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에 한 여자가 있으되 일신이 갖은 병신이라. 나이 사십이 넘도록 출가치 못하여 그저 처녀로 있으니, 옥빈홍안(玉紅顔)이 스스로 늙어가고 설화부용(雪花芙蓉)이 공연히 없어지니, 설움이 골 수에 맺히고 분함이 심중에 가득하여 미친 듯 취 한 듯 좌불안석하여 세월을 보내더니

조선에 한 여자가 있었다. 사십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간 여자, 이름하여 노처녀! 이즈음 이런 처녀 들이야 경우에 따라‘골드 미스’라는 찬란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스물만 넘어도 노처녀로, 불효녀로 불 리던 시대에 사십이 넘도록 처녀였다면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장편가사 <노처녀가>는 이런 심각한 주제를 동시대인들에게 툭 던졌다.
그런데 이 여자가 노처녀가 된 데는 특별한 까닭이 있었다. “일신이 갖은 병신이라”는 것. <노처녀가>는 노처녀 의 자탄을 통해 그‘꼴’을 묘사한다. 검고 얽은 얼굴, 애꾸에다 반쯤 귀머거리, 게다가 팔다리도 온전치 못한, 심하게 말하면 병신 중에도 상병신이라는 것. 조선 같은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것도 서러운데 몸까지 엉망이니 이중 삼중의 고초를 지문처럼 지니고 사는 여 자, 참으로 딱한 여자다.
이런 장애자 여성에 대한 눈길은 조선시대라고 다를 리 없다. ‘앉은뱅이 용쓴다’, ‘병신 육갑한다’, ‘곱사등이 짐 지나마나’와 같은 속담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신체적 소수자에 대한 조롱과 멸시의 시선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산 정 약용이 쓴 <소경에게 시집 간 강진 여자(道康家婦詞)>라는 시에 등장하는 마흔 아홉의 중늙 은이는 몰골도 추한 소경이지만 재산이 있어 열여덟 처녀를 세 번째 아내로 얻을 수 있었다. 하나 <노처녀가>의 노처녀는 재산이 있더라도 남편을 얻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것마 저도 없는, 조선사회의 맨 구석에서 멸시와 조롱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였다.
그런데 이 노처녀가, 조롱하는 자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야말로‘병신 육갑한다.’노처녀는 조롱과 멸시의 시선을 피해 숨지 않는다. 사지가 온전해서 시집 잘 간 자매들과 비교하는 짓을 그만 두고 자신의 실상과 솔직히 대면한다.

내 비록 병신이나 남과 같이 못할쏘냐? 내 얼굴 얽다 마소. 얽은 구멍에 슬기 들고, 내 얼굴 검다 마소. 분칠하면 아니 흴까? 한 편 눈이 멀었으나 한 편 눈은 밝아 있네. 바늘 귀를 능히 꿰니 버선볼을 못 박으며, 귀먹다 나무라나 크게 하면 알아듣고, 천둥소리 능 히 듣네. 오른손으로 밥 먹으니 왼손 있어 무엇 할꼬? 왼편 다리 병신이나 뒷간 출입 능 히 하고, 콧구멍이 맥맥하나 내음새는 일쑤 맡네. 입술이 푸르지만 연지를 발라 보세. 엉덩뼈가 너르기는 해산 잘할 장본(張本)이오. 목이 비록 옴쳤으나 만져보면 없을쏜가?

한쪽 눈, 한쪽 귀, 한쪽 다리, 한쪽 손으로도 못할 것이 없다는 인식, 아이 잘 낳고 바느질 잘 하고 음식 잘 하고 부모 효도 에도 모자랄 것이 없다는 자아 인식이 신체적 불구에 대한 서 술 뒤에 이어진다. 자기 몸 다시 보기,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 한 적극적 태도가 독백의 노래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세 상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에 대한 대결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노처녀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래가 좀 더 이어지면, 그럼에 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분출된다. 하지만 그 불만은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난처한 감정이다. 불만을 드 러내는 일은‘여자다워야 한다’는 당대의 윤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노처녀는“날이 가고 달이 가매, 갈수록 설운 심사 어찌하고 어찌 하리, 베개를 탁 던지고 입은 채 드러누워, 옷가슴을 활짝 열고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하 고 답답하다 이 마음을 어찌 할꼬, 미친 마음 절로 난다”고 토로할 수밖에 없다. 불만이 안으로 맺혀 울화병을 일으키고, 울화병은 노처녀를 심리적 분열 상태로 이끌었던 것. 미 친 마음이 절로 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런‘미친 마음’을 보상받기 위해 노처녀가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꿈이라도 꾸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테니까 말이다. 노처녀는 꿈속에서 맘에 두고 있던 김 도 령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한데 <노처녀가>가 재미있는 것은 이 꿈을 꿈으로 놔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련하고 불쌍하다. 이런 모양 이 거동을 신령(神靈)은 알 것이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부 모들도 의논하고 동생들도 의논하여 김 도령과 의혼(議婚)하니 첫마디에 되는구나. 혼인 택일 가까우니 엉덩춤이 절로 난다. 주먹을 불끈 쥐고 종종걸음 보살피며 삽살개 귀에 대 고 넌지시 이른 말이 나도 이제 시집간다. 네가 내 꿈 깨우던 날 원수같이 보았더니 오늘 이야 너를 보니 이별할 날 멀지 않고 밥 줄 사람 나뿐이라. 이처럼 말한 후에 혼일이 다 다르니 신부의 칠보단장 꿈과 같이 거룩하고 신랑의 사모풍대 더구나 보기 좋다. … 혼인 한 지 십 삭 만에 옥동자를 순산하니 쌍태(雙胎)를 어이 알았으리. 즐겁기 측량없네, 모두 가 영준(英俊)이오, 문재(文才)가 비상하다. 부부가 금슬 좋고 자손이 만당(滿堂)하며 가산 이 부요(富饒)하고 공명이 이어지니 이 아니 무던한가.

마치 온갖 수난을 겪던 고전소설의 여주인공들이 뜻을 이루고 복을 받는 것처럼 <노처녀가>도 해피엔딩이다. 꿈에서나 그리던 김 도령과 결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똑똑한 쌍둥이 아들을 얻고 부와 명예까지 차지한다. 그러나 이런 해피엔딩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 ‘꿈같은 현실’이고, 그래서 꿈과 다를 바 없는, 꿈의 연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다. 하지만 <노처녀가>는 한 노처녀의 탄식과 자각, 그리고 꿈과 꿈의 실 현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신체적 소수자에 대한‘다 른’시각을 선사한다. 이런 시각은 물론 멸시와 조롱이라는 다중 의 시각에 대한 한 무명작가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 덕 분에 우리는 작품 속의 노처녀가 신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와 동일한 욕망을 가진 이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처녀가>는, 몇 해 전에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던 <오아시스>의 주인공들과 같은 소수자들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 곁에 있 다는 것을, 그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작품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