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와 튤립, 그리고 히딩크의 나라.
국토의 40％가 바다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네덜란드. 그래서 나라 이름도 ‘낮은’이라는 뜻의 ‘Nether’와 ‘땅’이라는 의미의 ‘Land’를 따서 만들어졌다. 네덜란드는 예부터 습지가 많았다. 땅은 지금보다 훨씬 질퍽했고 곳곳에 웅덩이와 하천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농부들은 먼 길을 걸으면서 이런 장애물들을 넘어 다녀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장대를 이용해 하천을 통과하는 방법이었다. 장대를 하천 한 가운데 꼽 고 그 탄력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이미 1200년대부터 장대를 이용해 하천 을 뛰어넘던 과거의 생활상이 네덜란드의 옛 문헌에 남아있다고 한다. 피어옙펜 (Fierljeppen)이라는 네덜란드 전통 놀이의 시작이다. 피어옙펜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 9~10월에 걸쳐 부산에서 열린 제4회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 에서 피어옙펜은 시민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사회체육대회는 문화적 유산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는 각국의 전통스포 츠를 소개하고 함께 즐기는 세계 전통스포츠 페스티벌이다. 부산대회에선 세계 103개국의 전통 스포츠가 선보여졌다. 3천여명의 외국 선수들은 각국의 전통 스포츠와 무예, 춤, 놀이 를 선보였는데 그 중 피어옙펜의 인기는 단연 뜨거웠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도약대를 달려 강 한가운데에 꽂힌 10m 높이의 장대에 뛰어올라 강 반 대편 모래사장으로 뛰어내렸다. 워낙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 습회가 열릴 정도였다. 피어옙펜은 네덜란드어로 ‘멀리 점프하기’란 뜻이다. 전력 질주를 해서 장대 위에 뛰어오르는 장면도 재미있지만, 그보다는 장대를 잡은 상태에서 장대 꼭대 기로 후다닥 기어 올라가는 모습이 더 흥미롭다. 네덜란드의 한 피어옙펜 대표선수는 “장 대가 기우는 사이에 가능한 한 빠르게 장대의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야만 더 먼 거리까지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방식이 간단해 보여 도전했던 시민들은 막대로 뛰어올랐다 가 손에 힘이 풀려 물속에 빠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네덜란드의 한 관계자는 조선시대에 이미 피어옙펜이 소개된 적이 있 다고 말했다. 조선 땅을 밟았던 네덜란드인이라면 하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630년생인 하멜은 스물두 살의 나이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그러나 1633년 목적지인 일본의 나가사키로 향하던 도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게 되고 가까스로 제주도에 도착했다. 하멜은 동료들과 함께 무려 13년간 조선에 머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의 풍습과 놀이문화가 조선 사람들에게 소개됐을 수 있다.

사실 하멜 일행보다 먼저 조선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도 있었다. 하멜 일행이 표류해 왔을 때 조선 조정의 통역을 맡아 제주도로 보냈던 박 연이란 사람이다. 그의 네덜란드 이름은 벨테 브레다. 그는 서양인으로는 조선에 도착한 첫 번째 인물로 꼽힌다. 벨테브레는 당시 왕이었 던 인조의 명을 받아 대포와 화약 기술을 조선에 전수했다. 하멜 일행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우리말과 조선식 삶을 배우고 네덜란드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만큼 박 연을 통해 피 어옙펜이 소개됐을 가능성도 높다.

네덜란드에선 1771년 사상 최초의 공식 피어옙펜 경기가 벌어졌다. 1957년엔 축구나 야구처 럼 피어옙펜 리그가 출범했다. 점프의 기술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기록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1960년대만 해도 최장 점프 거리는 10m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30년 사이에 그 거리 는 두 배가 됐다. 현재 최고 기록은 테오 반 쿠텐의 19.54m다.
피어옙펜은 실개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다. 폭이 넓지 않은 개천에 장대 하나, 그리고 푹신한 모래사장만 있으면 누구나 장대멀리뛰기 선수가 될 수 있 다. 단, 미리 수영복을 입어두거나, 나중에 갈아입을 여벌의 옷을 준비하는 ‘센스’는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