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 뚝뚝 쌓여가는 강진의 봄날
아름다움의 가치는 가슴 뛰게 하는 데 있다. 봄날의 강진이 그렇다. 다산과 해장 스님이 걸었던 길에 동백꽃을은 지금도 사람 마음을 붉게 물들이고, 다산 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은 여전히 그리움이 차오른다. 세상 끝에 선 다산을 다시 살게 한 것이 이 봄빛이 아니었을까.
7,000여 그루 동백숲 거느린 백련사
남도 답사 1번지 강진군에는 만 가지 덕을 가졌다는 만덕산이 있다. 나지막 하지만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만덕산에는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의 다산초당과 천년고찰 백련사가 깃들어 있다.
백련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문성왕 원년(839년)에 무염대사가 창건하였 다. 원래 ‘만덕사(萬德寺)’라 불리던 절이 ‘백련사’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시대 원묘국사가 주장한 ‘백련결사’ 정신에서 유래한다. 고려 개국정신이 흔들리며 정치와 종교는 타락하고, 몽골과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들의 삶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 절망 속에 백성들의 힘으로 정토를 건설하자고 외쳤던 최초의 시민운동이 바로 백련결사였다. 그것을 계기로 백련사는 문벌귀족체제와 결 탁한 기존 불교계에 대항하는 천태종(天台宗)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조계종 송광사와 양대 산맥을 이루며 8명의 국사를 배출한 거찰이기도 하다. 조선 건국 후 숭유억불정책으로 폐사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세종의 둘째왕자 효령대군이 왕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유람하던 중 이곳 백련사에서 8년 동안 머물기도 했던 역사 깊은 곳이다.
깊은 역사와 뜻 깊은 이름에 비해 백련사의 가람은 소박하다.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건축물 몇 동이 전부다. 큰 절집이 주는 위화감도 여느 유명 사찰의 번잡함도 없다. 한눈에 차는 가람과 스님들이 건사한 텃밭이
- 백련사
- 전라남도 당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 Tel:061-432-0837 / 입장료, 주차료 무료
- 다산초당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 Tel:061-430-3911
- 사의재
-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 Tel:061-433-3223
어우러져 마치 고향집 같은 풍경을 전해준다. 거기다 갯벌 가득한 강진만의 풍경이 더해졌으니, 모자람도 넘침도 없다.
백련사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생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봄날에 백련사를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1월 부터 피기 시작하는 동백은 이듬해 4월쯤 사라지는데, 3월이면 그 붉은 무리가 절정에 달한다.
빠알간 등불을 켠 채 초록 잎사귀를 밝히며 꼿꼿하게 몇 날을 보내다가 미련없이 제 몸뚱이를 툭 떨군다. 동백처럼 처연한 꽃도 없다. 시들어 하늘하늘 꽃잎을 떨구는 게 꽃들의 삶이거늘 동백은 온전히 산 몸뚱이를 땅에 내던진다. 그렇게 땅에서 다시 피었다가 서서히 야위어간다. 동백은 세 번 피어난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번, 땅에서 한번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서 또 한 번 피어난다. ‘기다림’, ‘애틋한 사랑’의 꽃말처럼 동백의 뜨겁고, 애달픈 사랑 하나 마음에 피워도 좋은 봄날이다.
강진여행의 백미, 다산초당 가는 길
백련사 동백나무 숲에서 왼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다산초당이 있다. 당시 백련사에는 혜장스님이 머물고 있었는데, 다산과 혜장은 동백나무 가득한 오솔길을 따라 서로의 학문을 나누고 차를 즐겼다. 만덕산은 동백뿐만 아니라 야생차가 온산을 덮고 있어 ‘다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정약용의 ‘다산’도 만덕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 온 처음 8년은 강진만 포구 주막집에서 지내다가 외가인 ‘해남윤씨’의 도움으로 다산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다산초당은 다산과 닮았다. 아담하면서 기백이 당당한 멋을 지녔다. 본채와 제자들이 학문을 정진하던 ‘동암’과 ‘서암’이 전부다. 마당에는 자그마한 반석이 놓여있다. ‘다조’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은 솔방울을 지펴 끓인 물로 차를 우려 마셨다는 자리다. 강진만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동백향이 어우러진 그 자리의 차 맛이 천하제일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초당에는 선생이 새겨놓은 ‘정석(丁石)’바위와 맑은 샘이 흐르는 약천이 살림살이 전부다. 초당 옆의 연못은 다산의 유일한 호사였듯 여전히 동백 그림자를 드리우고 여행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산과 혜장이 오고 갔던 오솔길은 강진여행의 백미다. 30분 남짓 짧은 길이지만 아름다운 길이다. 동백꽃이 툭툭 떨어지며 생을 다독이고, 대숲에 이는 바람은 마음을 맑게 한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바람에 실려 오는 차향이 달콤하다. 다산이 힘겨운 유배지에서도 방대한 인문학적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이 길 덕분이 다. 이 길을 통해 다시 세상을 이야기하고 정을 나누고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비단 다산만이 아니다. 이 길은 해남에서 충청도, 경기도를 지나 서울로 이어지는 ‘삼남길’의 일부다. 그 옛날 과거 시험을 보러 가며 출세를 꿈꾸던 선비들, 봇짐을 매고 부자를 꿈꾸던 상인들, 타향의 그리운 이를 만나러 떠나던 이들의 희망의 길이 바로 삼남길이다.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네 가지, 사의재
사의재는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머물기 전에 지내던 곳이다. 한양에서 열흘이 걸려 당도한 강진에 짐을 푼 바로 그 주막이다. 주막 뒤 작은 골방에 4년간 머물면서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의는 마땅히 지녀야 할 네 가지를 말하는데 맑은 생각, 단정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가리킨다.
고바우공원은 동백과 다산의 뜻을 둘러본 다음 강진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강진만의 청정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이곳 전망대는 하트 조형물 너머로 보는 일몰이 그야말로 환상이다. 전망대 아래 카페는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글·사진 _ 유은영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