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담론
대를 이어야만 하는 농업의 가치,
브랜드 파머를 만들다
브랜드 파머를 만들다
내가 태어났던 1983년. 유달리 민감한 체질에 건강이 약하셨던 어머니는 고추밭에 농약을 치는 날이면 멀리서 농약 줄만 잡아주며 서 계셔도 3일씩 앓아누우셨다고 한다. 하루 이틀 농사 짓고 말 것도 아닌데 농사짓는 사람부터 건강하게 살자며 아버지는 농약 없는 농사를 시작하셨다. 유기농이 뭔지도 모르던 젊은 부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유기농사꾼이 되었다.
부모의 세월을 브랜딩 하기 위해 선택한 귀향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부모님의 유기 농업이 소중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80년대에 유기농을 한다는 것은 가까운 가족들이나 친구들조차 무시하는 이른바 바보나 하는 농사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엔 풍족하지 못한 집안이 원망스러웠고 성인이 되어선 그런 부모님의 대우받지 못하는 삶이 그저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부모님을 재평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두 분이 지켜온 가치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안타깝게만 여겼던 두 분이 걸어온 길이 이제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디자이너로 살아가며 여러 브랜드 작업을 해보면서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님이 지켜온 유기 농업의 가치를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브랜딩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시골로 오게 되었다.
아버지의 한마디, 농사를 업(業)으로 만들다
사실 나는 살면서 귀농에 대해서 고려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잠깐씩 해본 농사일은 어린 나에게 트라우마가 될 만큼 너무 힘들었고 내가 해야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사일보다는 두 분이 지켜낸 가치를 브랜딩 하는 것만이 오로지 귀향의 이유였다. 그런데 단순한 로고나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타협 없이 지켜낸 결실을 브랜드에 고스란히 담기 위해서는 나 또한 농업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 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농사일을 조금씩 겸하게 했다. 오랜만에 해본 농사일은 역시나 쉽지 않았고 정이 가지 않았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내 몸이 이렇게 구석구석 전부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일이기에 진심을 담아 브랜딩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농사일만큼은 나의 업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지냈음에도 결과적으로 귀농을 결정하게 된 건 농업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다.
“1년에 잘해봐야 두세 번 짓는 게 농사이고 평생 다해봐야 100번도 연습하기 힘든 게 농사야. 하다못해 방망이를 깎아도 10,000번은 연습하고 나서야 장인 소리를 들어도 들을 텐데 100번도 안 지어 본 농사는 가당치도 않지. 그래서 대를 이어 해야만 하는 일인 거야” 그저 담담하고 우직하게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이젠 농업 관련 큰 상도 많이 타시고 주변 사람들한테 인정도 많이 받으시는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분이다. 40년 가까이 유기농을 하셨으니 그 정도면 이 업계에선 장인이라고 불려야 되지 않겠냐는 나의 물음에 돌아온 답변이었다. 저 대답 덕분에 나에겐 무거운 사명감이 생겼다. 저런 생각으로 농사를 짓고 유지해온 땅을 자식인 내가 이어가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 브랜드는 결국 헛껍데기에서 끝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저 농사 한번 지어 보려고요.”
“생각은 장하다만 할 수 있겠냐”
“좀 걱정은 되는데 해봐야죠. 저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하지만 막상 부모님처럼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타협하지 않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또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다른 산업에 비해 어렵고 어느 업종보다도 만만치 않은 노동량을 요구하는 농업에 뛰어든다는 것이 쉽게 용기가 나진 않았다. 브랜딩을 하며 간간이 도와드리는 것과 농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지켜 오신 땅과 농법을 지키며 작은 농장에서도 알차게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부모님의 희생을 통해 내가 받은 행운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와 ‘파머’를 합친 새로운 직업 ‘브랜드 파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농사를 주로 짓는 낮과 농번기에는 농사일에 집중을 하고 농사일이 없는 밤과 농한기에는 농업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진행하여 실행한다. 쉽게 말해 투잡인 셈이다. 사실 농사 하나만 짓기에도 농부의 삶은 충분히 고단하다. 농사를 지으며 브랜드까지 만든다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나의 행보가 앞으로 농사를 시작할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고 우리 부모님 삶의 끝에 보람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삶도 꽤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잘해봐야 두세 번 짓는 게 농사이고 평생 다해봐야 100번도 연습하기 힘든 게 농사야. 하다못해 방망이를 깎아도 10,000번은 연습하고 나서야 장인 소리를 들어도 들을 텐데 100번도 안 지어 본 농사는 가당치도 않지. 그래서 대를 이어 해야만 하는 일인 거야” 그저 담담하고 우직하게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이젠 농업 관련 큰 상도 많이 타시고 주변 사람들한테 인정도 많이 받으시는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분이다. 40년 가까이 유기농을 하셨으니 그 정도면 이 업계에선 장인이라고 불려야 되지 않겠냐는 나의 물음에 돌아온 답변이었다. 저 대답 덕분에 나에겐 무거운 사명감이 생겼다. 저런 생각으로 농사를 짓고 유지해온 땅을 자식인 내가 이어가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 브랜드는 결국 헛껍데기에서 끝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저 농사 한번 지어 보려고요.”
“생각은 장하다만 할 수 있겠냐”
“좀 걱정은 되는데 해봐야죠. 저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하지만 막상 부모님처럼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타협하지 않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또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다른 산업에 비해 어렵고 어느 업종보다도 만만치 않은 노동량을 요구하는 농업에 뛰어든다는 것이 쉽게 용기가 나진 않았다. 브랜딩을 하며 간간이 도와드리는 것과 농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지켜 오신 땅과 농법을 지키며 작은 농장에서도 알차게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부모님의 희생을 통해 내가 받은 행운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와 ‘파머’를 합친 새로운 직업 ‘브랜드 파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농사를 주로 짓는 낮과 농번기에는 농사일에 집중을 하고 농사일이 없는 밤과 농한기에는 농업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진행하여 실행한다. 쉽게 말해 투잡인 셈이다. 사실 농사 하나만 짓기에도 농부의 삶은 충분히 고단하다. 농사를 지으며 브랜드까지 만든다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나의 행보가 앞으로 농사를 시작할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고 우리 부모님 삶의 끝에 보람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삶도 꽤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온전히 짓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내가 현장에서 몇 년간 농사를 직접 지어보며 주변을 보고 깨닫게 된 것은 아버지처럼 땅을 살피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점점 더 줄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농부들이 요령만 늘고 깊이는 없어지는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는 ‘농업기계’가 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런 시대에 귀농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것만큼은 기억했으면 한다. “농민은 땅을 살리고, 살아 있는 땅은 농작물을 이롭게 키우며, 이롭게 자란 농작물은 사람을 건강하게 살린다.” 아버지께선 항상 이 삼생(三生)을 강조하셨다. 결국 땅을 살리는 길만이 사람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많은 귀농인들이 이 점을 깨달아 땅을 살리고 이롭게 농작물을 키워 스스로를 살리는 농사를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우리 농업 현장도 온전히 살아날 수 있다. 거기에 우리 농업의 내일이 있다.
글_ 원승현·그래도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