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어느새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남매가 있습니다. 아이들이랑 다 같이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와 아이들이 아빠를 꼭 닮았네, 사람 많은 곳에서도 금방 찾을 수 있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커 가면서 점점 더 남편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이 까맣다는 느낌이 첫 인상이었는데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멀리서도 확실히 구분이 될 정도로 다른 아이들의 하얀 우윳빛 피부와 차이가 납니다.
  특히 요즘 며칠 볕이 따뜻해서 외출을 자주 했더니 남편이랑 아이 둘 모두 평소보다 훨씬 까맣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랑 아이들을 한꺼번에 "까만 콩 세 사람"하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과 아이들은 한 편이 되어 "우리가 까만 것은 건강하다는 표시인데요. 오히려 엄마만 너무 하얘요." 라고 한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럼 엄마는 하얀 콩이네요'라고 말하네요.
  옆에서 같이 생활하다 보면 음식 먹는 습관도 어느새 비슷해지는 것 같고 밤에 자는 모습을 보면 어찌 그리 판박이인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발견한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남편은 무리를 하면 한 번씩 몸살을 앓아 약을 먹는데 알약을 한 번에 못 삼키고 몇 번씩이나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힘들게 먹곤 합니다. 본인은 힘들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날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아버님이 약을 드시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알약을 삼키기 힘들다고 약을 잘게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서 드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역시 부전자전이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집의 두 아이는 약을 한 번에 꿀꺽꿀꺽 잘도 먹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아빠를 닮아가겠지만 남편의 좋은 점들만 많이 많이 닮기를 바래봅니다.

  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떨려서 말하기 힘들다며 날더러 함께 있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언니는 남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제겐 조카인 두 아이는 지금 중학교 2학년 남자와 고등학교 1학년 여자입니다. 그런데 조카들은 언니가 배 아파서 낳은 아이가 아니랍니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즉 어렸을 때 입양한 것입니다.
  친 자식으로 입적은 했지만 나중에 알고 큰 충격을 받기 전에 이 사실을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려운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받을 충격이 걱정되어서 동생인 우리 부부더러 함께 있어달라고 SOS를 친 겁니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언니네 집에 갔습니다. 언니 부부와 우리 부부, 그리고 아이들 둘이 앉아 과일을 깎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결국 말을 꺼냈습니다.
  "너희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발길질 한거 기억나니? 그때 엄마 배가 얼마나 아팠는지 모르지? 그런데 너희들 발길질은 사실은 엄마 뱃속에서 하진 않았어. 그때 너희들은 다른 분의 뱃속에 있었거든."
  "에이, 엄마 뻥이지? 친구들도 맨날 엄마들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장난친다는데……."
  남자 조카가 반신반의 하면서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언니에게 확인 해본 질문. 그러나 이건 바뀔 수 없는 진실임을 알고 아이는 울면서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여고생인 큰 조카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한 건 하나도 없어. 너는 죽을 때까지 엄마의 가장 사랑스런 딸이고 이모의 조카야.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야. 알지?"
  그날 이후 둘째 조카는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언니는 얼마나 저 어린 가슴이 아파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그 말을 하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언니 침대 머리맡에 편지가 한통 놓여있더랍니다. 둘째 것이었죠. "지금껏 잘 키워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저희들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실거죠?"라고 써있었다고 하더군요. 언니는 둘째를 꼭 안아주면서 그날 밤은 네 식구가 거실에서 다함께 잤다는군요.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지금 언니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주말 저녁 늦게 우리 매장 안으로 중년의 남자분이 들어오셨다.
  "아줌마가 입을 겨울 코트 하나 주세요.", "아줌마요? 누가 입으실건데..."
  아줌마라는 말에 내가 약간 말끝을 흐리자 손님은
  "아, 내 아내예요. 이젠 아줌마죠. 하하"
  체형은 보통 키에, 화사하고 밝은 톤이 어울린다며 이것저것 물어가며 꼼꼼히 챙겼다. 손님은 돈을 15만원 주시면서 나머지는 신용카드로 하자고 했다. 현금이 부족한가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누라가 옷값 비싸다고 할까 봐서요. 짠순이라..."
  참 잘 어울리는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은 알뜰한 살림꾼이고, 자상한 남편은 그런 성격 탓에 옷 한 벌 사 입지 않는 아내를 위해 괜찮은 코트를 골라 가는.
  옷을 포장하는데 손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인 듯 했다.
  "응 그래? 아버님도 이젠 그만 하실 때가 됐는데 참... 그래도 연탄을 때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가 보네. 아버님 일거리가 줄어들지 않는걸 보니."
  연탄? 본의 아니게 엿들은 걸로는 손님의 아버님이 연탄 관련 일을 하시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한 여성분이 그 옷을 다시 가지고 찾아왔다. 어제 싸간 옷 포장을 다시 풀며 하시는 말씀이
  "이 코트 좀 다른 걸로 바꿔주세요. 남자 오리털 잠바 좀 보여주세요."
  "네 바꾸셔도 됩니다. 그런데 파카는 누가 입으실..."
  "아, 예. 우리 시아버님이요. 매일 새벽에 일 나가시는데 추우실까봐서요."
  나는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니 감동적인 실화를 연기하고 있는 사람들 옆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살림꾼 아내를 위해 코트를 준비했고, 그마저 아깝다고 되돌아온 아내는 자신에게 사준 옷을 시아버지 잠바로 바꿔 가겠다고 하는 상황. 정말 이 매장이 내 것이라면 잠바 하나 그냥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상한 남편, 효심이 지극한 며느리, 연세가 있으시지만 자식들에게 부담 안주려고 계속 일을 하시는 시아버지. 옷을 팔면서 매장 안이 이렇게 따뜻해 본적이 없다.