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로 기억합니다. 건설회사에서 일하시느라 사우디로, 아랍으로 해외에 나가계시던 날이 더 많으셨던 아버지를 집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이 말입니다. IMF와 함께 터진 회사의 도산 그리고
쫓겨나듯 하게 된 퇴직에 무척 힘든 모습이셨습니다. 하지만 다시 힘을 내 퇴직금과 살고 있던 아파트로 대출을 받아 식당을 개업하셨습니다. 언제나 남자는 통이 커야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가게는 생각보다 크고 좋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일찍 문을 닫고야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가게는 팔리지도 않아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셨습니다. 저도 등록금 낼 형편이 되지 못해 부랴부랴 군대에 자원 입대하였습니다. 제대한 뒤 보니 집은 더 엉망이었습니다. 평생 살림만 해 오셨던
엄마는 빌딩 청소일을 나가고 있었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자가 되어 계셨습니다. 넓은 가슴으로 가족을 보듬아 주시던 아버지는 사라지고 술과 잠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를 지탱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주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5년 여를 지내시다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너무도 많은 세월 깊이 원망하였습니다. 제대 후에도 복학이 여의치 않아
하루 네 시간씩 자며 일하였습니다. 동생 둘 학비와 생활비를 대어야 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해 동사무소도 찾아가보고 삼촌들도 찾아가보았지만 모두 헛걸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이를 악물어도 눈물이 났고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싫었습니다. 아버지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고 끊임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시절을 흘려보내고 보니 이제는
아버지가 그리운 날도 찾아오고는 합니다.
지금 저의 직업은 목욕관리사, 때밀이입니다. 세 살배기 아들 녀석이 자라 학교 갈 때 되면 아빠 직업란에 때밀이라 적어주어야 하는지 벌써 염려되기도 하고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나도 모르게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자긍심을 가지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다 찜질방 매점에서 일하게 되었고 우연히 목욕관리사 형님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좀 창피하였습니다. 서른 청년에게 때밀이를 하라니 처음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곧잘 했던 막내 동생 녀석 대학은 꼭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학벌도 재산도 없던 제게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을 봉양해야 했던 제게 적지 않은 수입은
감사하게만 다가왔습니다. 열심히 깨끗이 손님들의 묵은 때를 닦아 드렸습니다. 젊고 힘도 좋으니 기술이 좀 부족해도 단골도 많아졌고 10년이 흐른 이제는 나름 베테랑이 되어 있습니다. 동생들 학업도 마쳤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저를 쏙 빼닮은 아이도 낳았습니다.
제 자신과 내 가족을 지켜내야 하기에 저는 누구보다 빨리 은퇴 후 노년 설계를 시작해 왔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일깨워 주신 교훈이라 믿으며 누구보다 희망차고 따스한 8만 시간의 인생을 준비합니다.
우선 최고의 목욕관리사가 되겠습니다. 최고의 목욕관리사가 되기 위해 스포츠 마사지와 아로마 마사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주말도 없고 휴일도 없지만 그래도 젊음을 무기로 50대까지는 틈틈이 많은 기술들을
배우며 일하겠습니다. 50세부터 55세까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하겠습니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어엿이 한국 문화의 하나인 때밀이를 알리는 것도 기쁜 일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경락 마사지나 아로마 테라피
등이 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것처럼 때밀이 문화를 일본에도 전파시키고 오겠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55세에는 목욕관리사 학원을 개원할 생각입니다. 3D 업종이라 꺼리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분명 때밀이는 자신이 열심히 일한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정직한 직종입니다. 무엇보다 저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며 또 너무 빠른 은퇴나 직장을 갑자기 잃으시는 분들에게도 새로운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겨진 8만 시간에 저는 이동목욕차를 타고 아내와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살겠습니다. 함께 고생 많이 했던 아내 호강도 시켜주어야 할 것이고 저 또한 제 생애 처음 휴식기를 가지게 될 은퇴 후 삶입니다.
제1의 인생보다는 느슨하고 느리게 천천히 살아도 되니 방방곡곡 바다로, 산으로 마음껏 유랑하겠습니다. 5톤 트럭을 개조해 작은 스파와 목욕시설을 구비할 것입니다.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며 마을 회관이나
이장님을 찾아 목욕을 하고 싶으신 어르신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제 아버님, 어머님 같은 어르신들을 개운하게 목욕시켜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동 때밀이가 되겠습니다. 아프지 않으시도록 개운하게
밀어 드릴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해 드리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함께 늙어 가는 노년에 저도 많은 행복과 위로를 받는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노인 한분도 제대로 씻겨 드릴 힘이 없어지면 아내의 고향마을로 가 작은 땅을 얻어 우리 먹을 것 길러 먹고,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아름다운 풍경과 하나 되어 살겠습니다. 안 입고 안 먹는 것이 아직도
제일 자신 있는 저입니다. 그저 부지런히 벌어 어머님 잘 모시고 아이 잘 키우고 나중엔 아내와 설계했던 8만 시간을 맞고 싶습니다.
은퇴 후 8만 시간에는 저의 작은 기술로 누군가에게 소소한 행복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들 녀석에게는 큰 산 같은 아버지로 영원토록 남고 싶습니다. 듬직한 남편으로 아내를 지켜 주고 싶습니다.
다시 만나 뵐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은퇴 후, 8만 시간에도 지금처럼 성실히 노력하는 거북이 같은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제3회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 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공동 추진 (2013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