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와 현우의 사랑을 추억하는 공간, 소쇄원
김대승 감독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 주연의 영화[가을로]는 삼풍백화점 사건으로 결혼을 앞둔 연인 민주를 잃은 현우가 연인이 남긴 여행노트를 받아들고 길을 떠나는 것으로 구성된다.
여행노트를 들고 현우가 처음 찾아가는 민주의 숲은 담양의 소쇄원이다. “대숲에서 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건너면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정원이 나와. 자연을 편리하게 뜯어 고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다리며 집들을 가만히 올려놨어.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고 교감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애. 단풍이 이 계곡에 비춰들 때면 우린 부부가 되어있을까? 우리도 긴 시간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어.”소쇄원을 두고 민주가 남긴 말이다.
그곳에 민주의 이야기를 따라 찾아드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함께 묻혀있다 구조된 세진이다. “이 아름다운 정원의 이름이 소쇄원이래. 어때? 왜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하겠지? 이름이 좀 어렵다. 하지만 소쇄~하고 입소리를 한번 내고 나면 쉽게 익혀지는 것 같애.”세진은 민주의 이야기를 따라 소쇄~ 하고 소리를 내며 공간으로 들어선다. 마치 민주의 분신인 것처럼.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자리한 소쇄원(사적 304호)은 스스로를‘소쇄처사’라고 부르며 한평생 은거생활을 하던 선비 양산보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다. 조선 중기 대표정원으로 4,060㎡ 면적의 중심으로 계류가 흐른다. 주인의 시각으로 소쇄원을 누리려면 계류 위로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 제월당과 광풍각에 올라봐야 한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주인이 누리던 소쇄원의 진가가 보이기 때문. 주인이 거처하던 제월당에는 김인후가 보고 느낀 소쇄원의 48가지 모습을 담은‘소쇄원 48영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한단 아래에는 작은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함께 소쇄원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광풍각이 있다.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는‘어느 것 하나에도 내 손길 닿지 않은 것이 없으니 팔지도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도 말라’고 유언했을 정도로 소쇄원을 아꼈다고 한다. 그의 마음이 담긴 공간을 천천히 만끽해보자.

현우와 세진의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곳, 메타세쿼이아 길
여행지마다 마주치는 세진과 현우. 그들의 여행길을 안내하는 것이 민주의 여행노트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둘은 어색함과 미묘한 감정변화를 느낀다.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려는 현우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세진은 이별을 한다.
현우가 세진을 찾아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곳이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여행의 시작은 사막과 같으나 이 여행이 끝날 때쯤 가슴엔 숲이 가득할 것이다.”라는 민주의 말과 함께.
이 길을 두고 민주는“새로 포장한 길인가 봐요. 예쁘죠? 전에 있던 길 추억이 다 이 밑에 있을 텐데. 사람들은 이제 그 추억을 안고 이 새 길을 달리겠죠? 아, 좋은 길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긴다. 마치 현우와 세진의 여행이 끝날 때쯤 자신을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듯.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따라 심겨진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원래 중국산 나무라고 한다. 그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의 품종으로 개량되어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그 나무가 다시 국내로 들어와 담양군에 심겨진 것은 1972년 경. 당시 내무부에서 시행하던 가로수조성사업으로 길을 따라 3~4년 생 묘목을 심은 것이 지금의 명품 나무길이 된 것. 뾰족한 나무 모양을 끝까지 지키며 하늘 높이 자라는 이국적인 모습 때문에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산책하거나 하이킹을 하려면 학동마을 입구에서 오른편 옛 길로 진입해야 한다. 옆으로 새로 난 24번국도가 있으니 주의할 것.

이밖에 담양에는 대숲을 누릴 수 있는 죽녹원과 대나무골테마공원, 대나무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대나무박물관 등 대나무와 관련된 공간들이 많다.
또 담양읍 한가운데로 흐르는 관방천변의 오래된 숲도 볼거리. 제방을 따라 담양읍 남산리 동정자마을로부터 수북면 황금리를 지나 대전면 강의리까지 6km나 이어지는 조선시대의 숲에는 200여년 이상된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곰의 말채나무, 엄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66호이다. 관방천변생태공원도 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