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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아빠 엄마 등밖에 안 보여(박순구) 밤 10시쯤, 딸아이의 이부자리를 봐주고 돌아서는데 책상 위에 엎드려서 “엄마, 나 외로워.”하는 게 아닌가. 그 말에 방을 나가려다 말고 딸애를 무릎에 앉히고, “우리 딸, 외로우세요? 왜 외로울까요?” 하니 한숨을 내쉰다.

“엄마, 아빠, 회사가고, 나도 유치원 가고, 저녁에 집에 와도 아빠는 다시 컴퓨터에서 일하고, 엄마도 컴퓨터에서 일하고, 아니면 빨래하고, 밥하고, 그래서 바쁘다고 하고. 나는 이제 인형이랑 노는 것도 심심하고 외로워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돌이켜보니 정말 그렇다. 남편은 인터넷 강의를 듣느라 회사에서 돌아와서 문 앞에서 딸아이를 한 번 안아주는 것이 다였다. 나 역시 유치원에서 딸아이를 데려오자마자 밥부터 준비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하고...

“아빠랑 엄마는 등밖에 안 보여. 방문 열면 등만 보이고 목소리만 들려. 얼른 자라는 소리만 해”. 가슴이 철렁했다. 항상 아빠와 엄마의 등만 보고 있었을 딸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루 종일 아빠랑 엄마랑 떨어져 있는데 함께 지낼 수 있는 저녁 시간마저 부모의 등만 보며 목소리만 듣는 딸애의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진짜 그렇네! 아빠 엄마가 공부 한답시고 우리 딸한테 무심했네. 이제부터는 저녁에 책도 함께 읽고, 영화 보고, 얘기 하고, 인형놀이 하면서 보내기로 약속하자. 밤에 산책도 하면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딸아이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남편도 자신의 등만 보고 있었을 딸아이에게 미안하다며 서로 돌아가면 서라도 아이랑 놀아주자면서 적극적으로 나왔다. 멀리 있는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으랴. 미래의 행복을 위한다며 아이에게 부모의 등만 보게 한 것을 반성한다. 아빠, 엄마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일이란 것을 깨닫는다.

미역국에 아버님의 사랑이 있었네(조은영)

오랜만에 친구와 호수를 거닐고 점심으로 참가자미를 넣은 미역국을 먹었다.

“이 집 가자미 맛있다. 비린내가 별로 안 나서 담백하지?”

울산이 고향인 친구는 참가자미가 울산에서 많이 난다고 자랑을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참가자미를 넣은 미역국은 시원하고 맛있었다. 미역국을 먹으니 문득 시아버님이 생각났다.

형님과 터울이 많은 막내인 나는 첫 딸을 낳고 시댁에서 몸조리를 했다. 친정에서 몸조리를 할 형편이 아니어서 시댁에서 지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형님 내외도 딸만 둘이라 아버님은 은근히 아들을 원하셨는데 딸을 낳고 시댁에서 몸조리까지 하니 시어른께 죄송했다. 아버님은 평소에 엄하고 무뚝뚝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어머님이 해주신 참가자미 미역국은 정말 맛있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참가자미는 미역국에 연하고 부드럽게 풀어졌다. 비린내도 전혀 없었고 고소하고 담백했다.

“아이구, 우리 새끼 얼굴 좀 보소. 나날이 볼 살이 통통하게 오르네. 다 너 할아버지가 잡아온 참가자미 덕분이다.”

실컷 젖을 빨고 기분이 좋은지 씨익 웃고 있는 딸을 보고 어머님도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손녀에게 먹이려고 아버님이 직접 참가자미를 잡으셨다니! 내가 딸을 낳아 속이 상해서 매일 어디로 바람 쐬러 나가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를 위해 바다에 나가셨다니. 아버님의 정성이 가득한 참가자미 덕분에 나는 싱싱한 미역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참가자미 미역국을 제일 잘 한다는 그 집보다 어머님이 해주신 미역국이 더 맛있었다. 거센 바다와 파도와 싸워 건져 올린 아버님의 사랑이 오롯이 담긴 참가자미 미역국, 잊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미역국이었다.

기특한 딸내미(노정숙)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나갈 채비를 하는데 고등학생 딸내미가 전화를 해서는 학교로 데리러 와달라고 합니다. 안하던 행동이었기에 뭔가 이유가 있을 듯 싶어 일단 차를 가지고 갔습니다. 가보니 우리 아이 말고도 친구 두명이 함께 있었고 그 중 한명은 목발을 짚고 있었습니다.

“엄마, ○○동 교회 알지? 그리로 가주세요. 친구가 발이 부러져서 엄마 차 좀 실례~ 헤헤.”

친구가 아파서 저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는 걸 알고 조금 기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차로 30분 정도 달렸을까, 거의 다 도착해서는 딸아이가 저에게 돈을 조금 꿔달라고 합니다. 다음에 용돈 받으면 갚겠다며.. .

그것도 이유가 있지 싶어 말없이 돈을 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리를 다친 친구가 ‘감사합니다. 차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인사를 하고 내리더군요. 딸아이가 목발을 짚은 친구를 데려다준다며 사라진 지 10분 쯤지나 다시 차로 돌아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머니랑 단 둘이 살고 있는 그 친구는 얼마 전 저녁 밥을 짓다가 부엌에서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차로 30분이나 걸리는 집을 시내버스로 왔다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엄마 차를 빌려 썼다며 피식 웃는 딸아이.

내일이 그 친구 할머니의 생신이라 작은 케이크를 사드리고 싶다는 말에 돈을 빌려주었다고 말하더군요 .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하거나 예쁘다거나 특별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그 날은 우리 아이가 바른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참 고맙고 대견하더군요. 그 날 밤 남편과 그 이야기를 나누며 무척 행복했답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마디 해 줬습니다.

“너, 나한테 꾼 돈은 특별 보너스야. 안 갚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