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이외수 선생의 집은 이외수 선생답다. 복도를 지나면 낮은 곳에서 나는 바람소리에 눈 보다 귀가 먼저 고개를 숙인다. 느슨한 창호가 아래로 난 창에 붙어 있다. 눈에 안 보이는 것도 귀가 먼저 듣는 곳인 셈이다.　
이외수 선생의 대화는 세상을 떠나 있다. 하늘에 나는 저 새가 철새냐 텃새냐, 이 꽃 이름은 뭘까, 나뭇잎이 왜 이리 큰가 하는 것 등이다.그래서 그가 MBC FM의 ‘언중유쾌’의 진행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큰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행은 세상에 거리낌이 없었다. 최진실을 죽였다는 악플에 대해 정면으로 비난하고, 원더걸스의 ‘노바디’의 가사가 1차원적이라는 어른들의 지적에 펄시스터스의 ‘커피 한 잔’은 2차원적이었냐고 되묻는다. 속세를 떠난 대화는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대화와도 통하는 셈이다.
사실, 젊은 그는 미술학도를 꿈꾸었다. 이외수 선생의 아버지가 홍익대 미술학과를 보내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말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외수 선생이 나온 강원도 춘천의 한 모퉁이 중학교엔 지리 선생님이 미술을 가르치셨다. 그러니 전문미술교육은 전혀 못 받았다. 춘천교대로 진학을 했지만 미술의 꿈을 버릴 수가 없어서 대학미전에 출품하며 그림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도서관에서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을 만나게 되면서 꿈은 달라진다. 그도 떠다니는 돌 그리기를 즐겨했다. 22살에는 공중에 22개의 돌을 띄워놓았고, 25살에는 25개의 돌을 공중에 띄워놓았다. 당시 그에게 돌은 강박의 덩어리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속이 꽉 찬 돌은 그 무게로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65년 입학해서 72년 자퇴한 대학은 그에게 시대적 중압감과 미래의 중압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65년엔 베트남 파병으로 젊은 피들이 사라져갔고, 69년엔 3선 개헌 강행으로 젊은 한숨이 늘어갔다. 그는 자신을 무거운 돌들로부터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와중에 마그리트를 만난 것이다.
“충격이었어요. 30년 전에 이런 그림이 존재했다니. 난 그림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보다 적음을 알았죠. 그리고 그림을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돌 대신 인생이 떠다니게 되었다.

방랑
그는 현재 감성마을에 정착했다. 이외수 선생이 정착한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방랑이고 외수거사이고 떠 다니는 돌이니까. 이외수 선생은 방랑의 끝은, 방랑의 목적은 정착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정착을 하기 위해 방랑을 해요. 하지만 만일 육신의 정착을 원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누구나 집을 가지면 됩니까. 하지만 의식의 정착을 원한다면 다르지요.”
의식의 정착은 특정한 곳에 기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곳에 정착할 수 있고, 동시에 여러 곳에 정착하기도 한다. 육신은 의식을 따라 돌아다닐 뿐이라는 것이다. 어렵다는 말에 예를 든다. 이외수 선생은 첫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받았다. 하지만 귀저기도 미역도 아무 것도 살 돈이 없었다. 그날 햇빛은 지랄같이 좋았단다. 처음으로 붓을 꺾었다. 학원강사를 시작했고, 어쨌든 육신은 돈벌이에 정착했다. 하지만 의식은 더 멀리 방랑을 시작한다. 눈이 멀어 나도 안보이고 세상도 안 보인다. 귀로만 낮은 소리를 내며 우는 의식을 듣고 있다. 정착하고 싶더란다. 어딘가 정착지를 정해놓고 떠돌았다. 하지만 도착하면 또 다른 방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아무데나 앉기 시작했다. 지쳤던 걸까. 바로 그때 그는 ‘아무 곳이나 내가 앉은 곳이 정착지다’라는 명제를 깨닫는다. 세상 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자 세상이 그에게 속살을 열어줬다.

죽음, 곧 새로운 탄생
그렇다면 결국 방랑의 끝은 죽음이 아닐까. 육신도 의식도 조용히 눕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질문을 예상한 듯 말을 이었다.
“그것이 죽음에 대해 갖는 대표적 오류에요. 생명의 끝이 죽음이라는 거죠. 하지만 누에고치는 생명의 무한연장을 보여주죠. 알은 스스로 사유하고 숨을 쉬어요. 물론 수학적으로는 1차원이에요. 움직이지 못하니까. 하지만 곧 에벌레가 태어나요. 알은 죽음을 맞죠. 같은 방식으로 누에고치는 에벌레의 죽음과 번데기의 탄생을 동시에 보여주죠. 곧 생명은 측정할 수 없고, 방랑은 끝나지 않는 윤회를 따라 계속되는 거예요.”
그의 집 위에 달은 유난히 밝다. 늘 밤 늦게 퇴근하면서도 뭐가 바빠 달을 올려다 볼 여유도 없는지 모르지만 밝은 달이 새삼스럽다. 그가 말하는 달은 생명의 모태인 ‘음’이다. 닿을 수는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아늑한 의식의 정착지. 거기엔 의식의 친구인 감성이 살아있다. 그는 달이 사라지면서 설화도 함께 사라졌고, 할머니의 정겨움, 이웃의 情, 대가족 시절의 애뜻함도 함께 없어졌다고 믿는다. 달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쉬워하지만 대다수는 이미 달을 잊었고 감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더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시트콤도 출연했고, 라디오 진행도 도전했다. 하지만 몇 가지는 분명하다. 의식이 자유롭다는 것. 더욱 자유로울 것이며 무엇이든 무겁게 도전해 가볍게 해낼 것이라는 점. 방송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사람들의 깊은 곳 감성을 깨우는 프로젝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 구름에 달 가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