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 문화유산을 만나다
웅장함 대신 위엄을,
화려함 대신 고고함을
경남 양산 통도사
경남 양산하면 이름난 것 중 ‘통도사 홍매화’가 있다.
이곳 매화가 전국에서 가장 빨리 꽃망울을 터뜨리는 데다 유서 깊은 절에서 만나는 그 분위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통도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솔솔 부는 봄바람으로도 지금 양산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천 년의 시간을 간직한 불보사찰
여행지로서 통도사는 참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곳곳에 녹아든 유서 깊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체험하다 보면 반나절이 모자랄 정도니까 말이다. 우선 사찰로서의 위엄과 유구한 역사가 있다.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 전남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삼보사찰로 꼽히는데 삼보(三寶)란 말 그대로 세 가지 보배란 뜻이다. 팔만대장경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를 법보(法寶)사찰,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송광사를 승보(僧寶)사찰,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를 불보(佛寶)사찰이라 한다.

이곳의 백미이자 자랑 역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금강계단이다. 통도사는 신라시대 64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는데, 삼국유사에 그가 직접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 금강계단은 부처님이 항상 존재하는 곳으로 상징성을 갖는다. 전국의 승려들이 이곳에서 계를 받아 득도하도록 했으며 통도사라는 이름도 만법을 통해 도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 불교 계율의 중심지인 셈이다. 당시 나라 안팎의 정세가 혼란스러울 때에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을 세웠으니 신라 선덕여왕은 비로소 군주의 힘을 갖추고 국론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통도사 창건의 의미가 이 금강계단에 다 담겨있는 것이다. 통도사 대웅전은 정방형 건물로 법당 바깥 사방마다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을 달고 있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동쪽은 적멸보궁이라 쓰여 있다. 이곳에선 불상 대신 금강계단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탑을향해 절을 한다. 대부분 절의 대웅전에 가장 웅장한 불상을 모셔놓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점이다. 다른 사찰 대웅전과 종교적 상징성이 다른 것이다. 이곳 대웅전은 국보 290호 로도 지정돼 있다.
볼거리 가득한 본사를 지나 암자 기행까지
통도사는 대웅전 외에도 보물 18점과 경남유형문화재50점을 보유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절이기도 하다. 그만큼 볼거리가 가득하다. 입구에 있는 부도원(浮屠院)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585호로, 역대 고승의 사리탑을 봉안한 곳이다. 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3년 월하 방장 스님의 교시로 한 곳으로 이전했다. 17세기부터 지금까지 통도사를 지켜온 60여 분의 큰스님 사리탑이 안치돼 있다. 입구를 지나 곧 만날 수 있는 성보박물관도 통도사의 장대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불교 유물을 볼 수 있으니 꼭 둘러봐야 할 코스다.

본사를 다 둘러봤다고 끝이 아니다. 통도사는 무려 열아홉 개의 암자를 갖고 있다. 암자 순례길로 불리는 암자 종주 코스는 22km에 이른다. 암자는 승려들이 도를 닦는 공간을 말하는데 통도사가 워낙 큰 사찰이다 보니 암자의 규모도 크다. 그중 가볼 만한 곳을 하나만 꼽자면 바로 서운암이다. 통도사 입구에서 3km 떨어져 있다. 천연염색 교실, 산사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1,600여 개의 장독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서운암에서 전통장을 담그기 시작한 사람은 통도사 주지를 지낸 성파스님이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님들이 절 식구의부식으로 사용하기 위해 직접 메주로 담그던 방법을 재현해냈다.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햇콩을 무쇠가마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펴 삶은 후 공기가 잘 통하도록 황토와 짚으로 만든 전통가옥에서 발효한다. 이 특별한 서운암 전통장은 일반인도 구입할 수 있다. 양산 통도사는 지난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됐다.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올랐다.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과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이 등재 조건을 충족했다. 우리나라 불교 역사와 독창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뿌리 깊은 솔숲을 지나 만난 홍매화
통도사의 명물은 이뿐만 아니다. 입구에서 부도원(浮屠園)까지 1.6km에 이르는 소나무 숲이 일품이다. 춤추는 바람과 서늘한 소나무 숲이라 하여 일명 ‘무풍한솔길’이다. 수령 100~200년의 적송들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모습이 그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이곳을 걸으면 마음에도 바람이 통하는 듯 잡념이 사라지고 편안해진다. 무풍한솔길은 2018년에 개최한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뽑히기도 했다.

통도사 경내 곳곳에는 소나무 외에도 느티나무 등 수려한 외형의 수종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른 봄이면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인기를 끄는 친구도 있다. 바로 영각(影閣) 앞마당에 있는 매화나무다. 선암사 원통전의 ‘선암매’, 지리산 산천재의 ‘남명매’처럼 우리나라의 유명한 매화에는 고유한 명칭이 따로 있는데 이 매화는 ‘자장매’라 부른다. 수령 370년 정도다. 자장매에 얽힌 설화를 살펴보자.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에 나선 우운대사가 1643년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불타버린 역대 불교계 스승의 영정을 모시는 영각을 건립한다. 이후 마당에 매화 싹이 자라나 음력 섣달마다 연분홍 꽃을 피웠다. 이를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마음이라 믿어 ‘자장매’라 부르게 됐다는 것. 어찌 됐든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2월 초순부터 꼿꼿하게 꽃을 피워내는 홍매화는 꽃망울은 작지만강인함과 고고함만은 최고다.
매화에 마음 싣고 양산 원동면으로
봄에 양산을 찾았다면 통도사 말고도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봄이면 매화꽃이 소복하게 피어나는 양산 원동면 일대다. 척박한 땅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원동면 주민들이 1970년대 소득증대를 위해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현재 매실농가는 300여 개 정도인데, 이 중에서도 핫스팟을 꼽자면 단연 ‘순매원’이다. 양산 토곡산 자락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원동역으로 향하는 경부선 철길이 매화와 어우러져 이 맘때면 빼어난 경치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강변에 위치해 다른 농가에 비해 꽃이 일찍 피는 순매원은 2000년 초, 김용구 씨가 퇴직 후 꾸린 매실농장이다. 묘지를 관리하기 위해 마련한 창고가 있는 부지에 불과하던 땅에 매실나무를 한두 그루씩 심은 것이 상춘객의 감성을 자극 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순매원보다 내륙 쪽에 위치한 영포마을로 가면 보다 제대로 매화꽃 향기에 취할 수 있다. 산허리마다 하얗게 쌓인 매화에 눈이 황홀해진다. 원동 매실농가의 대부분이 영포마을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순매원과 영포마을 일원에서는 매년 봄마다 원동매화축제를 연다.
겨우내 긴장한 근육과 눅눅해진 마음까지 달래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양산으로 향하면 어떨까. 그곳에 자리한 오래된 사찰과 말갛게 피어난 매화의 얼굴 사이를 걷다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화려함과 웅장함이 없어도, 오랜 세월 단단히 다져온 신념과 고고함이 당신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할 것이라고.
글_ 강미라(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