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개벽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사람이 태어난 후 고금 영웅을 낱낱이 헤어보니 한둘이 아니어든 이내 몸 어이하여 남자는 마다하고 일개 여자 되어 나며 … 호부호모(呼父呼母) 겨우 하니 산과 물 가르치고 저적저적 걸음할 때 초무(初舞) 검무(劍舞) 고이하다. 명선으로 이름하여 칠팔 세 기생되니 이르기도 이르구나 … 사또에게 수청들랴 부인 행차 시종하랴 이십이 늦잖거든 십이 세에 성인(成人)하니 어디 당한 예절인지 짐승과 일반이라 남녀의 결혼에는 집안 지체 중요한데 순사또 가마 타고 서울로 돌아가니 운명의 정함인가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지시런가. 갑자기 부귀하면 상서롭지 않다더니 무슨 복이 이러하리. 이는 모두 기생으로 세상 나온 내 자신의 잘못이라.

이 가사는 19세기 해주 감영에 소속된 관기(官妓)였던 이명선이 지은 [기생명선자술가]의 첫머리다. 명선은 무슨 사연인지 걸음마를 할 때부터 칼춤을 배우고, 일곱 살에 기생이 된다. 그리고 열두 살에 성인이 되었다. 사또의 수청을 들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잠자리를 모셨던 사또는 자신을 버리고 서울로 가버렸다. 벼슬 높은 양반을 후원자로 얻어 편하게 살아볼까 했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난다. 명선은 이 모든 것이 기생으로 세상에 나온 자신의 잘못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명선의 한탄 속에는 기녀의 신산한 삶이 압축되어 있다. 기녀는 고려 시대에도 있었고, 혹자는 그 기원을 찾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기녀 제도가 정립된 때는 조선 초기 세종 시절이다. 이때 기녀는 모두 관청 소속의 관기로 나라의 공식적 행사에 필요한 연예를 담당하거나 국내외 사신들의 접대를 담당했다. 말하자면 기녀는 국가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달리 표현하면 남성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같은 여성이라도 최하층 신분에 속하는 소수적 여성이 기녀였다. 명선이 ‘짐승 같은’ 자신의 팔자를 탓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이 기녀들의 이중성이다. 최하층 신분으로 최상층 사대부 남성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중성! 그래서 기녀들은 노래나 춤, 악기 연주와 같은 재주를 길러야 했을 뿐만 아니라 한시에 대한 교양도 갖추어야 했다. 바로 이런 이중성 때문에 기녀는 고전문학사의 꽃이 된다. 기녀들은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작가로 등장하기도 한다. [구운몽][옥루몽][춘향전]처럼 유명한 소설들에서 기녀는 주연급이다. 글을 배운 덕분에 황진이를 비롯한 많은 기녀들이 시조와 한시를 남겼다. 기녀와 관련된 일련의 작품들 가운데 기녀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시다. [기생명선자술가] 같은 가사나 시조도 그렇지만 특히 한시에 기녀들의 자의식이 잘 드러나 있어 살필 만하다.

북풍은 눈을 몰아 발을 출렁 때리는데 北風吹雪打簾波 잠 못 이루는 긴 밤 정녕 어이하리? 永夜無眠正若何 훗날 내 무덤엔 찾아오는 이도 없을 테지. 塚上他年人不到 가련하다, 이 세상 한 줄기 꽃이여. 可憐今世一枝花.

소홍(小紅)이란 이름 없는 기녀가 남긴 [절구(絶句)]라는 작품인데 ‘탄식’이란 말을 저절로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 기녀에겐 앞날에 대한 전망이 없다. 유일한 길은, 명선의 깨진 꿈처럼 좋은 양반 만나 첩이라도 되는 것인데 쉬운 일이 아니고, 첩 노릇 또한 쉽지 않았다. 진정한 사랑도 안락한 삶도 기약되어 있지 않은 기녀의 밤이란 잠들려고 해도 불면의 북풍이 가슴을 치는 밤일 수밖에 없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고 하여 해어화(解語花)라는 별칭으로 불리지만, 버려진 무덤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자학에 가까운 의식이 시에 가득하다. 그런데 기녀들의 한시에는 소수자의 관점에서 이목을 사로잡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녀들의 한시가 탄식에만 머물지 않고 지배자의 언어인 사대부들의 한시에 시비를 건다는 사실이다. 서세보(徐世輔)의 첩으로 알려진 온정(溫亭)의 한시에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난다. 제목이 전해지지 않아 [제목 잃음(失題)]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은 시를 보라.

첩의 몸이 윤락하여 창가에 속했지만 妾身淪落屬娼家 바라기는 어진 낭군을 얻어 사는 것이었지요. 願得賢郎送歲華. 낭군의 마음이 반석처럼 굳은 줄 모르고 不識郞心盤石固, 잠시 다른 동산 꽃으로 옮아갔지요. 暫時移向別園花.

시문에 능했던 기녀 온정은 서세보의 첩이 되는 행운을 누린다. 그러나 처첩 갈등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집안의 갈등 때문에 서세보를 떠난다. 그러자 서세보가 온정을 잊지 못해 시를 한 수 보내게 되는데 이 시는 청을 거절하면서 보낸 답시 두 수 가운데 한 수이다. ‘어진 낭군을 얻어 사는’ 행운을 차버린 온정의 결단도 놀랍지만 이 한시에서 더 놀라운 점은 시의 전복성이다. 꽃과 나비 혹은 벌을 비유어로 끌어올 때 여성은 꽃, 남성은 벌이나 나비에 견주는 것은 한시의 오래된 관습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남성적 관습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런 관습적 비유를 뒤집는다. 시의 화자인 기녀가 꽃을 찾아다니는 나비나 벌이 되고, 남성은 꽃에 비유되어 있다. 전복성은 소수자 문학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전복성은 사상으로 직접 표현되기도 하고 언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온정의 한시는 후자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복적 시어의 구사는 신분적 소수자였던 기녀가 자아를 자각하지 않고서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가련한 한 줄기 꽃이 아니라 자유로운 나비’라는 자각 말이다. 기녀는 양반 문화의 장신구가 되기 위해 양반들의 언어를 배운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온정의 한시처럼, 기녀들은 문학작품을 통해 양반들의 문학적 관습을 뒤집는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지배자에 대한 모방에서 출발했지만 모방을 넘어 지배자를 전복시키는 역설(paradox)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 역설로 인해 우리 고전문학의 숲이 한층 무성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