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와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시리즈까지.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가공할 만한 위력의 근접 전투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거죠.
<테이큰>의 경우 믹 굴드라는 사람이 무술자문 역할을 맡았는데요. 실전 기술에 가까운 그의 액션은 영국 공수특전단(SAS) 등의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굴드는 합기도와 유도 주짓수 등의 무예를 두루 섭렵했고 스스로 나가수도(Nagasu Do)라는 실전무예를 만들기도 했지요. 특수부대 출신의 실전 무술로 따지자면 <본> 시리즈도 뒤지지 않습니다. <본> 시리즈는 이스라엘의 최정예 정보기관 모사드의 특공 무술 크라브 마가에서 차용했는데요. 이슬람 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군이 생존을 위해 개발한 무술인 만큼 가장 효율적인 공격과 방어 기술을 쓰는 걸로 정평이 나있죠. <아저씨>의 원빈이 구사하는 액션도 <본>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특히 <아저씨>의 경우는 칼리 아르니스라는 필리핀 실전 무술을 가져다 썼습니다. 칼리 아르니스는 칼리, 혹은 아르니스, 혹은 에스크리마로도 알려져 있는 필리핀 무예인데요. 주로 막대기나 단검 류의 다양한 무기를 이용한 실전 격투를 대비한 기술 위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빈이 선보인 이 무술은 후에 드라마 <시티헌터>에서 이민호가 전문 교육을 받고 액션신에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무술들은 모두 이름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죠. 살상력이 크고 여러가지 무술의 혼합형으로, 여러 전통 무예에서 그 영감과 기술을 받아 목적에 맞게 변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액션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은 작품 중 하나로 토니 자 주연의 영화 <옹박>(2003)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토니 자는 무에타이를 비롯한 여러 무술을 섭렵한 스턴트맨 출신입니다. 무에타이는 잘 아시다시피 태국 정통 무예인데요. 그 역사가 무려 2000년 이상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무에타이의 기원이 중국 무술이라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태국에서는 중국 무예의 원조가 무에타이라고 맞받아친다죠. 중요한 건 '단 한 번도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은 원동력이 바로 무에타이'라는 자부심이 태국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영화나 이종격투기에서 보는 무에타이는 맨손 격투술이지만, 실제로 무에타이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기술(크라비크라봉)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최근엔 <옹박>의 프라챠 핀카엡 감독이 태권도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 <더킥>을 연출해 화제가 됐습니다. 핀카엡 감독은 <옹박>의 토니 자와 <더킥>의 나태주의 무술 실력을 묻는 배우 조재현의 질문에 "두 배우 모두 무에타이와 태권도의 최고수이다. 다만 세밀한 연기는 나태주가 더 나았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조재현은 "태국 전통 무술인 무에타이를 배우는 사람보다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 10배는 더 많을 것"이라며 태국에서 태권도의 인기가 매우 높다고 전했는데요. 실제로 최근 보도에 따르면 태국 내 태권도 도장은 1,500개, 태권도 수련 인구만 약 10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최영석 감독의 인기도 과거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을 이끌던 히딩크 감독만큼이나 높다고 하는군요. 한국에서는 오히려 태권도 인구가 감소 추세라고 하는데 태권도 한류 열풍이 더 반갑습니다.



영화 <엽문>(2008)은 영춘권의 대가 엽문을 소재로 했다는 거 잘 아시죠? 영춘권은 중국 남파 무술의 한 갈래로, 청나라 때 여성 엄영춘에 의해 탄생한 권법입니다. 권법 중에 여성이 만든 건 이게 최초라는 말도 있더군요. 영화를 보셨다면 느끼셨겠지만, 동작을 할 때 다른 권법에 비해 보폭이 좁고 화려하고 선 굵은 발기술보다는 잘게 치고 들어가는 상체 기술이 주를 이룹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송혜교가 촬영 중인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 역시 엽문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엽문>에선 견자단이 엽문 역을 맡은 반면, <일대종사>에선 양조위가 맡았습니다. 견자단의 리얼 액션을 능가하는 화려한 액션을 왕가위와 양조위가 함께 만들어냈을지 기대됩니다. 인터뷰 때 송혜교에게 견자단의 엽문과 양조위의 엽문 중 누가 더 셀 것 같냐고 장난삼아 물어본 일이 있었는데요. 한참 고민하던 송혜교는 "당연히 견자단이 더 세겠지만, 그래도 내 남편 역할로 나오는 양조위도 만만치 않을 거다. 예전에 옆에서 연습하는 걸 지켜본 적이 있는데 장난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아마 견자단의 리얼 액션과 비교해 봤을 때 양조위의 엽문은 영상 미학을 추구하는 왕가위 감독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로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엽문의 영춘권이 이소룡의 절권도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겠죠. 절권도는 이소룡이 영춘권을 바탕으로 서양의 복싱과 펜싱, 한국의 태권도 등과 교류하면서 만들어낸 종합 무술입니다. 절권도의 경우 국내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는데 2010년 드라마 <추노>에서 절정의 액션 연기를 펼친 장혁이 절권도를 수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인기가 크게 늘었습니다.

<추노>와 <뿌리 깊은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장혁처럼 멋진 발차기를 하고 울퉁불퉁한 복근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은 다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쇼파에 널부러져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텔레비전 앞에서 드라마를 보는 그 시간에 누군가는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