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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말한다

제3회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붉은 노을처럼"(글 : 강정아 / 최우수상) 8만 시간이란? - 60세 은퇴자가 80세까지 건강하게 생존할 경우의 여유 시간. 은퇴 후 하루 중 일상에서 꼭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여가시간은 하루 11시간 정도이며, 60세에 정년 퇴직해서 80세까지 20년 동안의 여유시간은 80,300시간(11시간*365일*20년)이 된다. 타는 노을처럼 자신을 붉게 물들여 누군가의 가슴에 한 조각 불씨를 남길 수 있는 그런 노년을 준비하며, 나는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한다.

“7번 강정아 씨.”

두근거리던 가슴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앞에 앉아 계신 심사위원과 양 옆에 앉은 동료들이 눈에 들어오자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안녕하세요. 관광통역안내사 강정아입니다. 지금 저를 따라 들어오신 이곳은 한옥 마을의 가장 끝에 위치한 타임캡슐광장입니다. 이곳에서 제가 남산 한옥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밤새도록 연습한 덕분인지 후들거리는 다리와는 달리 한 부분도 틀리지 않고 시험을 마쳤다. 오후에 있을 필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하여 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얼마 전 나는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가 되기 위해 한국관광안내사협회에서 실시하는 교육에 참가했다. 이 교육을 이수하게 되면 「관광법규」와 「관광학개론」 시험을 면제 받기 때문에 국가고시를 좀 더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 10월 13일, 난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고 수료증을 받았다. 이제 내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선 셈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아동복 제조를 시작했고 내 브랜드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일을 그만두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일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존재 확인, 그리고 내 삶의 목적이었다. 아이들의 유학을 위해 우리 가족은 중국으로 이사를 했다. 나와 남편은 중국 운남대 전지 캠퍼스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을 시작했다.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에 관한 것도 함께 가르치며 나름 긍지와 자부심을 키워나갔다.

이후 운남성 여행학교의 한국어 교사 제안을 받아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우리가 살던 곤명은 차마고도의 중심지이면서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루어진 경관들이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였다. 한국인 관광객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 한국어 가이드 양성이 활발하던 터였다.

그러던 중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 여행을 하며 심각한 갈등에 빠지게 되었다. 경복궁에서 조선족 가이드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듣게 된 것이다. 경복궁의 아름다움, 선조들의 지혜 등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무척 안타까웠다. 이런 일들을 여러 차례 목격하면서 나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나, 내 가족, 내 집... 내 것만 알던 강정아가 철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남편과 귀국을 생각하던 때여서 관광통역안내사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보다 정확한 지식들을 전달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이제 오십이라는 생소한 나이를 접하게 된다. 노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이제부터는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기로 하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봉사라는 개념을 실천해 보자’ 이러한 생각들은 나를 흔들어 놓았고 나를 달아오르게 했다. 노년을 바쁘게 살기 위해서 몇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로 잊고 산 나를 되찾고 싶어졌다. 잊고 산만큼 더 많은 노력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내 연륜이 묻어나 더 깊어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다시 시작했다. 두 달 전부터는 폴리텍 대학에서 웹디자이너 과정을 밟고 있으며,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여러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을 하고 있다. 청바지에 운동화, 배낭을 메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가 대견스럽고, 내가 뛰어오를 그 순간이 기대되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유럽 여행을 가자는 또래 친구들에게 “이제 곧 오십이고 육십인데, 뭐 준비한 거 있어?”라고 물으면 대부분 “애들 대학 보내고 이제야 숨 좀 쉬겠는데, 뭐가 아쉬워 안달이니?”라고 대답한다.

‘지금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어려울 텐데….’

타인과 소통하며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발전시키고, 힘들게 살아가는 또 다른 삶에게 웃음을 주기 위하여 나를 바꿔나가고 싶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계획표를 만들어 하나하나 실천해나가기 시작했다.

첫째, 잃었던 나를 찾기 위해 작품 활동을 하루에 적어도 세 시간씩은 한다. 1년에 한 번 씩 개인전을 하거나 작품집을 낸다.

둘째, 현대인으로 살기 위한 조건들을 학습하기 위해 하루 2시간 이상 공부한다. 인터넷 등 최신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셋째, 나 이전에 우리라는 공동체를 먼저 떠올리고 나누는 기쁨을 실천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이를 위해서 관광통역안내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놓는다.

이 항목들을 순서대로 벽에 붙여놓고 하나씩 실천해가고 있다. 관광통역안내사도 그 중 하나이다. 그리고 매일 작업을 해서 내년 6월에는 개인전을 할 생각이다.

성실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겸손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나. 그래서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노년을 보냈으면 좋겠다. 타는 노을처럼 자신을 붉게 물들여 누군가의 가슴에 한조각 불씨를 남길 수 있는 그런 노년을 준비하며, 나는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한다. NPS

★제3회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 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공동 추진 (2013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