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여름이 온다,
치맥이 온다
치맥이 온다
90년대 대학을 다닌 내게 ‘치맥(치킨과 맥주)’은 특별식에 가까웠다. 너나없이 빠듯한 형편이었던 우리는 막걸리로 술을 배웠다. 막걸리에 캔 참치와 생라면을 안주로 먹던 때, 치맥은 언감생심. 선배들은 맥주를 ‘미제국주의의 구정물’이란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막걸리와 소주만 마시라고 고집을 부렸다. 돌이켜보니 선배들도 가난했던 탓이다. 더치페이란 것도 없이 선배는 사주고 후배는 얻어먹던 시절이었다. 직장인이 된 선배가 와서 호프집에서 ‘치맥’을 사준다는 삐삐(음성호출기)를 치면 수업까지 빼먹고 모두 치킨집으로 몰려갔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우리의 모가지가 길었을까, 닭 모가지가 길었을까. 그나마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낭만을 맛본 대학생활의 기억이다. 대학교 시간 강사로 살면서 만나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훨씬 더 사정이 나쁘다. 아무리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을 벌충할 수 없고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빚을 지게 되니 친구들과 편히 치맥을 나눌 시간도 없다.
치킨계에는 ‘치맥파’가 가장 큰 세력이긴 하지만 ‘치소(치킨과 소주)파’도 중요한 계파다. 실제로 치킨점에서 소주도 많이 팔린다. ‘치소파’들은 치킨과 소주를 먹으면 속도 편하고 소주가 맥주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여러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주머니가 궁한 시절인 20대 초반에 치킨과 소주를 함께 먹었던 첫 맛을 잊지 못해서다. 소수로 ‘치막파’라 하여 치킨과 막걸리를 함께 먹는 이들도 있다. 치킨은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고 아무리 치킨 값이 올랐다고 원성이 높아도 여전히 치킨과 맥주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음식이자 환상의 짝꿍이다.
그런데 왜 치킨은 맥주와 함께 먹어야 맛있을까? 치맥의 초기 형태는 전기구이통닭과 생맥주였다. 이때가 1960년대 중반 즈음이다. 대중 음식이라 부르기엔 가격이 셌다. ‘치킨과 생맥주 한 조끼’를 즐길 수 있던 사람들도 당연 중산층 이상의 ‘화이트 칼라’들이었다. ‘조끼’는 잔을 뜻하는 ‘저그(Jug)’의 일본식 발음이다. 아직 식민지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던 때였다. 1조끼는 맥주 1,000cc 정도를 말한다. 지금 생맥주 한 잔은 500cc가 표준이지만 본래 생맥주 한 잔의 표지는 1,000cc였다. 여전히 오래된 맥줏집에 가면 유산처럼 1,000cc 잔이 남아 있고, 추억을 좇아온 오랜 단골들에게만 내어주는 귀한 잔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 대 초반에 저 조합으로 음주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소득 안정성이 있는 이들만 가능했다. 지금도 오랜 역사를 지닌 몇몇 유명 치킨점들은 당대의 엘리트들과 문사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잔업 철야 지친 몸은 소주로 달래던’ 1) 시대였고, 치맥은 먼 음식이었다.
그런데 왜 치킨은 맥주와 함께 먹어야 맛있을까? 치맥의 초기 형태는 전기구이통닭과 생맥주였다. 이때가 1960년대 중반 즈음이다. 대중 음식이라 부르기엔 가격이 셌다. ‘치킨과 생맥주 한 조끼’를 즐길 수 있던 사람들도 당연 중산층 이상의 ‘화이트 칼라’들이었다. ‘조끼’는 잔을 뜻하는 ‘저그(Jug)’의 일본식 발음이다. 아직 식민지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던 때였다. 1조끼는 맥주 1,000cc 정도를 말한다. 지금 생맥주 한 잔은 500cc가 표준이지만 본래 생맥주 한 잔의 표지는 1,000cc였다. 여전히 오래된 맥줏집에 가면 유산처럼 1,000cc 잔이 남아 있고, 추억을 좇아온 오랜 단골들에게만 내어주는 귀한 잔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 대 초반에 저 조합으로 음주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소득 안정성이 있는 이들만 가능했다. 지금도 오랜 역사를 지닌 몇몇 유명 치킨점들은 당대의 엘리트들과 문사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잔업 철야 지친 몸은 소주로 달래던’ 1) 시대였고, 치맥은 먼 음식이었다.
집집마다 냉장고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막걸리는 ‘말통’에 담겨 유통되었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란 것은 불가능한 시대였다. 소주도 마찬가지였다. 냉각기를 통과한 맥주만이 한 여름에도 냉기를 지녔다. 그래서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은 고급주이자 사치주였다. 1997년까지도 세법상 맥주는 사치품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소풍이나 운동회 때나 맛볼 수 있던 귀한 통닭까지 함께 먹는 일은 자주 누릴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다. 산업사로 보자면 콜라와 맥주는 한 집안 출신이다. 해방 이전 ‘삐루’라 부르던 맥주는 조선 내 일본인들과 조선의 특권층들만 마실 수 있던 술이다. 일제 강점기 유명 요릿집인 ‘명월관’에서도 ‘삐루’를 팔았다. 당시 서울 영등포에는 일본인 소유의 맥주공장이 있었다. 그중 하나인 ‘소화기린맥주’ 회사를 두산그룹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오비맥주)’가 적산으로 불하를 받는다.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물과 탄산, 병을 갖췄다는 뜻이고 이는 콜라 생산도 가능한 시스템이기도 했다. 그래서 코카콜라 본사는 병입 회사 선정을 주로 맥주회사로 삼는다. 한국 코카콜라의 병입 회사는 OB맥주였다.
