 운심을 두고 사내들이 앉아 있는 기방을 생각해 보라. 그 기방에 갑자기 끼어든 광문이 술판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그러나 동시에 소수자들은 다수의 통념을 전복시킨다. 운심의 칼춤으로 허를 실로 보는 통념은 베어지고, 신분의 고하도 무너지지 않았는가.
지하철 역사의 노숙자나 걸인들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때론 멈추게 하듯이. 사회적 소수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금석이다. 그가 무명의 소수자든, 광문처럼 유명한 소수자든.

우리는 연암 역시 18세기 조선 사회의 소수자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노론 벌열 (閥閱)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소수 지식인의 길을 선택했다.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사유(思惟), 다른 글쓰기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를 필두로 모여든, 서얼 출신이 태반인 북학파 그룹들이 그러했다. 이런 소수자 지식인의 시야에 당대의 소수자들이 포착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연암은 거지를 동정하여 구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런 주장은 통치술의 하나로 권력이 늘 써먹는 것이니까. 그보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사유를 드러 내기 위해 소수자를 좋은 의미로 이용했다. 그 이용을 통해 연암은 역설적으로 소수자-거지의 존재론을 정확하게 구현했다. ‘소수자는 반성의 시금석’이라는 존재론 말이다. 우리 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