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프로젝트, 철인 3종 경기 완주, 자선 콘서트 기획, 재즈 음반 발표. 이동우 씨는 자신이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내며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한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면서도 “설령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도 좋아요. 원한다고 다 되지는 않잖아요? 꼭 뭔가가 될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노래와 춤, 연기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유쾌함과 즐거움의 아이콘이었던 사람. 보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남자는 삶을 두 번 살고 싶을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답처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서로만 평생 바라보며 살고 싶어 둘은 연을 맺었다. 행복만 이어질 것 같은 봄날들, 남자는 어느 날 어쩐지 두 눈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이렇게 안 보이지? 밤에는 더하고. 나 야맹증인가 봐.”
남편의 말을 심상치 않게 들은 아내는 병원 행을 권한다. 그 날 들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말과 실명 예고. 발음조차 어려운 병명 앞에 부부는 ‘장난인가’ 싶었다고. 결혼 후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마음 추스를 새도 없이 병은 진행됐다. 4천 명 중 1명이 발병한다는 병이 왜 내게 왔을까 원망할 틈도 없었다. 하루하루 나빠지는 눈 상태가 그를 지독히도 괴롭혔다. 다음으로 연금수급자의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이 있다.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연금의 조기수급 억제와 수급시기의 연기 그리고 법정연금수급연령의 연장 등이 있을 수 있다. 동시에 이와 같은 방안들은 연금가입인구의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 재정안정화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앞으로 일어날 ‘나쁜 일’이 있는데, 그 확률이 100퍼센트라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나쁜일이 서서히 사람을 잠식하는 거죠.” 앞이 안 보여 여기 저기 부딪쳐 온몸에 멍이 들어도 차마 어머니 마음에 멍이 들게 할 수는 없었다. 2년 동안 부부는 어머니에게 실명 사실을 숨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한 식탁에서 일이 벌어졌다. “너 왜 이렇게 바닥에 음식을 흘리니? 아니, 얘가 칠칠치 못하게 왜 이래. 애도 아니고!”어머니 호통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된 이동우씨. 어머니는 아픈 아들을 끌어안고 “내 눈이라도 빼 줄게. 내 아들 볼 수만 있다면.”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불행은 가족의 아픈 마음을 신경 쓰지 않았다. 병세는 더 심각해졌고, 그는 그토록 아끼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그만 두었다. 방송 원고를 읽을 수 없었다. 희귀병에 걸린 사실을 고백하면 해고를 당할까 두려워 떨었다.
마음의 고통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상대에게 고백하세요
그로부터 10여년. 2015년, 현재 그는 희망과 열정의 아이콘이다. 그러한 수식어에 감사하면서도 그는 그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 힘든 시대, 혼자서 희망을 외치고 싶지는 않다는 것. 실명으로 인한 괴로움과 두려움에 폭음과 폭식, 은둔과 대인기피 등을 반복하며 자신을 망가뜨리던 시절을 보내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힘내라”는 말에 더욱 신중하다. 또한 그는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극복’이란 단어는 조심스럽게 써야 해요. 절망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서 극복하라’는 말이 강요와 폭력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장애를 극복한 게 아니에요. 극복했다면 지금 눈이 보여야죠.(웃음) 장애는 ‘수용’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나는 장애인이다”라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장애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까지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한때는 잠이 깨면 고통스러워 술을 마셨다. 취하면 이성이 마비되니 잠시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잠을 부르기 위해 더 마셨다.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거리에 나가는 건 너무 두려웠던 날들. 그러던 하루,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덜컥 밖에 나왔다. 일단 대문을 열고 나가고 나서, 어디로 갈지 정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복지관의 장애인을 만나러 갔다.
“악순환의 고리가 깨어지는 것은 어떠한 결정적 계기가 아니에요. 문득 한걸음을 떼는 것 만으로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가고픈 데가 없어도 그냥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거예요. 몸이 움직이면 마음은 따라와요. 가고 싶은 곳이 생겨요.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요. 우연한 행동 하나가 의지를 불러오기도 하는 거죠.”
공연을 하고 노래를 하고 철인3종 경기에 나갔다.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악보를 볼 수 없고 연주자들과 아이컨택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했지만 마음을 달리 먹었다. ‘꼭 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버리려 했다. 힘들면 힘든 대로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받아들이니, 질리거나 화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소중한 깨달음도 많이 얻게 됐다. 시력을 잃고 나니,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듣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진짜 마음이 보였다. 예전에 볼 수 없던 것들을 맑은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을 큰 선물이자 축복이라 여긴다.
“사람들은 종일 뭔가를 보고 들어요. 그런데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늘 분주한 사람들이 ‘나 외로워’라고 말해요. 타인과 나의 행복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행복에 대한 강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에요. 주변만 보느라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지 않으면 외로워질 수밖에 없어요.” 상처를 내색하지 않고, 그 결과 점차 자신 안으로 침잠하는 이들을 보면 ‘손 내밀어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해진다. 그는 “인생이 한 300년 된다면 100년은 외로워도 되겠지만, 우리 인생은 너무도 짧지 않은가” 말하곤 한다. 고독과 아픔을 대화로 표현하고, 그 결과 하루라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게 진짜 인생이라 여긴다.
그는 지금 행복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심장에손을 대고 ‘감사하다’고 속삭인다. 바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운동은 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뛰어준 심장에 대해 예의를 표하는 것이니까.항상 그의 손을 잡고 걸어준 아내를 깊이 사랑한다. 두 번 태어나도, 이 정도로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고 재밌는 날을 맞을 것이다.
“저는 다시 두 눈으로 보겠다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아요. 의학과 기술이 언제 어떻게 놀라운 일을 해낼지 모르는 거예요. 설사 제가 죽기전까지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취재·글 _ 김은성 사진 _ 손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