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로 들어서 많은 개발이 이루어진 영남에는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오래된 도시가 많지 않다. 산이나 강으로 둘러싸여 개발의 어려움이 많았던 곳을 제외하고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앞 다투어 발전했기 때문이다. 밀양이 개발의 붐을 피해 1970년대 중소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도시를 둘러싼 높은 산과 강 때문이다. 개발은 늦어졌지만 표충사, 만어사, 얼음골 등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유산은 고스란히 간직하게 된 것. 하지만 영화 <밀양>의 90% 이상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작은 도시 밀양은 전국적인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도시를 산책하며 문화를 탐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우리도 그들과 함께 5~6월의 햇살을 누리며 천천히 도시를 탐사해보자.

영화 속 장면들이 살아있는 거리, 가곡동

역 광장에서 영남루가 있는 밀양시가지 쪽으로 내려가면 가곡동 거리가 이어진다. 길 건너편 세종아파트 옆 장성통닭 골목 안에 자리한 남부교회를 찾아가볼 것. 영화 속 신애와 종찬이 다니던 교회로 실제 남부교회의 교인들이 엑스트라로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교회 1층 사무실에 양해를 구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예배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왼쪽 뒤에서 세 번째 의자에서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낀 신애가 탁상을 치며 반항하던 장면이, 안쪽 성가대 석에서 활발히 교회활동을 하던 신애의 모습이 촬영되었다. 교회를 나와 영남루방향으로 가면 길 건너편 세종요양병원을 지나 신애의 생활공간인 ‘준 피아노’가 있다. 영화 촬영 후 철거했던 것을 밀양시가 사들여 복원한 공간이다. 준 피아노 건너편으로는 영화 속 약국으로 변신했었던 ‘소문서점ㆍ손뜨개’가 있다. 지금은 다시 서점이 돌아와 자리하고 있다. 소문서점 앞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영화 속 아줌마들의 아지트였던 의상실이 있던 자리다. 영화 촬영 전 실제 의상실이 있었으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의상실은 문을 닫고 족발집이 새로 자리했다.

밀양강이 감싸 도는 도심 속의 섬 삼문동과 영남루, 긴 늪 솔밭
족발집에서 영남루 방향으로 계속 내려가면 다리를 건너 밀양강 가운데 자리한 삼문동이 있다. 삼문동 대우아파트 입구의 미용실 ‘가위 든 남자’는 유괴범의 딸이 일하던 미용실을 찾아간 신애가 머리를 자르다말고 뛰어 나오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삼문동사무소는 신애가 아들 준의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찾았던 곳으로 당시 동사무소에 근무하던 직원 2명이 영화 속 동사무소 직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삼문동에서 영남루 방향으로 계속 가면 영남루 앞 다리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에서 흰색 2층 건물을 볼 수 있다. 그곳에 카페 ‘일마레’가 자리하고 있다. 아줌마들이 아들을 잃은 신애를 위로하고 그녀의 생일파티를 열어주던 곳이다. 이곳 창가에 앉으면 대각선 건너편으로 밀양의 대표관광지인 영남루가 보인다. 영화에는 종찬의 설명으로 영남루가 등장했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불리는 영남루에 올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에 더위를 식혀보자.

밀양에서 찾아봐야 할 마지막 촬영지는 긴 늪 솔밭이다. 밀양 IC입구 강변에 자리한 긴 늪 솔밭은 밀양사람들의 대표적인 여름휴가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신애가 야외집회장에 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크게 틀어놓고 도망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밀양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12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긴 늪 솔밭 강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거나 텐트를 치고 야영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