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를 의학적으로 ‘老化’라 한다. 노화를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마디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노화를 일으키는 기전이 복잡함을 의미한다.
노화의 원인은?
건강검진을 위해 필자의 진료실을 방문했던 85세의 어머니와 50대 초반 딸들의 건강상태는 노화와 질병의 원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자그마한 체구의 어머니는 혈액뿐 아니라 일반적인 암 검사에서도 그 흔한 양성 혹 조차 없었다. 반면 큰 딸은 갑상선과 폐에 양성 혹이 있었고, 영양 불균형 소견이 보였다.
둘째 딸은 과체중에 대사증후군의 징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태어난 두 딸은 부모의 건강 상태를 닮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그들의 생활 습관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규칙적인 시간에 가리는 음식 없이 세 끼 식사를 했다. 매일 산책을 했으며 피곤하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어머니의 생활은 전형적인 ‘모범생형’이라 할 만큼 규칙적이었다.
반면 큰 딸은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았고, 또 먹는 것에 비해 활동량이 많아 피로감을 자주 느끼고 잦은 요로감염으로 고생한다고 했다. 둘째 딸은 규칙적인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고 절식과 과식을 반복했으며 활동량도 적어 점점 체중이 증가한다고 했다.
영양, 운동, 감정이 우리 몸 생존의 기본 요소
부모의 건강상태는 자식에게 최소한 그대로 유전되거나 향상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자식 세대에서 체력이 더 약해지고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자면 우리 몸이 생존하도록 만들어진 기본을 처음 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은 먹은 것을 뼈와 지방, 근육으로 저장해 그 에너지를 이용해 각 장기가 고유의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또 외부 환경 및 내부 건강 상태에 따라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영양, 운동, 감정 상태가 균형 잡혀 항상성을 유지할 때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대부분 건강한 사람의 노화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감정>운동>영양 순이다. 하루쯤 먹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망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심한 두려움, 분노와 같은 격한 감정 하에서는 호흡과 심장이 멎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 분노와 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온 몸 혈관을 수축, 근육을 경직시켜 온 몸의 흐름을 막아 동맥경화와 장기 노화를 가속화 시킨다. 반면 ‘좋은 일이 생기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는 옛 말이 있듯, 긍정적인 생각은 온 몸 혈관을 열어, 혈액 순환 속도를 빠르게 해 노화를 늦추는 작용을 한다.
반면 질병으로 현재 치료 중인 경우나 65세 이상의 고령자의 경우는 영양>운동>감정다스리기 순으로 노화 속도가 결정된다. 이들은 이미 특정 장기에 질병이 있거나, 전반적인 장기의 노화가 진행된 상태이다. 소화 및 대사능력이 떨어져있어 규칙적인 식사가 선행되어야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기력이 떨어지면 우울해지기 쉽듯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체력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유 없이 짜증이 나거나 우울할 때는 먹고, 움직이고, 휴식하는 균형이 깨어졌는지를 체크해 보고, 스스로의 감정 상태에 귀 기울여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첫 걸음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였던 이전에는 영양이 질병과 노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였다.
하지만 현대인은 영양보다는 운동이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운동은 혈액 순환을 빠르게 하고 근육에 힘을 비축함으로써 몸을 지탱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지나치면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장기 노화를 촉진 할 수 있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
최근 건강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 무조건 소식하고 과한 운동을 하는 바람에 운동과 영양의 불균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일, 채소, 견과류와 같이 몸에 좋다는 음식을 지나치게 섭취해 영양 과잉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아도 남들이 좋다는 음식을 먹으려는 경우도 있다.
몸 속 구조는 열이면 열사람, 모두 차이가 있어 다른 사람에게 좋다는 음식이 내게는 편안치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맹목적으로 먹기 보다는 자신에게 맞고 편안한 제철 음식을 활동량에 맞추어 먹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영양 원칙이다.
영양, 운동,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핵심
위 경우에서, 큰 딸은 영양 섭취에 비해 과도한 활동으로 인한 소모가 장기의 마모로 이어지면서 노화가 진행되었다. 둘째 딸은 불규칙한 영양 섭취와 운동량 부족으로 불필요한 지방이 세포에 축적되며 장기 노화가 진행된 상태다. 결론적으로 어머니처럼 피로하면 휴식하고, 몸이 만들어진 대로 순리에 맞추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감정 변화에 귀 기울이면서, 먹고, 움직이는 몸의 균형을 맞추어 주면, 누구나 노화를 늦추고 자신의 기대 수명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다.
박민선 교수 _ 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