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덮쳤다. 10년 넘게 프로 요트 선수로 활약했던 한스 호레보에츠(32)였지만 거친 파도를 이기진 못했다. 갑판 위에 서있던 그는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휩쓸려 갔다.
9명의 동료 선원들은 닻을 내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40여 분간의 사투 끝에 호레보에츠를 건져냈다. 신속히 응급처치를 했지만 이미 멈춰버린 그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2006년 5월 18일. 30노트(초속 60m)의 강풍이 부는 대서양 한복판에서 호레보에츠는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 호레보에츠와 그의 동료들을 태운 요트는 뉴욕을 출발해 영국의 포츠머스로 향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곳은 영국 서해상 2,410km 지점이었다. 2005년 11월 스페인 북서부의 항구도시 비고를 출발한 지 반 년만의 참변이다.
비록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어릴 적 소원을 반쯤 이루고 눈을 감았다. ‘볼보 오션 레이스’는 호레보에츠가 늘 꿈꿔왔던 바로 그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제 꿈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바로 요트 레이스에 참가하는 거였죠. (중략) 물론 두려운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바다로 떠나는 이유예요. 바다로 나가지 않았으면 어떨까요? 아마 인생은 지루하고, 어쩌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과 작별할 지도 모를 일이죠.” 돛 하나에 의지해 지구 횡단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볼보 오션 레이스는 인간이 가진 용기와 의지, 도전정신을 시험하는 가장 가혹한 무대다.
볼보 오션 레이스는 1973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4년마다 열려왔다. 1회대회부터 7회대회까지는 ‘위트브레드(Whitbread) 오션 레이스’로 불리다 2001년 8회대회부터 스폰서를 바꿔 ‘볼보 오션 레이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매번 바뀌긴 하지만 ‘70~’80년대 대회의 항로는 기본적으로 비슷했다. 9월에 영국을 출발해 대서양을 남으로 가로질러 아프리카를 따라 내려간다. 케이프타운(남아공)을 찍은 뒤엔 남극해를 지나 호주나 뉴질랜드를 거쳐 남미 최남단인 케이프 혼(Cape Horn)을 돈다. 케이프 혼에서 다시 대서양을 가로질러 영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특히 남극해를 지날 때는 기상 조건이 최악이었다고 한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시속 110km의 강풍과 30m 높이의 파도였다.
2008년 대회는 남지중해 연안의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출발한다. 1구간은 알리칸테-케이프타운(남아공), 2구간은 케이프타운-코치(인도), 3구간은 코치-싱가포르로 이어진다. 가장 긴 구간은 칭다오-리우데자네이루로 연결되는 5구간이다. 약 1만2300nmile(nautical mile, 해상 마일 혹은 해리)이다. 약 2만2300km에 해당하는 거리다.
볼보 오션 레이스 대회 항로가 아시아 항구를 거쳐가게 설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쉽게도 한국은 거치지 않는다. 마지막 10구간은 스톡홀름(스웨덴)에서 출발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장정을 마친다. 대회는 2008년 10월 4일 시작돼 2009년 6월 27일 닻을 내리게 된다. 1회 대회를 우승한 팀은 152일만에 지구를 돌았다.
1997년 대회부터 우승팀 산정 방식이 포인트제로 변경됐다. 각 구간별 순위에 따라 점수를 매겨 마지막에 합산하는 방식이다. 또 각 구간별 항구에 정박할 때마다 근해에서 단거리 대회를 한다. 단거리 레이스에서의 성적은 전체 포인트의 20％로 반영된다.
우리나라 요트 선수들은 언제쯤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까. 대한요트협회의 이필성 전무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스폰서만 잡을 수 있다면 다음 대회부터는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