KFC를 한국으로 들여온 모기업이 두산이란 것도 우연은 아니다. 치킨을 콜라와 먹든 맥주와 함께 먹든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벌어들이는 일이었다. 2)
이제 치킨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이벤트 음식이 아닌 일상의 음식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치맥은 스포츠 이벤트와 함께할 때 최고의 음식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숨은 승자는 ‘치맥’이기도 했다. 양손에 치킨과 맥주를 들고 “대~한! 민! 국!”을 외쳤을 뿐인데 4강까지 올라가 온 국민을 치맥의 매력에 빠뜨린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집에서 TV로 생중계를 볼 때도 야외 응원전에 나가서도 치맥이 딱이다. 1초도 놓칠 수 없는 순간에 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을 구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당시 치킨 배달이 늦어져 아예 전날 예약을 해 놓기도 하고, 점주들은 닭의 물량이 달려 애를 먹었다. 생맥주 뽑을 시간도 모자라 병맥주만 팔아도 손님들이 별 불만 없던 꿈같은 시절이었다.
치맥은 야구와도 잘 어울린다. 국가 스포츠이기도 한 축구는 국가대항전일 때만 텔레비전 생중계를 하지만 야구 경기는 시즌 중에 거의 매일 방송을 하고 관람 문화도 자리 잡혀 있다. 야구 경기를 보면서 아빠와 엄마는 치맥을 아이들은 치콜을 하는 장면은 화목한 가정의 표상이기도 하다. 또 친구들과 연인들이 야구장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 여가를 즐기는 풍경도 이제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영광은 짧고 고통은 길다.
이제 치킨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이벤트 음식이 아닌 일상의 음식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치맥은 스포츠 이벤트와 함께할 때 최고의 음식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숨은 승자는 ‘치맥’이기도 했다. 양손에 치킨과 맥주를 들고 “대~한! 민! 국!”을 외쳤을 뿐인데 4강까지 올라가 온 국민을 치맥의 매력에 빠뜨린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집에서 TV로 생중계를 볼 때도 야외 응원전에 나가서도 치맥이 딱이다. 1초도 놓칠 수 없는 순간에 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을 구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당시 치킨 배달이 늦어져 아예 전날 예약을 해 놓기도 하고, 점주들은 닭의 물량이 달려 애를 먹었다. 생맥주 뽑을 시간도 모자라 병맥주만 팔아도 손님들이 별 불만 없던 꿈같은 시절이었다.
치맥은 야구와도 잘 어울린다. 국가 스포츠이기도 한 축구는 국가대항전일 때만 텔레비전 생중계를 하지만 야구 경기는 시즌 중에 거의 매일 방송을 하고 관람 문화도 자리 잡혀 있다. 야구 경기를 보면서 아빠와 엄마는 치맥을 아이들은 치콜을 하는 장면은 화목한 가정의 표상이기도 하다. 또 친구들과 연인들이 야구장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 여가를 즐기는 풍경도 이제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영광은 짧고 고통은 길다.
치킨을 특별한 날만이 아닌 끼니로도 먹는 세상이 되었다면 그만큼 닭도 치킨점도 많아졌다는 뜻이다. 매달 8천만 마리가 넘는 닭이 길러지고 있지만 닭은 대형 육계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다.
농민들은 그저 닭을 길러 400원도 채 되지 않는 사육 수수료를 챙길 뿐이다. 치킨을 튀기는 자영업자들의 삶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치킨점을 운영하면서 이리저리 본사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임차비와 인건비, 신용카드 수수료 및 배달 어플 수수료까지. 치킨 한 마리를 팔아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점주들에게 떨어지는 돈은 채 3천 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치킨값이 왜 이리 비싸냐며 치킨집 사장들을 사기꾼 취급을 한다. 전국의 치킨점은 4만 곳으로 추정하지만 맥주를 취급하는 주점에서도 안주로 치킨을 판다. 길거리에서 파는 닭꼬치와 닭강정도 장작구이 통닭까지도 치킨점으로 본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게다가 전국에 4만 1,800곳의 ‘편의점’도 유사 치킨점이다. ‘4캔에 만 원’이라는 공식이 생긴 수입맥주 4캔과 편의점에서 파는 치킨은 한 조각에 2천 원 내외다. 주머니는 가볍고 맥주 한 잔과 치킨이 절실할 때 편의점의 야외 테이블은 꽤 괜찮은 ‘치맥집’이 된다.
바깥은 이미 여름이다. 과다한 치맥 섭취는 통풍을 유발한다는 경고도 있지만 여름에는 역시 치맥이다. 그리고 뜨거운 튀김 솥 앞에서 닭을 튀기고 생맥주를 뽑느라 옷에 소금 얼룩이 배였을 것이다. 배달맨들은 치킨만큼이나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백숙 끓이는 솥만큼이나 뜨거운 계사에서 닭들과 씨름을 하는 농민들의 숨이 턱턱 막히는 목마른 계절이 여름이다. 올해 여름은 이들의 갈증도 좀 가셨으면 좋으련만 벌써부터 폭염 경고 소식이 들려온다.
바깥은 이미 여름이다. 과다한 치맥 섭취는 통풍을 유발한다는 경고도 있지만 여름에는 역시 치맥이다. 그리고 뜨거운 튀김 솥 앞에서 닭을 튀기고 생맥주를 뽑느라 옷에 소금 얼룩이 배였을 것이다. 배달맨들은 치킨만큼이나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백숙 끓이는 솥만큼이나 뜨거운 계사에서 닭들과 씨름을 하는 농민들의 숨이 턱턱 막히는 목마른 계절이 여름이다. 올해 여름은 이들의 갈증도 좀 가셨으면 좋으련만 벌써부터 폭염 경고 소식이 들려온다.
글_ 정은정(『대한민국치킨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