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충동 족발골목의 유래

장충동(奬忠洞)은 자타공인 한국 족발요리의 발상지다. ‘장충동=족발’로 각인됐다. 광복 후 그 언저리에 첫 국립묘지가 생겼고, 후에 동작동으로 이전되자 1955년 그 자리에 육군체육관, 1963년 국내 첫 실내경기장인 장충체육관이 건립된다. 연일 벌어지는 복싱과 레슬링, 각종 경기와 공연 등으로 인해 체육관 인근은 최고의 상권으로 군림한다. 그 상권의 촉매는 단연 ‘족발특수’였다.
지하철 동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만나게 되는 장충동 족발골목. ‘족발의 시조’, ‘원조 1호’, ‘원조의 원조….’ 너도나도 원조를 외친다. 다들 연고권이 강하지만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은 ‘평안도족발’의 산증인인 이경순 할매다.
평안도족발집은 창업주 고(故) 이남영씨와 전숙렬 할매가 동업해 열었다. 처음에는 빈대떡 등을 파는 고만고만한 이북음식점이었는데 후에 족발 하나로 특화된다. 족발 이전에는 빈대떡이 주메뉴였다. 손님들이 빈대떡에 질려 다른 걸 하라고 했다. 그런 연유로 태어난 게 족발이다. 족발 한 개에 400원 정도. 한창 많이 팔 때는 백 개 넘게 족을 썰었다.
현재 평안도족발집은 창업주 이씨 작고 후 손아래 동서 이경순 할매와 창업주의 둘째 며느리 홍순옥씨가 맡는다. 이경순 할매는 1947년에 월남했다. 아버지는 동대문시장에서 옷 장사를 했다. 명문 서울여상을 졸업한 후 회사도 다니다가 얼떨결에 윗동서와 족발 장사를 함께 되었다. 초창기 전씨 할매는 독립해 ‘뚱뚱이할머니집’을 차렸다. 둘째 며느리 김명숙씨에 이어 김씨의 외동딸 김송현씨가 손맛을 책임진다.

신개념 족발의 등장

초창기 족발은 중국식 장육(醬肉)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특히 족발의 색상은 거의 전적으로 검은색이 진한 중국간장인 ‘노두유’ 때문이다. 장충동 족발의 비결은 뭘까? 맛을 내는 비법이야 저마다 다르지만 기본은 간장, 생강, 파, 양파 정도면 끝이다. 다른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계피나 감초 등 한약재, 캐러멜, 물엿, 콩 소스 등이 가미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싱싱한 족을 손질하여 가마솥에 넣고, 파·마늘·생강·술 등을 넉넉하게 더한 뒤 맑고 깨끗한 맛이 나는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하지만 숨겨둔 보물이 있다. 일종의 씨 육수랄 수 있는 ‘족 삶은 물’이다. 어제 남은 육수에 물과 재료를 넣고 다시 삶는다. 그러니 반세기 넘은 보물 같은 육수랄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신개념 족발도 등장했다. ‘장충동 왕족발’도 그중 하나다. 1984년 창업주 한봉수씨가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에서 ‘장충(匠忠) 족발’이라는 상호로 족발장사를 시작했다. 한씨는 돼지 발목까지만 절단해 조리하던 ‘미니족발’ 스타일에서 탈피해 족발업계 최초로 무릎까지 절단·조리하는 왕족발을 개발한다.

국내 별별 족발들

제주도에서 먹는 ‘아강발’을 단족(미니족발)이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 새끼돼지 족발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설명으로 인한 오해란다. 족발은 흔히 돼지의 발목 윗부분인 데 비하여 비해 아강발은 발목 아랫부분만을 쓴다. 그 때문에 ‘미니족’이라는 오해에 일조를 하는 셈이다. 제주도에서는 육수를 더욱 심플하게 갈무리한다. 양념 또한 부드러워지라고 된장이나 커피를 넣어 삶는 수준에 그친다.
또한, 제주 별식이기도 한 ‘아강발국’도 있다. 돼지 족을 불에 그을려서 털을 태우고 잔털도 칼로 긁어 없애 씻은 후 마디에 따라 잘게 자르고 물을 넉넉히 부어 푹 삶고 미역을 넣고 다진 마늘과 생강도 넣어 끓인 후 소금이나 청장으로 간을 해 먹는다. 동네에서 돼지 추렴*을 하면 아강발은 젖먹이가 있는 집으로 넘어간다. 제주의 산모들은 출산 후 수유하는 동안 모유 형성에 도움을 주는 아강발국을 즐겨 먹는다.
부산은 80년대 후반 남포동 국제시장 지하쇼핑센터 1번 출구에서 부평 교차로까지 150m가 족발 거리로 활성화된다. 장충동식 족발과 매무새가 사뭇 달랐다. 현재 양대 산맥인 원조부산족발과 한양족발에 따르면 출발은 중식당 메뉴인 오향장육과 해파리냉채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합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부평깡통시장 등을 찾는 젊은 층을 겨냥해 해파리냉채, 오이와 당근, 맛살 등을 가미한 ‘족발냉채’로 특화된다. 구미 중앙시장에 가면 별난 족발을 만날 수 있다. ‘연족(연탄불족발)’이다. 중앙시장 내 ‘김가네족발’이 기술을 개발했다. 이소정 사장은 30년 전 대구의 북성로 연탄돼지불고기처럼 연탄불로 연족을 석쇠 위에서 즉석으로 구워 판다. 처음에는 양품점을 하다가 여의치 않아 연족으로 변신해 순항 중이고 장남 이종규가 가업을 이었다.

외국의 족발요리 이야기

의외로 외국에서도 족발이 인기다. 이탈리아는 새해에 ‘잠포네’를 먹으면 일 년 내내 지갑에 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밖에 일본의 오키나와 요리인 테비치소바, 독일의 슈바인 학센(Schweins Haxen), 오스트리아의 슈텔체(Stelze), 체코의 꼴레뇨(Koleno), 프랑스의 달콤한 족발 조림인 피에 드 코숑, 족발덮밥으로 불리는 태국의 카오카무 등도 족발을 이용한 음식이다.
현재 국내 하우스비어 전문점 특별 안주로 사랑받는 게 ‘슈바인 학센’이다. 뮌헨이 속한 바이에른 지방에서 시작된 음식이다. 뮌헨의 플라츨 광장 내 호프브로이 하우스에선 껍질이 바삭한 슈바인학센, 로트콜(붉은 양배추 김치), 카르토펠(익힌 감자), 생맥주 등이 한 세트로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요리할 땐 발톱이 있는 굽 끝부분은 잘라내 요리에 사용하지 않고 정강이 살 부분만을 사용한다. 조리법은 대충 이렇다. 주니퍼베리, 캐러웨이 시드, 블랙 페퍼콘 등의 향신료와 소금·마늘을 한데 섞은 양념을 돼지 족에 충분히 문질러 바르는 럽(rub)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감자·샐러리·당근·대파 등과 같은 자투리 채소를 더하고 흑맥주와 밀맥주를 채워 익힌다. 이후 다시 화덕이나 오븐으로 한 번 더 굽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흑맥주를 여러 번 끼얹어 조리한다. 껍질 표면이 코팅되면서 바삭바삭한 식감과 윤기 있는 광채를 지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