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람보3]를 보다 보면 아프가니스탄의 고원을 배경으로 이런 장면이 펼쳐진다.
파탄족 친구 : (말탄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걸 가리키며) 아주 오래된 운동경기야.
심지어 3000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다는 얘기도 있어. 재밌겠지?
람보 : 아니, 난 풋볼(람보는 미국인이니까 슈퍼볼같은 미식축구를 말하는 거겠죠?)이 좋아.
근데 쟤들이 지금 나보고 뭐라는 거야?
파탄족 친구 : 이 동네 온 걸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너도 같이 와서 게임을 하자는데? 근데 다쳐도 책임 안 진다.
람보 : 좋아. 룰이나 알려줘.
파탄족 친구 : 염소를 잡아서 원 안에 던져 넣으면 돼.
람보 : 왜?
파탄족 친구 : 원이 거기 있으니까.
람보 : 그게 다야?
람보는 거침없이 말 등 위에 올라탔다. 30여명의 말 탄 파탄족 사내들과 함께 공터에 엉켜 섰다. 반대편에서 나타난 한 남자가 땅 위에 그려진 원 안에 염소의 시체를 던져 놓는다. 기다리고 있던 30여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말고삐를 당기며 하얀 모래 바람을 일으켰다.
한 선수가 질풍처럼 달려들어 말 위에 올라탄 상태에서 상체를 숙여 염소 시체를 낚아챘다. 람보는 염소를 빼앗기 위해 힘차게 채찍질을 한다. 염소를 들고 있는 선수 옆까지 순식간에 달려왔다. 어떤 선수들은 쫓아가다가 몸싸움을 못 이기고 말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넘어진 선수와 말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염소의 반대쪽 다리를 잡고 상대 선수와 옥신각신하던 람보. 상대 선수에게 한 방 얻어맞고 말에서 떨어지는 등 악전고투를 벌인다. 굴하지 않고 다시 말에 올라탄 람보는 카우보이처럼 말 옆구리까지 몸을 기울인 상태에서 염소 시체를 붙잡는 묘기를 선보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람보가 난생 처음 해 본 이 기마 스포츠를 아프가니스탄에선 부즈카시(Buzkashi)라고 한다.
페르시아어로 염소를 뜻하는 '부즈'와 사냥을 의미하는 '카시'의 합성어다.
부즈카시는 아프가니스탄의 국민 스포츠다.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즐겨 하는 민속 운동이다. 그 유래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지만 12~13세기 징기스칸이 이끌던 몽골 민족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유목민족은 부족끼리 살았다. 부족과 부족 사이에 서로의 가축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 많이 벌어졌다. 부족의 남자들은 가족과 재산을 잃지 않기 위해 말 위에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여자들은 부즈카시가 벌어지면 지붕 위에 올라가서 경기를 지켜봤다. 특히 젊은 여인들은 미래의 남편감을 골랐다고 한다. 폴로같은 유럽의 마상 스포츠가 부즈카시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폴로나 부즈카시나 말을 타고 정해진 목표점에 물체를 넣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구조는 같다. 다만 부즈카시는 염소의 시체를, 폴로는 공을 이용하다는 게 다르다. 또 폴로가 정해진 시간 동안 진행되는 반면, 부즈카시는 며칠 동안 경기가 계속 되기도 한다.
부즈카시에서 쓰이는 염소는 경기 시작 24시간 전에 도살돼 찬물에 담군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경기 준비가 끝난다. 염소 시체의 무게는 보통 70kg 정도는 나가야 한다. 부즈카시에서 선수들이 타는 말은 특별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훈련된 말의 가격은 700달러(약 70만원)에서 비싼 건 1만5000달러(약 1500만원)까지 다양하다. 부즈카시 경기에도 축구나 야구처럼 시즌이 있다. 보통 10월 말에 시작해 3월에 끝난다.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인 탈레반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부즈카시를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2001년 탈레반 붕괴 이후에야 부즈카시는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근데 좀 께름칙하다. 생각해 보면 심각한 동물 학대다. 살아있는 동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지고 놀기 위해서 죽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의 원시적 형태는 동물의 시체와 가죽을 이용한 경우가 많았다.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는 중세시대 데인족(지금의 덴마크인)이 침입했을 때 전투가 끝난 뒤 상대 병사의 두개골을 차고 놀았던 데서 축구가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올림픽에서 하는 사격이나 양궁도 결국엔 살아있는 동물들을 재미삼아 잡아 죽이는 사냥에서 온 것이다. 부즈카시 역시 그저 유목민족답게 말을 타고 가축을 부리는 기개와 생활상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여가에도 이어진 걸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