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빠라는 본업

모두가 좋은 아빠를 꿈꾸지만 아무나 좋은 아빠가 될 수는 없다. ‘이 정도면 나도 좋은 아빠 대열에 속하겠지’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사실 좋은 아빠에 대한 평가는 아이의 몫이다. 그저 아빠는 오늘도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 스스로를 보통의 아빠라고 소개하는 윤기혁 작가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육아대디’의 삶을 선택했고, 또 꿈꾸고 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저녁7시에 돌아오는 직장인의 생활도 병행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부업, 그의 본업은 바로 ‘남편’과 ‘아빠’다.

“주위 여건상 육아는 오롯이 저희 부부의 몫이었어요. 도움받을 곳이 없었죠.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괜찮았는데,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등하원 시 아이가 교실에 혼자 남는 경우가 있었어요.” 소규모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은 학교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바뀐 환경에 아이가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윤기혁 작가는 육아 휴직을 감행한다. 그는 육아휴직 기간을 통해 잊고 있었던 ‘남편’과 ‘아빠’라는 직업을 되찾게 되었다. 육아휴직을 통해 얻게 된 시간을 온전히 아이와 함께 보냈고, 또 그동안은 미처 몰랐었던 아내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육아휴직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과의 관계보다 아내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휴직하고 온전히 주부가 되어보니, 그동안 아내가 어떤 일들을 해냈는지 감히 짐작할 수 있었어요.” 하루는 아내의 퇴근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후 5시쯤 야근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아내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휴’하는 한숨이 흘렀다는 그. 그동안 야근이다 회식이다 하며 가사와 육아를 미뤄왔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때마다 아내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 아시죠? 자세히 보아야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이 시를 마음으로 흠뻑 경험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이 모두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동안 피곤하다며 무심코 흘려보낸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오롯이 아이와 아빠가 함께 보내는 일상. 아빠는 아이들을, 또 아이들은 아빠를 오래도록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선들을 사진과 메모로 기록했고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빠가 쓴 책의 내용보다 책속에 그려진 가족들의 일러스트에 더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지만, 조금만 더 크면 함께 꺼내 볼 수 있는 아빠와의 추억이 하나 더 늘어난 건 분명하다.

소소해서 소중한 함께하는 시간

두 번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지만 윤기혁 작가의 일상은 육아휴직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족이 만드는 이야기에서 저는 주말에만 등장하는 인물이었어요. 가끔 청소하고, 밥하고, 놀이방에 함께 가는 정도. 그런데 이제는 평일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주연을 맡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떨 때 울고 웃었는지를 물으며 함께 감정을 공유하려고 해요.” 여전히 주연급은 아니지만 행인에서 조연급으로 분량이 높아진 것 같다고 웃는다. 가족들이 만드는 이야기 속으로 더 깊숙이 참여하기 위해서 그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 주어진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칼퇴근을 할 수 있도록 할 것, 상사나 동료 간 모임을 이유로 가족 간의 약속이나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것. 무엇보다 출근을 하기 전에 아이들과 한 약속은 사소한 것이라도 꼭지킬 것. 아이들과 함께하고 눈 맞춤 하는 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는 것, 꼭 육아휴직을 하지 않더라도 육아대디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육아대디의 삶을 꿈꾸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보통의 아빠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하자 윤기혁 작가는 아직 자신도 일과 육아의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 조언을 할 입장이 아니라고 대답하며, 대신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아이들과 생활의 공집합을 늘리는 것을 권하고 싶어요. 절대적인 시간이 많으면 참 좋겠지만 적으면 적은 대로 밀도를 높여서 교감하는 것입니다. 보통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잠들기 전 책 3권 읽기, 일주일에 세 번은 아빠와 씻기, 일상에 대해 질문하기 등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는 어떻게 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엄마는 감히 할 수 없는 목소리로 역할 연기를 하며 책을 읽거나, 목욕할 땐 거품으로 머리칼을 도깨비 뿔로 만든다거나, 일상에 관해 물을 땐 친구 이름을 기억해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방법 등으로 접근하면 아이들은 아빠와 있으면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라고 기억하며 아빠를 점점 기다리게 될 거라고 전한다.

그러다가 털썩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지치는 순간도 찾아올 거라고 이야기하는 윤기혁 작가. 그럴 때는 친구든 동료든 고단한 감정을 나눌 대상이 필요하다고 말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잠든 아이들을 두고 거실에서 아내와 맥주 한잔을 하며 이야기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잘못하다가는 ‘내가 더 힘들어’라는 배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육아하는 아빠들과의 은밀한 수다를 추천합니다.”

함께 나누는 육아대디의 꿈

그는 남편 윤기혁, 아빠 윤기혁이 아닌 한 사람의 윤기혁으로서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 10년 차 내외의 직장인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터뷰이의 모습에서 많이 배우고 있는데, 올해에는 이 작업이 출간으로 열매를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저 역시 종종 어떤 모습이 육아대디의 삶일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5살 둘째 아이를 보며 같이 놀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친밀도가 높아져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11살인 첫째 아이를 보며 점점 부모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는 보살핌이라지만 아이에게는 간섭이나 잔소리가 되는 일들이 많이 생기죠. 자녀가 성장하면서 육아대디의 모습도 달라져야 해요. ‘자녀의 성장시기에 따라 또 각기 다른 환경에서 부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해 많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