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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에 필요한 것들(글 : 오승현 / 자유기고가)

우리는 ‘노후’ 하면 대개 ‘대비’를 떠올리곤 한다. 노후 대비는 대체로 경제적인 준비를 의미한다. 노후 대비에서 경제적인 준비나 건강관리를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후와 관련해서 이런 정보들을 흔히 접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람직한 노후 대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경제적인 준비나 건강관리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가장 좋은 친구는 역시 배우자다. 배우자는 평생을 함께해온 친구이다."

오래된 친구, 오래 함께한 사람

오래될수록 좋은 것들이 있다. 술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다. 오래 묵힌 술과 오래 사귄 친구는 모두 시간의 더께를 간직하고 있다. 오랜 친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사람이다.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한 말이다. 에피쿠로스의 이 말은 나이 들수록 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감정의 바구니에 꼭 채워 넣을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관계이기 때문이다. 장성한 자녀들이 떠난 자리는 휑하기만 하다.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친구이다. 가장 좋은 친구는 역시 배우자다. 배우자는 평생을 함께해온 친구이다. 젊은 시절 먹고 살기 바빠 배우자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노후에 그러한 시간을 보내면 된다. 시인 에머슨은 한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노후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배우자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 만약 사별해 혼자된 처지라면, 새로운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랑은 청년만이 아니라 노년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은 성취와 재미, 사랑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활동, 고독을 달래다

옛날에는 인생의 진도표가 단순했다. 사람들은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며 살았다. 어떤 이는 평생 물고기만 잡았고, 어떤 이는 평생 빵만 구웠다. 그래서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빵 굽는 이는 베이커(Baker), 물고기 잡는 이는 피셔(Fisher) 등등. 특별히 정년이라는 것도 없었고, 죽기 전까지 같은 일만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대개의 직업에는 정년 퇴직이 있다. 정년 후의 시간을 하루 종일 빈둥거릴 수는 없다. 바람직한 노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활동이다. 그것은 일이 될 수도 있고, 취미나 놀이가 될 수도 있고, 봉사와 같은 사회 활동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노후를 잘 보내려면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 괴테는 60세에서 80세까지를 ‘세 번째 청춘’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글을 썼다. 그의 대표작인 『파우스트』는 여든 두 살에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씌어졌다. 흔히 “고독이 밀려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독은 어쩌다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불쑥 혼자 왔고 갈 때도 홀연히 혼자 떠난다. 노년의 시간에는 젊을 때보다 더 자주, 더 깊게 고독을 느끼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에는 하는 일이 많고 가족에 둘러싸여 고독을 덜 느끼지만, 나이 들어 할 일이 사라지고 장성한 자녀들이 하나둘 부모 품을 떠나고 나면 그 자리에 고독이 남게 된다. 결국 고독이라는 감정은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간 내면의 감정 바구니에는 고독을 포함해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다. 우리는 고독이라는 감정을 말끔히 지워버릴 수 없다. 다만 고독이 도드라지지 않게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후에는 의미 있는 활동이 더더욱 필요하다. 무언가에 집중함으로써 고독감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노후의 양식

우리는 빵으로만 살 수는 없다. 몸은 빵만으로도 살지만,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다. 어릴 때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꿈꾸며 살지만, 나이가 들면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추억하며 산다. 추억은 노년의 양식이다. 추억이 넉넉하면 긴 겨울밤도 걱정이 없다. 추억은 남은 생을 견디는 위로이자 가장 중요한 노후 대책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후 대비를 다시 정의하자면,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게 가장 바람직한 노후 대비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충실하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성실함이나 근면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Carpe diem!(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충실히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억의 창고에 추억거리를 넉넉히 갈무리해 놓는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배워 왔다. 그런데 그 할 일이란 것이 대개 숙제나 공부, 혹은 노동이었다. 그 일에는 재미나 즐거움을 주는 활동은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행복한 삶이란 지금의 즐거움을 미루지 않는 삶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가 아니라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해야겠다. 현재가 즐거워야 일생이 즐겁다.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일생이 아니라 하루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오늘 하루다. 아니, 정확하게는 ‘지금’이다. 그러니 지금을 충실히 사는 것이 곧 인생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매순간이 곧 일생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